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009090317-09027170001

이장혁 – 이장혁 vol.1 – 12 Monkeys Record, 2004

 

 

짙푸른 청춘 송가

청춘은 왜 ‘푸른색’일까?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청춘, 정확히 말하자면 십대 후반과 이십대 전반을 아우르는 시기를 묘사할 때 푸른색에 빗대어 온 게 사실이다. 혹자는 청바지 때문이라고 할지 모르고(하여, 미디어와 자본에 의해 재구성된 허구적인 개념이라고 일갈할지도 모르겠고), 혹자는 이런저런 상처로 멍든 푸른색을 떠올릴지 모른다. 어딘가에서 라이센스를 받았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푸른색은 청춘의 색이고 이것은 이장혁 솔로 1집을 규정하는 색깔이기도 하다. 다만, 어두운 푸른색 계열이다.

1972년 생의 그가 아무밴드의 보컬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97년 즈음, 스물 다섯의 그는 거칠고 절망적인 몽상가였으며 한없이 우울한 정서를 함부로 내보이던 청년이었다. 그런지/펑크/브릿팝으로 분열과 확장을 거듭하던 당시 홍대 앞 클럽씬의 사운드 중 아무밴드의 서정적이고 대곡 지향적인 음악은 소수가 향유하던 음악이기도 했다. 1집 [이판을사]를 발표한 뒤 소식이 끊겼던 그가 클럽 빵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2003년, 그는 거기서 어쿠스틱 기타를 메고 등장해 “스무살”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 두 번째 빵 컴필레이션 [Lawn Star]에 “꿈을 꿔”를 수록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뒤 1년 만에 그는 첫 솔로 앨범 [이장혁 vol.1]을 발표했다.

이 음반을 지배하는 정서는 추억과 상념이다. 이제 서른을 넘긴 그는 자주 뒤돌아본다. 뒤돌아보며 서성거린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는 가늘고 희미하다. 전기 기타의 매력적인 훅(hook)도, 곡의 사이사이를 메우고 있는 현악기의 배치도, 아무밴드 시절에 만들어진 “스무살”을 포함하여 “누수”, “자폐”, “꿈을 꿔”, “영등포”와 같은 곡들의 분위기는 삶의 어느 지점에 멈춰 서서 푸르게 빛나던 한 시절을 돌아보는 어중간한 나이의 사내를 화자로 두고 있는 듯하다. 어딘지 짠한, 그런 모습이고 그런 사운드다. 음반을 여는 첫 곡 “누수”의 하모니카 연주는 그 서정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데 후반부에 폭발하듯 터지는 코러스(chorus)의 ‘이런 날 잡아줄수 있는지’라는 가사는 희망적이라기보다는 간신히 절망을 벗어난 자의 지친 한숨으로 들린다. 이어지는 “스무살”은 가장 오래 전에 만들어진 곡인데도 왠지 이 음반의 타이틀곡처럼 들리기도 하고(물론, 갓 스물의 고개를 넘어가는 한 사내의 성장기에 대한 클리셰라는 혐의를 벗을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자폐”의 폐쇄적이고 억눌린 듯한 사운드와 그에 반하는 가사는 이장혁이 ‘스무살의 감수성’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특히 “스무살”과 쌍을 이루는 “영등포”는 어쿠스틱 기타 리프가 반복되는 가운데 아련한 하모니카 연주가 눈물겨운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곡인데, 후반부로 갈수록 몽환적으로 진행되는 사운드 속에서 울리는 체념적인 가사는 특히나 간절하다.

그의 청년 시절이 유난히 아프게 기억되는 것인지, 지칠 대로 지친 그에게 종교와 가족이 유일한 버팀목이 되었는지, 그 시간이 푸르게 멍든 자국으로 기억되는지 나는 모른다(음반 속지에 적힌 ‘날 구원하신 하느님과 가족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말로 유추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러나 이 음반을 지배하는 정서가 절망과 체념, 상심과 추억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한편으로는 ‘정리’의 의미일 것이라는 점은 알 것 같다. 돌아보기 위해서는 일단 멈춰야 한다. 뒤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음반에서 느껴지는 서성이며 돌아보는 듯한 그의 모습은 그리 슬픈 풍경이 아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돌아온 이장혁의 가늘고 희미한 목소리에는 먼 길을 돌아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울림이 있다. 그것은 기교나 기술로는 메울 수 없는 간극, 이른바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자의 진심이다. 어둡다해도, 푸른색은 결국 푸른색이라는 얘기다. 20041004 | 차우진 lazicat@empal.com

8/10

수록곡
1. 누수
2. 스무살
3. 동면
4. 성에
5. 자폐
6. 꿈을 꿔
7. 영등포
8. 칼
9. 외출

관련 사이트
이장혁 공식 사이트
http://www.leejanghy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