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 writers and critics / Who prophesize with your pen
펜으로 예언하는 작가와 비평가들이여
And keep your eyes wide / The chance won’t come again
눈을 크게 뜨라 기회는 다시 오지 않으리니
And don’t speak too soon / For the wheel’s still in spin
성급히 입열지 말라 아직 수레바퀴는 돌고
And there’s no tellin’ who / That it’s namin’.
누구의 이름 앞에 멈출지 알 길은 없으니
For the loser now / Will be later to win
오늘의 패자는 내일의 승자가 되고
For the times they are a-changin’.
시대는 그렇게 변해가고 있으니

Bob Dylan, “The Times They Are A-Changin'” from live in New York City, 1964

정확히 40년전 밥 딜런의 노래가 오늘날 다시금 마치 예언처럼 들리는 것은 그의 통찰력이 미국 정치사의 동학(動學)을 꿰뚫어보았던 탓일 것이다. 그 때문에 딜런의 가사들은 이념의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에 의해 수없이 인용, 남용, 오용되어 왔다. 딜런의 노래말처럼 시대는 그렇게 변해가지만, 그 와중에는 변함없이 남아있는 것도 있고 달라진 모습으로 시대를 가로질러 돌아오는 것도 있다. 공화-민주 보수적 양당 지배체제가 전자에 속한다면, 베트남의 수렁(quagmire)이 이라크의 유사(流砂: quicksand)로 바뀐 것은 후자에 해당한다.

그래서 저항의 목소리는 바뀌어도 부르는 노래가 같은 것은 별로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이 부르는 돈 맥클린(Don McLean)의 곡 “무덤(The Grave)”은 그 배경이 베트남이든 이라크든, 전쟁의 한복판에서 엄습해오는 공포와 슬픔을 등골이 시리도록 전해온다.

George Michael, “The Gr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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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청문회에서 증언하는 존 케리

30년도 더 된 베트남의 망령은 올 미 대통령 선거에서 유난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부시의 ‘대안’으로 등장한 존 케리(John Kerry) 민주당 후보는 반전운동에 앞장섰던 베트남 참전용사라는 독특한 경력에서 ‘반전운동’ 부분을 어떻게든 억누르고 ‘참전용사’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다. 반면 집권 극우세력은 1971년 상원 의회 청문회에서 베트남전의 참상과 만행을 용기있게 고발한 청년 케리의 모습을 수없이 TV화면에 비추면서, 미군의 도덕적 권위를 실추시킨 그가 ‘전시(戰時)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선전하기에 바쁘다. 전쟁놀음에 광분한 극우보수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도대체 베트남전이 미국의 일반 대중에게 남긴 교훈은 무엇이길래 반전평화운동의 경력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감춰야 할 낙인처럼 취급당하는 것일까.

미국 사회의 전반적 보수 우경화는 어제 오늘의 현상이 아니지만, 요즘처럼 세계 여론과 미 국내 여론의 시각차가 극심하게 나타난 적은 드물어 보인다. 최근 CNN의 조사에 의하면 이라크 침공을 결정적으로 지원한 우방 영국에서조차 부시의 지지율은 케리에 30% 이상 뒤지는 데 비해, 선거를 일주일 남짓 남겨놓은 오늘까지 미국내 여론조사 결과는 반반이거나 부시가 약간 앞선 것으로 나타난다. 새빨간 거짓말과 황당한 헛소리로 점철된 이라크 침공의 구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인구의 절반을 이루는 데다, 개중 ‘세계가 우리 미국을 미워하는 이유는 질투와 시기심 때문’이라고 굳게 믿는 이들을 주변에서 볼 때면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9-11 테러 이래 우익 보수정권의 공포정치(politics of fear)가 대중을 사로잡았다는 분석은 그 자체로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좀더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 사회가 1970년대 이후로 상층뿐만 아니라 하층에서부터 보수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하여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20세기 전반부의 파시즘과 어느 정도 유사한 ‘아래로부터의 극우보수주의’가 반동적 정권을 떠받치고 있는 형국이다.

