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jork – Medulla – Universal, 2004 아날로그 일렉트로니카, 디지털 아카펠라 뷰욕(Bjork)의 3년만의 신작 [Medulla](2004)는 음반의 거의 모든 사운드를 목소리로 채워 넣은 음반이다. 뷰욕의 음악이 일렉트로니카(electronica)로 분류되어 왔음을 상기한다면(물론 일렉트로니카라고 하기엔 싱어의 개성이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Medulla]가 뷰욕의 경력에 있어 큰 변화를 시도한 음반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소리’인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진 음반을 목표로 했다는 뷰욕의 기획의도는 분명 커다란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음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직접적이며 개인적인 소리들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반면 [Vespertine](2001)까지 아슬아슬하게 유지해오던 팝적인 훅은 상당 부분 손실되었다는 지적 역시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Medulla]의 성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는 극도로 침잠한 내면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음반의 첫 곡 “Pleasure Is All Mine”을 통해 드러난다. [Vespertine]의 “Cocoon”이나 [Homogenic](1997)의 “All Is Full of Love”와 맥락이 닿아있는, 가느다란 호흡의 떨림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Pleasure Is All Mine”은 전체적인 음반의 분위기를 결정짓는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은 비교(秘敎)의 성가를 연상시키는 “Show Me Forgiveness”와 “Vokuro”, “Submarine”, “Desired Constellation”, “Sonnets/Unrealities XI” 을 지나며 점점 외골수적인 느낌으로 발전해 나가며, 불안정한 피아노 반주와 헐떡이는 뷰욕의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진 “Ancestors”에 이르러 극단적인 형태로 방출되기에 이른다. 음반의 두 번째(이자 ‘핵심’적인 성격을 구성하는) 특성은 목소리로 거의 대부분을 대체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에 있다(베이스 신디사이저가 주도하는 “Mouth’s Cradle” 같은 예외적인 트랙도 있지만). 마이크 패튼(Mike Patton, 前 페이스 노 모어(Faith No More)의 보컬)의 음습한 보컬과 중독성 비트가 환각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Where Is the Line”과, 드럼앤베이스(drum’n’bass)를 연상케 하는 라젤(Rahzel, 루츠(The Roots)의 멤버)의 현란한 비트박스를 접할 수 있는 “Who Is It (Carry My Joy on the Left, Carry My Pain on the Right)”, 런던 콰이어(London Choir)의 귀기어린 코러스로 부유하는 (일렉트로니카 사운드가 가장 많이 차용하는 이미지 중 하나일) ‘어머니 대양’의 다채로운 표정을 형상화해내는 “Oceania”, 라젤과 도카카(일본 태생의 1인 아카펠라 뮤지션)의 비트박스와 그레고리 펀헤이건(Gregory Purnhagen)의 ‘human trombone’ 사운드로 이루어진 (가장 상업적이고 플로어(floor) 지향적인) “Triumph of a Heart”가 만들어내는 ‘아날로그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는 [Medulla]가 거두어들인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목소리라는 소재 자체에 지나친 비중을 두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를 팝적인 훅의 부재와 무리하게 연관시키지 않는다면(오히려 이러한 성향은 음악 자체가 좀 더 내면적이 되었다는 점에서 근거를 찾아야 할 것이다), [Medulla]가 의외로 이전 뷰욕의 사운드 작법에서 크게 벗어나는 음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그녀는 많지 않은 사운드 채널을 통해 미니멀한 사운드 축조를 구사하고 있으며, 이를 풍성하게 연출해내는 공간감을 살린 프로덕션을 선호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Medulla]는 ‘반(反) 테크놀로지’ 정서를 드러내는 음반이 아니다. 오히려 이 음반은 하이 테크놀로지의 시대에나 나올 수 있을 사운드를 담아내고 있다. [Medulla]가 목소리를 사용하는 방식은 지극히 인공적인다. 음반 전체를 수놓는 비트박스는 첨단 힙합과 일렉트로니카의 그것을 거의 그대로 재현하고 있으며, 각종 효과음으로 사용되는 음성들 또한 마크 벨(Mark Bell, LFO의 멤버)과 마트모스(Matmos), 멈(Mum) 등의 프로그래밍을 통해 철저히 계산적인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테크놀러지를 지양하기 보다는 테크놀로지를 통해 자연체의 사운드를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심상을) 철저히 통제해 나가는 형태에 보다 가깝다. [Medulla]는 아날로그 소재로 재현되는 디지털 사운드, 혹은 디지털 방식을 통해 환기되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Medulla]는 앞으로 서로 상반되는 두 무대를 통해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음반이 될 것이다. 음반의 ‘소재’인 목소리가 부각될 ‘라이브’ 무대와 리믹스 과정을 거치며 음반의 ‘구조’인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에 의해 재구성될 ‘댄스 플로어’ 사이에서, 뷰욕은 음반을 통해 이루어낸 효과들과 상반되는 요소들이 충돌하며 만들어갈 아이러니를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이는 약간 이상한 팝/댄스 음반 [Debut](1993)를 들고 나왔던 뷰욕의 데뷔 시절을 떠올렸을 때 기대할 수 없었던, 자신의 음악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진화해 나가는 아티스트쉽의 확장이다. 그리고 아테네 올림픽 개막식 행사 용으로 “Ebony and Ivory”나 “We Are the World” 풍의 송가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에 “Oceania” 같은 기괴한 곡으로 화답하는(게다가 뻔뻔하게 식장에서 노래까지 하는) 그 대단한 자의식 앞에서는 일종의 경외감 마저 품게 된다. [Medulla]가 뷰욕의 경력에서 ‘정점’에 위치할 음반이라 단언하지는 못하더라도, 뷰욕의 야심과 능력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음반임은 분명한 듯하다. 20041004 | 김태서 uralalah@paran.com 9/10 수록곡 1. Pleasure Is All Mine 2. Show Me Forgiveness 3. Where Is the Line 4. Vokuro 5. Oll Birtan 6. Who Is It (Carry My Joy on the Left, Carry My Pain on the Right) 7. Submarine 8. Desired Constellation 9. Oceania 10. Sonnets/Unrealities XI 11. Ancestors 12. Mouth’s Cradle 13. Midvikudags 14. Triumph of a Heart 관련 글 Bjork [Homogenic] 리뷰 – vol.2/no.21 [20001101] Bjork [Selmasongs] 리뷰 – vol.2/no.20 [20001016] Bjork [Vespertine] 리뷰 – vol.3/no.18 [20010916] 관련 사이트 Bjork 공식 사이트 http://www.bjork.com Bjork 한국 팬 사이트 http://www.hikin.com/bj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