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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ound – Jeopardy – Korova/Renascent, 1980/2002

 

 

저주의 펑크 록 연대기, 잊혀진 또 하나의 비극

출중한 음악에 비해 이름이 평범하고 개성 없는 밴드들이 꽤 있다.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나 도어스(The Doors)가 그렇고 카스(The Cars)나 텔레비전(Television)도 그리 인상 깊지 못하다(물론 이름만큼 음악도 후진 이글스(The Eagles) 같은 밴드도 있긴 하지만). 하지만 전혀 호기심이 일어나지 않는 이름을 가진 포스트 펑크(post-punk) 밴드 사운드(The Sound)에 비하면 그래도 다들 조금은 나은 편이다.

사운드는 런던의 펑크 밴드 아웃사이더스(The Outsiders) 출신의 애드리언 볼랜드(Adrian Borland, vocals/guitar)와 그레이엄 베일리(Graham Bailey, bass)가 바이 마셜(Bi Marshall, keyboards)과 마이클 더블리(Michael Dudley, drums)를 영입해 1979년 런던에서 결성된다. 이들은 영국 포스트 펑크 씬을 대표했던 폴(The Fall), 에코 앤 더 버니멘(Echo & the Bunnymen), 조이 디비전(Joy Division), 큐어(The Cure), 그리고 1980년대 초반에는 포스트 펑크 밴드로 출발했던 유투(U2) 등과 동시대의 밴드였지만 너무 평범한 이름 탓이었는지 무명 딱지를 벗어내지 못한 저주받은 밴드였다. 실제로 평론가들은 이들을 인정했지만(당시에 NME, Melody Maker 등 유수의 평지들은 데뷔작 [Jeopardy]에 만점을 선사한다), 자국의 록 팬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없었으며 네덜란드 등에 약간의 컬트 팬들이 있었을 뿐이었다(미국에는 아예 앨범도 발매되지 못했다).

사운드는 데뷔 시절 메이저 레이블에 먼저 발탁된 이후 계약을 해지 당하고 인디 레이블로 자리를 옮긴 특이한 이력을 가진 밴드인데, 데뷔 LP인 [Jeopardy]는 1980년에 워너 브러더스사의 하부 레이블인 코로바(Korova)를 통해 발매된다. 이 앨범은 같은 레이블 소속이었던 에코 앤 더 버니멘의 데뷔작 [Crocodiles]와 조이 디비전의 2집 [Closer] 등 초기 영국 포스트 펑크 씬의 대표작들과 같은 해에 발표되었지만, 2002년에 리이슈(re-issue) 전문 레이블 리내슨트(Renascent)를 통해 CD로 재발매되기 전까지 포스트 펑크 팬들에 의해 거의 기억되지 못한 작품이었다.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을 했음에도 애드리언의 집에서 저예산 홈레코딩으로 제작된 이 앨범은 사실 대단한 수작이다. 첫 곡인 “I Can’t Escape Myself”는 뮤트(mute) 주법을 활용해 째깍거리는 듯한 기타 음이 페이드 인(fade-in) 된 후 끝까지 한 가지 패턴만을 반복하는 드럼과 베이스 연주, 그리고 불길한 리버브를 함유한 신디사이저 음과 그레이엄 베일리의 보컬이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곡이다. 이어지는 “Heartland”는 청량감 있는 신디사이저 음이 부각되는 곡으로서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인 베이스 연주와 끊어치기가 강조된 생톤의 기타 스트로크는 다소 훵키한 느낌을 전해준다. 수록곡들은 점점 더 흥분을 고조시켜 가는데, 살짝 와와 이펙트를 먹인 기타 연주가 이채로운 “Hour Of Need”, 브라스 세션까지 가세해 앨범에서 가장 훵키하고 댄서블하게 들리는 “Words Fail Me”가 지나고 나면 앨범의 압권인 “Missiles”가 등장한다. “Who the hell makes those missiles?”라고 일갈하면서 반전과 반폭력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 곡은 역시 뮤트된 기타 스트로크와 극단적인 피드백 노이즈가 공존하는, 강약과 진퇴의 반복이 확실한 밀도 있는 구성에다 시종일관 스산한 느낌의 전자음이 뒤를 받쳐 단조로움을 탈피하고 있다.

[Live Instinct EP]의 앨범 커버

이렇게 거칠고 로(raw)한 기타 연주와 극단적인 하이톤의 신디사이저 연주를 조합하는 패턴은 “Heyday”, “Jeopardy”, “Resistance” 등 후반부에도 지속되고, 특히 보컬 창법과 베이스 라인 등이 가장 조이 디비전과 유사하게 들리는 “Night Versus Day”에서는 노이즈 실험이 본격화된 전자음이 절묘한 공간감을 조성하고 있다. 한편, 원래 1981년에 네덜란드에서만 발매된 희귀본 [Live Instinct EP]에 수록되었던 곡들인 4곡의 라이브 트랙들도 스튜디오 버전 못지 않은 현란한 연주력을 뽐내고 있다.

[Jeopardy]는 날카로운 생톤의 기타 음색과 섬세한 트레몰로 주법이 교차하고 여기에 장식적인 키보드 연주를 조합하여 포스트 펑크 밴드의 음악으로는 독특한 사운드를 제시했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론은 2000년대 초반의 복고 열풍을 타고 최신의 트렌드로 급부상한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밴드들의 시도를 선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앨범은 앞서 거론한 씬의 대표적 작품들에 비해 포스트 펑크 특유의 뒤틀리고 어두운 펑크 사운드가 부각되지 않아 강렬한 인상을 전하는 데는 약간의 한계가 있는 듯 보인다. 이를 반영하듯 사운드는 밴드가 해체된 1987년까지 4장의 정규 앨범을 더 내지만 데뷔작만큼의 성과를 일구지 못했고, 마침내 조이 디비전과 에코 앤 더 버니멘의 아류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만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밴드의 해체 후 멤버들에게 들이닥친 불운이었다. 음악 활동 내내 정신질환에 시달리던 리더 애드리언은 기차에 몸을 던졌고, 바이 마셜의 뒤를 이어 참여한 콜빈 메이어스(Colvin Mayers)는 에이즈로 숨졌으며 나머지 멤버들도 음악활동을 아예 접고 잠적해 버린다. “음악은 존재로부터 삶을 분리시킨다”라는 애드리언의 쓸쓸한 탄식처럼 이들은 영광과 저주의 펑크 연대를 관통해간 후 내파되었다. 그리고 록 역사에는 사실상 아무도 관심 없는 또 하나의 비극이 쓰여졌다. 때로는 인생도 짧고 예술도 허망할 만큼 짧지만 존재는 슬프도록 길고 냉엄한 것이다. 20041112 | 장육 jyook@hitel.net

9/10

수록곡
1. I Can’t Escape Myself
2. Heartland
3. Hour Of Need
4. Words Fail Me
5. Missiles
6. Heyday
7. Jeopardy
8. Night Versus Day
9. Resistance
10. Unwritten Law
11. Desire

[Bonus Tracks] 12. Heartland (live)
13. Brute Force (live)
14. Jeopardy (live)
15. Coldbeat (live)

관련 사이트
Renascent 레이블의 The Sound 페이지
http://www.renascent.co.uk/pagessound/sound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