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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Lanegan Band – Bubblegum – Beggars Banquet, 2004

 

 

질주와 이완의 엇갈림, 약물에 취한 남자의 로망

시애틀 그런지의 선조의 하나인 스크리밍 트리스(The Screaming Trees)의 보컬리스트 마크 레너건(Mark Lanegan)은 사실 밴드 활동보다는 솔로 아티스트로 더 어울리는 인물이다. 어딘지 톰 웨이츠(Tom Waits)를 닮은 험상궂은 외모도 그렇고, 그런지 록의 거친 사운드에 묻히기보다는 단아한 어쿠스틱 기타와 어울릴 듯한 닉 케이브(Nick Cave) 못지 않은 중후한 저음의 목소리도 그렇다. 실제로 그는 밴드에 속해 있던 1990년대 초부터 솔로 활동을 시작하는데, 그런지 록의 거친 사운드 결을 완전히 배제한 채 블루스, 고스펠, 컨트리 등 아메리칸 루츠 쪽에 기울어진 편안한 어쿠스틱 사운드를 구사한다(물론 스크리밍 트리스의 음악이 시애틀 그런지 록 밴드들 중 가장 루즈하고 블루지하긴 했지만). 2001년에 발표된 그의 정규 5집 [Field Songs] 역시 어쿠스틱 악기 편성이 강조된 편안한 컨트리/블루스 넘버들이 주종을 이룬 앨범으로서 특히 “Don’t Forget Me” 같은 곡에서 그는 우수에 찬 중년 남성의 감성, 아니 보다 쉽게 말해 이른바 ‘남자의 로망’에 푹 빠진 듯 했다.

그런 그가 올해 내놓은 신보 [Bubblegum]은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Queens Of The Stone Age)와의 오랜 친분과 공동 작업 때문인지 ‘스토너 록(stoner rock)’ 스타일에 가까운 로킹한 사운드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변화의 조짐은 2003년부터 엿보이기 시작했는데, EP 앨범이었지만 8곡이나 수록되었던 [Here Comes That Weird Chill](2003)에는 [Bubblegum]에 다시 수록된 “Methamphetamine Blues”와 거의 술주정 같이 씨부렁거리는 보컬과 거친 퍼즈 톤으로 블루스 스케일을 진행시키는 “Skeletal History” 등 지저분한 거라지 블루스 넘버들이 담겨 있다.

우선 이 앨범의 제목이 ‘Bubblegum’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앨범 제목에 대한 힌트를 담고 있는 “Bombed(술이나 마약에 취한)”에서 그는 “깨진 발렌타인 병 조각에 찢긴 내 마음엔 휴식이 필요하지 / 권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있네, 내가 쏠 수 있을까, 어찌할 바를 모르겠네 / 술(약)에 취해 나는 풍선검처럼 늘어져 있을 뿐”이라고 심드렁하게 내뱉는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발랄하고 경박스런 버블검의 이미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뒤통수치는 권태와 약물 예찬이라니…

[Bubblegum]에는 오랜 친구 사이인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의 조쉬 홈(Josh Homme)과 베이시스트 닉 올리버리(Nick Oliveri)(마크 레너건은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의 역작 [Songs For The Deaf]에 작곡과 보컬로 참여한 바 있음),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 출신이자 지금은 벨벳 리볼버(Velvet Revolver)에 속해 있는 이지 스트래들린(Izzy Stradlin)과 더프 맥케이건(Duff McKagan), 그리고 피제이 하비(PJ Harvey) 등 쟁쟁한 뮤지션들과 세션 연주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 앨범이 보다 밴드 록적인 연주와 하드한 사운드를 담고 있는 점이 이해되는 부분이다. 먼저, 앨범을 대표하는 싱글 “Hit The City”는 피제이 하비가 코러스를 넣은 곡으로서 퍼즈 노이즈를 가득 머금은 기타 톤과 아련한 해먼드 오르간 음 위로 실리는 혼성 보컬 하모니는 묘하게 매력적이다. 이보다 강력한 트랙들도 있는데, 먼저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의 히트 싱글 “Go With the Flow”에 대한 화답처럼 들리는 스토너 록 넘버 “Driving Death Valley Blues”는 짧지만 출렁거리는 퍼즈 베이스의 질주감과 송곳같이 날카로운 기타 음이 압권이다. 또 톰 웨이츠 식의 망치질 소리 같은 퍼커션 연주가 독특하게 들리는 거친 블루스 록 넘버 “Methamphetamine Blues”나 빠른 업다운 기타 스트로크가 반복되는 투박한 거라지 록 넘버 “Sideways In Reverse” 등도 강성의 트랙들이다.

반면, 걸걸한 허스키 보이스로 예의 ‘남자의 로망’에 호소하는 진득한 발라드 곡들은 전작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앨범의 또 다른 축이다. 쓸쓸하고 고즈넉한 무드의 블루스 넘버 “One Hundred Days”에서 그는 “버드나무가 하루의 끝을 향해 늘어져가고 다시 석양이 질 때 / 검은새가 만들어내는 우스꽝스런 소리와 함께 석양이 질 때 / 아무런 마땅한 이유도 없이 나는 오로지 네 생각만 하려 한다네 / … / 몰핀(morphine)은 다 떨어지고 나는 그저 잠에 빠져 있지 / 이런 꿈이 죄가 될 건 없지”라고 조금은 아름답고 조금은 궁상스럽게 노래한다. 그밖에 구슬픈 단조의 어쿠스틱 듀엣 송 “Bombed”, 역시 피제이 하비와 같이 부른 “Come To Me”의 처연한 슬라이드 기타와 영롱한 아르페지오 연주 등 시적이고 관조적인 가사와 조화된 편안한 어쿠스틱 사운드는 하나같이 매력적이다.

이 앨범의 양면성은 어떻게 보면 당혹스럽긴 하다. 그리고 두 측면 모두 소위 모던한 감성과 상큼한 사운드를 선호하는 청자들에겐 미간이 찌푸려질 만한 것들이다. 하지만 음악적 완성도가 높고 단순히 헛소리로만 들리지 않는 의미심장한 가사를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한 때 한가락하던 로커의 기질을 멋지게 되살려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마크 레너건의 타협 없는 아저씨 감성은 존중될만하다. 점점 더 탈속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닉 케이브나 동어반복만 해대는 톰 웨이츠를 생각하면 더욱 더…… 20041107 | 장육 jyook@hitel.net

8/10

수록곡
1. When Your Number Isn’t Up
2. Hit The City [뮤직비디오]
3. Wedding Dress
4. Methamphetamine Blues
5. One Hundred Days
6. Bombed
7. Strange Religion
8. Sideways In Reverse [뮤직비디오]
9. Come To Me
10. Like Little Willie John
11. Can’t Come Down
12. Morning Glory Wine
13. Head
14. Driving Death Valley Blues
15. Out Of No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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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ns Of The Stone Age [Songs For The Deaf] 리뷰 – vol.4/no.19 [20021001]

관련 사이트
Mark Lanegan 공식 사이트
http://www.marklanegan.com
Mark Lanegan 팬 사이트
http://www.onewhiskey.com
Beggars Banquet의 Mark Lanegan 페이지
http://www.beggars.com/banquet/index.htm?../artists/mark_lanegan/index.htm&0
Sub Pop의 Mark Lanegan 페이지
http://www.subpop.com/bands/lanegan/website/new/markflash.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