Sonic Youth, “Youth Against Fascism”, [Protest Records Vol.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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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아니면 지옥’ – 찬전(贊戰) 집회에서의 슬로건

따라서 파시즘의 대중심리에 관한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의 질문, 즉 ‘대중은 왜 스스로의 억압을 욕망하는가?’는 21세기 미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보수주의는 어떻게 미국의 심장부를 차지했는가](What’s The Matter With Kansas? How Conservatives Won The Heart Of America)의 저자 토마스 프랭크(Thomas Frank)는 민주당이 표방해온 자유주의(liberalism)가 1970년대 이래로 하층 노동계급 및 농민들의 이해관심을 저버리고 ‘신흥 중산층’과 기업가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게 된 데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는다. 그때로부터 30여년간 빈부격차는 75%이상 꾸준히 증가했지만, 자유주의 엘리트는 ‘계급 전쟁'(class warfare)의 수사학을 점점 더 멀리하면서 알게 모르게 하층 계급의 문화를 경멸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내버려진 기층 민중을 흡수하기 시작한 것은 기독교 근본주의적 가치관을 내세운 레이건의 소위 ‘보수주의 혁명’이었다. 낙태반대운동, 동성애 반대운동 등 교회 및 기타 지역조직을 바탕으로 한 보수주의 사회운동은 ‘격동의 1960년대’에 태어난 진보적 신사회운동에 맞서거나 이를 능가할 만큼 성장했다. 부시 정권의 ‘가짜 인민주의'(phony populism) 혹은 반동적 인민주의가 기반으로 삼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자유주의 엘리트에 대한 반감이고, 이는 극우 이데올로그들이 판을 치는 AM 라디오 및 케이블 뉴스 채널에 의해 지지 및 증폭되어 왔다.

Tracy Chapman, “Talking ’bout A Revolution” from the Montreux Jazz Festival, July 1988

레이건 정권의 막바지, 피폐한 클리블랜드의 슬럼으로부터 트레이시 채프먼은 ‘혁명’의 어렴풋한 속삭임을 노래했지만, 그 변화의 갈망은 4년 뒤 빌 클린턴의 민주당 정권이라는 다소 김빠지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 그래도 여러 미국인들이 그 때를 마치 태평성대처럼 회고하고, 케리 지지유세에 나선 클린턴이 록 스타마냥 대접받는 것을 보면 지난 4년간 상황이 얼마만큼 악화일로를 걸었는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부시가 패배하고 케리 정권이 들어선다면 상황은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불행히도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라크는 여전히 미군의 점령 하에 놓일 것이고, 피로 물든 반란군의 게릴라전은 계속될 것이다. 미국 사회의 ‘아래로부터의 보수화’ 경향은 일시적이나마 주춤하겠지만 금새 역전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제 3의 목소리가 제도적으로 차단되는 보수적 양당 체제 하에서 선거를 통한 변화는 명백히 제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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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센트럴 파크 반전 집회, 2004년 여름

그러나 오늘 이 시점에서 그런 변화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는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세계적인 규모에서 군사적 도발의 위협이 줄어들 것이라는 오직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변화를 긍정하기에는 충분하다. 불행히도 그것은 우리의 손을 떠나있는 문제이기에,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과 반전평화운동을 낳은 아메리카의 양심에 조심스런 기대를 걸어보는 수밖에 없다. 밥 딜런과 샘 쿡이 노래한 것처럼 변화를 필연으로 여기는 이들이 아직 남아있는 한 희망을 가져볼 만한 일이다. 변화가 우리의 바램을 저버리고 당장 오지는 않는다 해도. 20041026 | 김필호 antioedipe@hanmail.net

Sam Cooke, “A Change Is Gonna 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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