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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ll Scott – Beautifully Human : Words & Sounds Vol. 2 – Hidden Beach, 2004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 그녀가 말을 걸었다

필라델피아의 빈민가 출신으로 고등학교 교사이자 시인이었던 그녀가 2000년 [Who Is Jill Scott?]이라는 앨범으로 데뷔 했을 때, 많은 이들은 게토 지역에서 성장한 한 흑인 여성의 당당하고 진실한 ‘자아 찾기’에 박수를 보냈다. 힙합이 됐건 소울이 됐건 재즈가 됐건 여느 흑인 뮤지션들의 음악처럼 그녀의 음악 역시 이 모든 것을 취합하고는 있으나 (음악적인 부분을 잠시 미뤄 두고 라도), 그녀가 그들과 달랐던 점은 그녀가 하는 음악이 세상 모든 구매자를 위한 음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흑인 빈민가에서 성장한 그녀가 자신을 둘러싼 환경적 조류(潮流)에 휩쓸리지 않고 ‘옳은 것’에 대한 건전하고 능동적인 사고를 하며 올바르게 자라기까지 그녀가 가졌을 그 모든 경험에서 우러나온 가사들은 게토 지역에서 성장한 많은 흑인 여성들에게 공감을 샀다. 그녀는 가사에서 자신의 경험을 실질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면서 가졌던 기분이나 판단들을 통합하여 ‘시적인 표현’에 여과시켰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했을 형제 자매들에게 ‘용기를 가져라’,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다’라고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게토 지역에서 성장한 흑인 여성이 아닐지라도 누구에게나 위험은 존재한다. 신체적 위험은 아닐 지라도,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지켜나가기 위해선 무엇을 어찌 해야 하는지를 찾는 데에는 고민과 고통이 따르고 때로는 이것이 위험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설령 해답을 찾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지키는 과정에서 의지를 약하게 하는 많은 방해물들 또한 본인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위험’이다. 이렇듯 사람은 평생을 살며 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에게나 이런 식의 수많은 위험을 경험한다. 따라서 질 스콧이 (자신의 동지인) 흑인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형제/자매들에게 하는 그 이야기는 실질적으로 같은 커뮤니티 안에 있는 이가 아니어도 공감이 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경험담에서 그치지 않고, 그 모든 상황에 대한 최종적인 ‘마음가짐’을 시적인 서정성으로 순화 했기에 그녀의 말은 공감대의 범위를 더욱 넓힐 수 있었다. 덕분에 그녀는 메인스트림 씬에서도 네오 소울(neo-soul) 싱어로서 인지도를 덧붙일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2000년 데뷔 앨범에 이어 2001년 라이브 음반을 내고도 한참이나 뒤인 2004년, 두 번째 스튜디오 정규 앨범인 [Beautifully Human]을 가지고 나왔다. 첫 번째 음반에서 그녀의 음악은 올드 스쿨 소울(Old School Soul)과 맞닿아 있었으며 재지(jazzy)하면서도 훵키한 그루브를 만들되 그 움직임이 역동적이진 않았다. 그리고 간간이 지원되는 힙합 비트는 그녀가 살던 지역에선 매우 자연스러운 감각이다. 그 위에 얹혀진 그녀의 스포큰 워드(spoken word)는 소울풀한 음색에 젖어 노래와 말 사이의 경계를 자기 맘대로 넘나들었다. 두 번째 앨범에서도 역시 음악의 근간은 변화가 없으나, 음악을 표현하는 법이나 어조에 있어서 조금 더 다채로워지고 강해졌다.

일정한 간격의 조급하지 않은 비트 위에 입풀기를 하며 인트로가 시작되고 이 비트가 조금 더 쪼개진 형태로(그래봤자 지만) “I’m Not Afraid”의 기본 비트가 완성되어 흐른다. 조금은 음침한 신서 사이저 소리가 크진 않지만 은근한 볼륨으로 침울한 분위기를 조장하면 두려움에 질려 있는 듯한 질 스콧의 목소리가 (심지어는 코러스마저) 자기 주문이라도 거는 것처럼 “I’m Not Afraid”라는 가사를 연신 반복한다. 조금 후 이 소리가 잦아들면 보컬이 (상대적으로 볼륨이 작은) 연주를 힘있게 이끌어 가는 “Golden”이 흐른다. 노래의 배경을 이루는 연주소리의 크기는 “I’m Not Afraid”와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자기를 숨기며 메아리를 그렸던 “I’m Not Afraid”에 비해, “Golden”에서는 선봉에 서있는 당당한 그녀의 목소리로 인해 “I’m Not Afraid”와 대조적인 느낌을 준다. 힙합 비트와 재지한 건반의 선율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가 전부인 “Bedda At Home”은 이 세 가지만으로도 꽉 차는 사운드를 보여준다. 시시각각 표정을 달리하는 보컬은 그녀가 지닌 가창력의 진수를 보여주며 곡의 매력을 극대화 시켰다.

