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리퍼(Daytripper) | Brownpaper (2004)

데이트리퍼(Daytripper) – Brownpaper – Slowalk/Fishcamp, 2004

사운드를 재료로 음악을 그린다

데이트리퍼(Daytripper)의 데뷔앨범 [수집가](2001)가 2001년에 발매되었으니, 만 3년만의 음반인 셈이다. 하지만, 데이트리퍼는 (본인 스스로 창단 멤버이기도 했던) 언니네 이발관의 앨범에 작곡과 프로그래밍 그리고 아트워크등에 참여하며 꾸준히 대중에게 얼굴을 비춰왔다. 프로필을 살펴보면 그는 이러한 음악 작업 이외에도 전시회를 열고, 홈페이지를 제작하고, 다른 사람의 전시회를 위한 음악을 제작하는 등 디자인 관련 작업 역시 꾸준히 해왔다고 한다.

[수집가]는 묵직한 비트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운드에 관심을 보였던 음반으로 기억된다. 또한 깔끔한 디지털의 이미지보다는 로우파이(Lo-fi) 질감의 아날로그 사운드가 인상깊었다. 다만, [수집가]는 데뷔작이라는 부담 때문이었는지 다양한 시도가 오히려 앨범 전체의 색깔이 불분명하게 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적지않은 앨범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발매된 2집 [Brownpaper](2004)에서는 보다 일관된 데이트리퍼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반갑다. 2집 사운드의 특징은 여전한 노이즈와 묵직한 느낌의 비트 이외에 선율을 연주하는 키보드의 낡은 질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평선 잠수부”, “쇼핑몰의 짐승인형”, “업그레이드 목요일”, “액체상자”, “추억으로부터”과 같은 곡에서 돋보이는 낡은 질감의 키보드 사운드를 들으며 과연 이 질감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해서 그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작업 노트를 뒤져보았다. 데이트리퍼는 키보드 소리를 카세트 데크를 거쳐 컴퓨터에 집어넣었다고 한다. 이런 작업을 통해 그가 추구하는 사운드와 썩 잘 어울리는 음색을 찾아냈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하게 중첩된 묵직한 비트와 단순하면서도 향수를 자극하는 신서사이저 선율의 조합은 썩 훌륭하다. 리듬에 대한 감각 이외에 델리 스파이스와 언니네 이발관에 키보드로 참여하며 키웠던 감각이 녹녹치 않다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이 곡들을 들으며 공상과학 애니메이션의 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디자인을 전공하고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이력 때문인지, 그의 음악을 들으면 시각적인 이미지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데이트리퍼는 “사운드에 이미지를 부여했다”는 표현을 하곤 한다. “야간고양이”는 베이스와 드럼 사운드로 야간 고양이 모습을 그린 듯한 느낌을 준다. 초등학교에서 몰래 녹음했다는 “숨어서 연주하기”는 그 당시의 느낌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과거 1집이 발매되었을 당시 데이트리퍼는 마스터플랜 소속이었다. 당시 펑크 혹은 넓은 범주에서 록음악 위주였던 다른 클럽에 비해 마스터플랜은 테크노, 힙합등 다양한 범주의 음악을 소개했던 곳이었다. 당시 대규모 테크노 공연은 의례 마스터플랜에서 열렸고, 공연 후 클럽 주변에서 뒤풀이가 이어졌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마스터플랜은 힙합 전문 음반 레이블로 변모하며 공연장의 문을 닫았다. 이러한 트랜드의 변화 속에서 데이트리퍼는 이번 앨범을 개인 레이블에서 발매했다. 그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을 했을 터이고, 이는 조악한 앨범의 커버나 포장을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의 변화로 데이트리퍼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었고, 이는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결과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20041105 | 이성식 landtmann@empal.com

8/10

수록곡
1. 부속품 연주회
2. 지평선 잠수부
3. 작은 파장
4. 쇼핑몰의 짐승인형
5. 악질난쟁이
6. 업그레이드 목요일
7. 액체상자
8. 숨어서 연주하기
9. 잠시 기다리는 동안
10. 야간고양이
11. 추억으로부터
12. 갈색종이 (feat. Seoul Frequency Group)
13. 갈색종이(Renoise Mix) by Seoul Frequency Group
14. 추억으로부터(Lego Mix) by 전자양

관련 사이트
데이트리퍼 공식 사이트
http://www.slowal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