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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iott Smith – From a Basement on the Hill – Domino/Pastel Music(라이선스), 2004

 

 

‘다정한 작별인사’에 대한 고통스런 화답

모든 유작 앨범들은 그 앞에서 냉정을 유지하기 어렵게 한다.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한 번씩쯤은 잊혀지지 않는 감동과 고통을 안겨주었던 비재(悲才) 엘리엇 스미스(Elliot Smith)의 마지막 고백과 노래들에 대한 이 초라한 글은 며칠 동안의 불면과 신열을 대가로 겨우 완성되었다. 그의 유작에 대해 앞다투어 리뷰를 올린 해외의 평자들과 국내외의 팬들은 마치 제문(祭文)을 올리듯 그렇게도 당연한 찬사를 쏟아내었다. 마지막이란 드라마틱하고 진지하며 예우를 갖추게 만드는 것이니까.

그러나 [From a Basement on the Hill]을 들으며 더욱 가슴 한 곳이 뻐근하게 아파 오는 것은 이 앨범에 죽음의 그림자나 종언적 묵시보다는 아직은 혼란스럽긴 하지만 새로운 시작을 향한 조심스런 열정과 떨림이 더 강하게 풍기기 때문이다. “내 얼굴은 꼴도 보기 싫다”(“Strung Out Again”)고 신경질을 부리고 “마약만이 남은 인생의 유일한 작은 부분”(“Twilight”)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등 자학과 냉소로 뒤틀린 가사는 여전히 불친절하지만, “이제는 너와 어울릴 만큼 멋있어진 것 같다”(“Pretty (Ugly Before)”)고 수줍은 고백을 속삭이기도 하는 등 심리적으로는 조금 편안해졌던 것 같다. 사운드 면에서는 그의 전작들을 지배한 로-파이(lo-fi) 포크 록 성향에 더해 꽤나 거친 일렉트릭 기타의 결을 살린 싸이키델릭 록 스타일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이렇듯 본작은 엘리엇 스미스의 앨범 중 가장 밴드 록 형태에 가까워 그가 히트마이저(Heatmiser) 시절로 회귀하거나 새로운 밴드 음악을 시도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추측도 해보게된다.

이 앨범에서 엘리엇은 그 어느 앨범에서보다 기교가 넘치고 섬세한 어쿠스틱/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들려주고 있으며, 베이스, 키보드, 드럼, 백그라운드 보컬 등 나머지 파트들은 세션 연주자들이 채워주고 있다. 특히 플레이밍 립스(The Flaming Lips)의 스티븐 드로즈(Steven Drozd) 등 드러머가 4명이나 참여하여 다채로운 비트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미 작년 8월에 싱글로 발표되었던 “Pretty (Ugly Before)”에는 히트마이저 시절의 동료이자 지금은 콰지(Quasi)를 이끌고 있는 샘 쿰즈(Sam Coomes)가 키보드 연주와 백 그라운드 보컬을 맡고 있다.

먼저, 첫 곡인 “Coast To Coast”는 무거운 중저음 기타 리프와 불길하게 공명을 먹은 엘리엇의 보컬이 의외로 현란하게 들리는 곡이다. 이러한 연주 패턴은 샘 쿰즈(Sam Coomes)와의 보컬 하모니가 아름답게 펼쳐지는 “Pretty (Ugly Before)”, 가장 화려하고 헤비한 연주를 들려주는 “Don’t Go Down”, 연주력 면에서 단연 돋보이는 곡들인 “A Passing Feeling”와 “Shooting Star” 등에도 등장하고 있다. 특히 “A Passing Feeling”은 중반부 이후 극도로 섬세한 일렉트릭 기타 음이 흐느끼듯(whining) 퍼져가는 구슬픈 곡이며, “Shooting Star”는 리버브, 트레몰로, 피드백 등 다양한 기타 이펙트와 빠른 핑거링 주법까지 동원되는 실험적인 싸이키델릭 넘버이다. 그밖에 비틀즈(The Beatles)로부터의 영향을 드러내듯 완벽한 화성을 전개하고 있는 “King’s Crossing”과 역시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같이 들리는 “Memory Lane”도 돋보이는 트랙들이다. 반면, 제목처럼 너무나 다정한 앨범의 대표곡 “A Fond Farewell”과 “Let’s Get Lost”, “Strung Out Again”, “Twilight”, “Last Hour” 등 그의 전유물인 바스러질 듯한 목소리와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조화된 소박한 포크 송들도 여전한 미감을 발하고 있다.

어느 요절한 시인은 사내들이 있는 힘을 다해 취하고 비틀거렸던 비좁은 술집에서 사랑을 잃었다고 탄식했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 남루한 가을밤에 엘리엇 스미스를 잃었고 1년만에 그가 남기고 간 흔적들을 뒤적이고 있다. 그가 ‘있는 힘을 다해’ 토해놓은 마지막 작품들은 상처투성이 천재 음유시인의 몸을 숙주로 삼아 기생했던 사랑과 분노, 냉소와 염원, 열망과 좌절이 한 무더기로 녹아 있는 처절한 노작(勞作)이다. 그의 작별인사는 다정하지만 이를 듣고 있는 남은 자들은 그의 핏줄 속에서 녹슬어버린 주사바늘의 느낌처럼 고통스럽기만 하다. 이 불한당 같은 세상에서 또 다시 엘리엇 스미스와 같은 사내를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자 천형이 될 것이다. 20041107 | 장육 jyook@hitel.net

8/10

수록곡
1. Coast To Coast
2. Let’s Get Lost
3. Pretty (Ugly Before)
4. Don’t Go Down
5. Strung Out Again
6. A Fond Farewell
7. King’s Crossing
8. Ostrich & Chirping
9. Twilight
10. A Passing Feeling
11. Last Hour
12. Shooting Star
13. Memory Lane
14. Little One
15. A Distorted Reality Is Now A Necessity To Be Free

관련 글
Elliott Smith [Figure 8] 리뷰 – vol.2/no.11 [20000601]
벨 앤 세바스찬 vs 엘리엇 스미쓰 – vol.1/no.6 [19991101]

관련 영상

“Last Hour”(Live in 1996)

관련 사이트
Elliott Smith 공식 사이트
http://www.elliottsmith.com
Elliott Smith 팬 사이트
http://www.sweetadeline.net
Domino Records의 앨범 페이지 : 앨범 전곡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http://www.dominorecordco.com/elliott_smith/loader_content.html
레이블 ANTI-의 Elliott Smith 페이지
http://anti.com/artist.php?id=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