불현듯 도니(Donnie)가 떠오르는 따뜻하고 소박한 사운드로 시작을 알린 “Talk To Me”는 어느 중간 점을 지나면서 색다른 편곡을 보여준다. 곡 중간에 갑자기 (브라스 세션이 들어간) 사교클럽 분위기의 재즈연주로 탈의하는 이 노래는, 덕분에 다음 곡으로 넘어간 듯한 착각을 주며 그 분위기를 이어 화려한 색채로 마무리한다. 말하듯 가사를 읊조리며 따뜻한 가정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Family Reunion”은 사운드 또한 가사처럼 별 변화 없이 반복적으로 움직이지만 마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듯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녀의 말투로 인해 지루하기는커녕 그녀의 곁에 옹기종기 모이고 싶도록 만든다. 역시 스포큰 워드의 형태를 띠고 있는 “Not Like Crazy”는 트립합의 질감을 따온 비트로 인해 늘어지는 기분을 주면서도, 약간은 달리는 듯한 말 빠르기로 노곤함과 느림의 중간에서 꽤 적절한 균형을 잡아 나간다.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의 사운드를 약간 첨가한 가운데 소울풀한 보컬을 선보인 “Rasool”, 어쿠스틱 기타의 잔잔한 연주와 오버하지 않으면서도 격정을 품은 보컬의 아름다운 하모니가 돋보이는 “My Petition”, 그리고 어쿠스틱 버전으로 마무리지은 “Bedda At Home”까지 들으면 어느새 CD가 멈춘다.

20곡이 약간 안될 정도로 많은 곡을 앨범에 품었지만, 그 각각의 곡들이 제 각기의 질감을 가졌다는 점은 이 앨범을 높이 평가하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다. 이는 사용된 재료가 전작에 비해 다채로워졌기 때문인데, 소울, 훵크, 힙합, 재즈와 같은 장르에 근간을 두는 것은 여전하나 사용에 있어서는 ‘올드 스쿨 소울의 구현’이라는 대전제가 주는 다소 딱딱한 틀에서 해방된 느낌이다. 올드 스쿨 소울이라는 집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어 동네에서 들리는 다른 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렇다고 새롭거나 특별한 사운드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니지만, 이 소리들로 인해 그녀의 음악엔 입체감과 활력이 첨가되었다. 이제 그녀가 끌어쓰지 못할 사운드는 없는 듯 보인다. 설령 주류 힙합 비트나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의 메이킹을 시도했다 하더라도, 결국 그녀는 단순화의 미덕을 살려 소박하고 끈끈하며 소울풀한 자신만의 음악으로 변형해 놓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한 곡 안에서 들리는 악기의 선율이 많거나 화려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꽉 차는 기분을 각인 시켜 주는 건 역시 보컬의 힘이 컸다. 그녀의 읊조림은 어떤 곡에선 스포큰 워드의 형식으로 어떤 곡에선 멜로디 래핑 형식을 보이며 이 두 가지 사이에서 모호하게 경계선을 그렸다. 그리고 멜로디를 따라다니는 그녀의 말은 검질긴 점성을 가졌으며, 끈적한 그루브를 그리는 연주와 효율적으로 어울렸다. 따라서 그녀의 보컬과 연주 그리고 그녀의 말이 만나 만들어낸 시너지 효과는 꽤 큰 규모를 자랑하며 앨범의 완성도를 높였다. 20041028 | 권설희 fromsoul@empal.com

9/10

수록곡
1. Warm Up
2. I’m Not Afraid
3. Golden
4. The Fact Is (I Need You)
5. Spring Summer Feeling
6. Cross My Mind
7. Bedda At Home
9. Family Reunion
8. Talk To Me
10. Can’t Explain (42nd Street Happenstance)
11. Whatever
12. Not Like Crazy
13. Nothing (Interlude)
14. Rasool
15. My Petition
16. I Keep / Still Here
17. Bedda At Home (Acoustic 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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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Jill Scott 공식 웹사이트 (not in active)
http://www.whoisjillscott.com
Hidden Beach 레이블의 Jill Scott 페이지
http://www.hiddenbeach.com/jill_scott/index.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