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우림 – All You Need Is Love – T―entertainment, 2004 균열의 징후 자우림의 정규 5집 음반 [All You Need Is Love](2004)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그간 밴드의 경력에서 거의 최초라 할 대대적인 이미지 변신이 이루어졌다는 데에 있다. 총천연색의 음반 커버처럼, [All You Need Is Love]는 매우 밝은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음반의 인트로 격인 “Luv Pill”는 쿵짝대는 드럼과 중량감 넘치는 베이스 라인, 소란스런 기타 사운드가 얽혀들며 음반의 발랄한 이미지를 만들어간다. 현재 방송을 타고 있는 “하하하쏭”은 3집 음반 [Wonder Land](2000)의 히트곡 “매직 카펫 라이드”에 플라멩코(flamenco) 리듬과 브라스 섹션을 첨가한 듯한 흥겨운 분위기의 펑크팝이다. 이러한 밝은 이미지는 이어지는 “사랑의 병원으로 놀러오세요”와 “파트너”, “17171771”까지 지속된다. 음반 발매와 함께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밴드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펑크 음반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는 말을 했는데, 확실히 음반은 단순하고 요란한 펑크 사운드가 주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무조건 밝은 소리만으로 음반을 채운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자우림의 것이라 할 어두운 분위기의 곡들 또한 음반의 다른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불안정한 질주감을 선사하는 “I Saw Him”과 하드록 성향의 “曠野”, 시타 연주로 이국적인 느낌을 더한 (그리고 성형미인에 대한 비아냥을 담은 내용으로 현재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는) “실리콘 벨리” 등이 음반의 어두운 측면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데, 주목할만한 점은 위에 언급한 곡들이 그간 자우림의 음반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무거운’ 사운드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 있다. 이는 전작 [4](2002)에서 가장 크게 부각되었던 문제, 밴드로서 자우림의 존재감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에 대한 반응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음반이 자우림의 의도대로 밴드로서의 응집력을 제대로 살린 음반인 것 같지는 않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여전히 김윤아의 강렬한 퍼스낼러티가 밴드의 사운드를 압도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각각의 곡에 따라, 혹은 같은 곡 안에서도 급변하는 무드를 따라 지나치게 다양한 표정을 드러내는 김윤아의 보컬은 감탄스럽기는 하되 음반의 일관된 진행을 가로막는 요소로 작용한다. 게다가 불과 7개월 전에 발매했던 솔로 2집 [유리가면](2004)의 ‘신비로운 공작부인’과 [All You Need Is Love]의 ‘발랄한 여고생’ 사이의 괴리는 (“사랑, 지나면 아무것도 아닐 마음의 사치”에서 ‘당신이 바라는 건 오직 사랑 뿐’이라는 정서의 변화만큼이나) 당혹스럽다. 김윤아의 이런 종잡을 수 없는 다양한 컨셉을 차용하는 점 자체를 문제 삼을 생각은 없다. 본인의 말대로 “나에게 있어 음악은 자신을 다양하게 연출해내는 하나의 가면일 뿐”이라면 그 또한 나름대로 존중 받을 ‘전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소한의 연관성마저 상실한 이미지의 남용을 수용자 입장에서 굳이 이해해줄 필요 역시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명백한 송라이팅 능력의 퇴보이다. [All You Need Is Love]의 경우 모던록에서 뮤지컬, 하드록, 통속적인 발라드까지 섭렵하던 [4]에 비해 일관된 사운드 형식을 만들어 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에 반해 한 곡 한 곡의 흡인력은 현저히 감소했다. 힘이 가득 들어간 연주는 에너지의 전달보다는 방만한 분출에 보다 가까우며, 이는 결과적으로 음반을 소모적이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수록곡들의 배치에 있어서도 다소 두서가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이는 상반되는 분위기 사이의 전환이 흐름을 타기 보다는 단순교차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지적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4]의 중구난방 사운드와는 다른 측면에서 음반의 일관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자우림이 7년에 걸친 활동 기간을 거치며 주류 가요 씬 내부에서 자신들의 확고한 지분을 만들어낸 점은 분명 인정할 만한 성취이며, 다른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사심 없는 찬사의 대상이 되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All You Need Is Love]에서 드러나는 문제가 사실 데뷔 시절부터 자우림의 음악에 항상 제기되어 왔던 것임을 생각해 본다면, 이들이 그간의 활동을 통해 어떠한 ‘긍정적’ 발전을 이루어 왔는가에 대해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자우림은 이미 ‘자우림’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기본 이상의’ 상업적 성공을 담보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른 드문 밴드이다. 이는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이들의 인기가 얼마 정도 ‘관성’에 기대는 부분 또한 있다는 얘기이기도 할 것이다. 이는 대중적 성공을 거둔 가수에게 있어 당연한 부분이고 이를 근거로 그들의 성공을 폄하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기의 관성이 창작자의 ‘나태함’으로 변질되는 순간, 이전의 성과와 현재의 답보는 또 다른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점에 비중을 실은 [All You Need Is Love]는 실상 이전의 자우림과 그리 다를 것 없는 형태로 완성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송라이팅은 앞으로 자우림의 음악이 극복해 나가야 할 중대한 과제가 될 것이다. 어쩌면 이는 솔로 활동을 통해 보컬리스트로서 지극히 팽창된 자의식을 드러냈던 김윤아와. (김윤아가 빠진 자우림 격인) 쵸코크림롤스의 투박한 펑크팝 사이의 괴리가 드러나는 징후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All You Need Is Love]는 앞으로 이러한 균열이 어떤 식으로 조화를 이루어 나갈지에 대한 궁금증과, 하나의 사운드 공동체로서 자우림의 미래에 대한 우려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음반이다. 20041025 | 김태서 uralalah@paran.com 3/10 *이 글은 벅스웹진에 실린 글입니다. 수록곡 1. LUV PILL 2. 하하하쏭 3. 사랑의 병원으로 놀러 오세요 4. I Saw Him 5. 거지 6. 曠野 7.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8. 惡夢 9. 실리콘벨리 10. 파트너 11. 17171771 12. Social Life 13. TRUTH 관련 글 자우림 [B정규 작업] 리뷰 – vol.1/no.7 [19991116] 자우림 [The Wonder Land] 리뷰 – vol.2/no.14 [20000716] 자우림 [4] 리뷰 – vol.4/no.21 [20021101] 김윤아 [Shadow Of Your Smile] 리뷰 – vol.3/no.24 [20011216] 김윤아 [유리가면] 리뷰 – vol.6/no.6 [20040316] 관련 사이트 자우림 공식 사이트 http://www.jaur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