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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igy – Always Outnumbered, Never Outgunned – XL/EMI Korea, 2004

 

 

너무 늦은 소포모어

어떤 것은 기억나고, 어떤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The Fat Of The Land]가 나왔던 1997년의 여름은, 일본음반같은 포장으로 발매된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의 [Dig Your Own Hole]과 더불어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Baby’s Got a Temper”가 나왔던 2002년의 기억은 그 곡에 대한 인상만큼이나 희미할 뿐이다. “Breathe”에 맞춰 사람들이 히스테릭하게 몸을 흔들던 어떤 클럽에 대한 기억은 또렷하다. 하지만 [Always Outnumbered, Never Outgunned]를 들으며 걸어가던 ‘젊음의 거리’에는 재미없는 고함소리와 경적소리, 술냄새만 울려퍼질 뿐이었다.

돌이켜보면 테크노/일렉트로니카의 전성기는 빅 비트(big beat)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프로펠러헤즈(Propellerheads), 팻보이 슬림(Fatboy Slim), 케미컬 브라더스는 클럽에서, 비디오 게임기에서, 영화에서, MTV 광고에서, ESPN에서 사랑받았다. 특히 프로디지에 대한 사랑은 좀 더 각별했던 것 같다. 클러버와 록 페스티벌 관객을 모두 만족시켰던 이들의 소리는 ‘경험한 소리들을 모아 전혀 경험하지 못한 경험을 하게 만든’ 바 있었다. 그것이 어느덧 7년 전의 일이다. 리엄 하울렛(Liam Howlett), 키쓰 플린트(Keith Flint), 맥심(Maxim), 리로이 쏜힐(Leeroy Thornhill)은 그동안 뭘 하고 있었을까.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테크노 열풍은 프로디지 이후 ‘후속타’가 터지질 않았고, 결국 깨끗이 식어버렸다. 프로디지는 리엄이 클럽 DJ로서의 정체성을 증명하려는 듯 믹스 음반 [The Dirtchamber Sessions, Vol.1](1999)을 내놓았던 것이 전부였다. “Baby’s Got a Temper”가 처참하게 실패하면서 리엄은 그때까지 진행했던 새 음반 작업을 모두 뒤엎어 버렸다. 이 와중에 키쓰와 맥심, 리로이는 팀(혹은 밴드)를 나갔고, 결국 프로디지는 리엄 혼자의 프로젝트 팀이 되었다. 그 공백을 메운 이들은 래퍼 트위스타(Twista), 영화배우 줄리엣 루이스(Juliette Lewis), 그리고 테크노계의 ‘약방의 감초’인 오아시스(Oasis)의 리엄 갤러거(Liam Gallagher) 등등. 불안과 기대가 반반씩 섞인 상태로 대망의 신보 [Always Outnumbered, Never Outgunned]가 공개되었다.

음반 역시 불안과 기대가 반반씩 섞인 소리를 들려주며 시작한다. 편집증적인 리엄의 사운드 메이킹이 전면에 드러나는 가운데, 음반은 전작의 ‘록 친화적’인 성향보다는 ‘댄스 클럽 친화적’인 성향으로 기울어진다. 오프닝인 “Spitfire”는 전작의 오프닝 “Smack My Bitch Up”에 열광하던 사람들에게 옛 추억을 일깨운다. 중동풍 멜로디, 꾹꾹 눌러담은 인더스트리얼 기타와 둔탁한 드럼 라인, 절규하는 보컬, 등등. 그러나 여기에는 “Smack My Bitch Up”의 활기 혹은 ‘제어된 광기’가 없다. 뒤를 잇는 첫 싱글 Girls”는 초창기의 레이브 성향과 일렉트로-클래시(electro-clash)가 교묘하게 뒤섞인 가벼운 곡이다. 강박적인 베이스 라인과 화려하게 얽힌 사운드의 밀도는 여전하지만 역시 ‘익사이팅’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불안해진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기대보다 불안이 현실화된다. 요점만 말하자면 음반의 나머지도 모두 첫 두 곡에 대해서 한 것과 비슷한 설명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잘 짜인 사운드와 심심한 곡’이다. 영화 [올리버 스톤의 킬러(Natural Born Killers)]와 [스트레인지 데이스(Strange Days)]에서 인상적인 노래 솜씨를 들려주었던 줄리엣 루이스([올리버 스톤의 킬러]에서, 그녀는 맨발로 담배를 비벼 끄며 “I’m born bad∼”라고 노래한다)가 리드 싱어 역할을 담당한 전형적인 빅 비트 “Hot Ride”와 각종 샘플을 배치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Wake Up Call” 정도가 흥미롭게 들릴 뿐 나머지는 듣고 나서도 기억에 남질 않는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Invincible](2001)이 그랬던 것처럼 이 음반 역시 ‘사운드가 곡을 압도하는’ 경우에 속하고, 그래서 감탄은 할지언정 다시 들을 생각은 나지 않는다. 프로디지의 가장 큰 매력은 사운드가 아닌 ‘제어된 광기’였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으면서.

물론 이것이 프로지디의 잘못은 아니다. 그들(혹은, 리엄)은 앞선 세 장의 음반을 통해 ‘테크노와 록의 절충적 조화’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낸 바 있다. 한 외지의 평대로 만약 이것이 [The Fat Of The Land]가 나온 뒤 2년 뒤쯤 나왔다면 ‘전작의 부담을 벗지 못한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정도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다음 음반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그러나 그런 온건한 말을 하기에는 너무 늦게 음반이 나왔다. ‘항상 쪽수가 많은데도 절대 이기지 못한다(always outnumbered, never outgunned)’ 정도로 해석될 음반의 제목은 ‘게스트-보컬-꼴라주-댄스’ 음반인 프로디지의 신보에 대한 가장 적절한 평가가 될 것이다. 20031011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4/10

* 이 글은 벅스웹진에 실린 글을 손본 것입니다.

수록곡
1. Spitfire
2. Girls
3. Memphis Bells
4. Get Up Get Off
5. Hot Ride
6. Wake Up Call
7. Action Radar
8. Medusa’s Path
9. Phoenix
10. You’ll Be Under My Wheels
11. The Way It Is
12. Shoot Down

관련 사이트
Prodigy 공식 홈페이지
http://www.prodigy.co.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