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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iver Apples – Contact – Kapp/Radioactive Records, 1969/2003

 

 

아날로그 일렉트로닉 록의 위대한 기념비

전자음악에 원초성(primitivity)이라는 개념이 어울릴 수 있을까. 테크놀로지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전자음악은 원초성의 영역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실버 애플스(Silver Apples)를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물론 로버트 무그(Robert Moog) 박사에 의해 개발된 무그 신디사이저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1960년대 말부터 Yes(예스), 제네시스(Genesis),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 Palmer) 등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들이 전자음악을 구사했고, 시드 배릿(Syd Barrett)이 이끌던 시절의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는 전자음이 결합된 싸이키델릭 록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보다 원초적이고 실험적인 성향의 아날로그 일렉트로니카는 실버 애플스를 효시로 볼 수 있다.

실버 애플스는 1967년 뉴욕에서 결성된 듀오로서 멤버는 보컬 겸 신디사이저 연주자 시미언(Simeon)과 드러머 대니 테일러(Danny Taylor)이다. 이들이 데뷔한 1960년대 말은 싸이키델릭 록의 전성기였고 이들도 영향을 받았지만, 싸이키델릭 록은 어디까지나 기타 중심의 사운드라는 점에서 이들은 다르게 취급되어야 한다. 즉 이들의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프로토 신쓰(proto-synth)’라는 말로 대변되는 원초적이면서도 전위적인 전자음과 에쓰닉한 퍼커션 연주를 조합하고 이를 싸이키델릭한 무드로 포장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싸이키델릭 록과는 차별화된다. 다소 말장난 같지만 실버 애플스를 장르론적으로 규정한다면 ‘아방가르드 싸이키델릭 프로토 일렉트로니카(avant-garde psychedelic proto-electronica)’ 정도가 될 것이다.

이들이 개척한 원초적인 아날로그 일렉트로닉 록은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 노이!(Neu!), 파우스트(Faust)와 같은 크라우트록(krautrock)의 발전이나 1970년대 후반 수어사이드(Suicide)가 대변한 일렉트로닉 포스트 펑크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또한 쓰로빙 그리슬(Throbbing Gristle)이나 카바레 볼테르(Cabaret Voltaire)와 같은 영국의 1세대 인더스트리얼 록과 스페이스멘 3(Spacemen 3), 스테레오랩(Stereolab) 등의 실험적 전자음악에서도 이들의 흔적이 발견되는 등 실버 애플스는 한 마디로 ‘전자음악계의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라고 칭할 만한 선구자적 밴드이다. 즉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기타 노이즈를 발명하여 록 음악의 전위에 섰다면, 실버 애플스는 신디사이저의 일그러진 드론 사운드로 록의 대지에 일렉트로니카의 영역을 명확하게 제시해 두었던 것이다.

1968년에 발표된 역사적인 데뷔 앨범 [Silver Apples]는 놀랍도록 앞서간 앨범이다. 첫 곡인 “Oscillations”에서 시미언은 발진(發振; oscillation)을 ‘전자적 환기(electronic evocation)’라고 규정한다. 즉 이는 공명과 진동(발진)을 통해 사운드가 형성되는 음악의 물리적 구조가 전자적인 현상으로 승화한다는 선언인 셈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트랙들은 이러한 선언을 방법론적으로 실험하고 예술적으로 구현한다. 투박한 전자적 노이즈는 끊임없이 펄스(pulse)와 공명을 뿜어내고 여기에 에쓰닉한 드럼 비트가 가세하여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이 앨범은 전반적으로 2집 앨범 [Contact]보다는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Segreen Serenades”와 같은 세련된 일렉트로닉 팝이나 “Velvet Cave”, “Dust”와 같은 실험작들은 최근에 만들어진 앰비언트/스페이스 록 넘버들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실버 애플스의 대표작인 [Contact]는 전작에 비해 보다 강렬하고 원색적인 사운드와 전위적인 전자음으로 가득 차 있는 명반으로서 가장 최근인 2003년을 포함해 몇 차례 재발매되었던 앨범이다. 이 앨범을 통해 그들은 ‘스페이스 록의 아버지’라는 찬사를 얻으며 록 음악 역사에 또 다른 기념비를 세우게 된다. “핸드 메이드 발진기를 기타의 왜미 바처럼 휘두른다”는 [롤링 스톤]지의 표현처럼 시미언의 신디사이저 연주는 단순하고 로(raw)하면서도 대단히 자극적이고 환각적이다(시미언은 12개의 발진기와 고물 전기부속품으로 구성된 홈메이드 신디사이저를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연주는 지금은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기본이 된 루핑과 리버빙(riverbing)을 완벽하게 구사한다. 시종일관 선율이라고는 없이 ‘웅웅거림(buzzing)과 삐삐소리(bleeping)가 하울링 덩어리같이 부유하면서 신경을 자극하는 “Pox on You”나, “You’re Not Foolin’ Me”와 같은 곡에서 신디사이저로 만들어지는 와와 이펙트와 극단적인 노이즈는 가히 압권이다.

한편, 짐 모리슨(Jim Morrison)과 같이 어둡고 바이브레이션이 강한 시미언의 보컬은 마치 ‘주문을 외는 듯한(fey)’ 음침한 웅얼거림으로 일관하면서 더욱 불길한 느낌을 배가시키고 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에쓰닉한 드럼 연주가 로큰롤의 골격을 유지하고 여기에 노이즈에 가까운 전자음을 배치하여 마치 싸이키델릭 록 밴드의 연주에 신디사이저 연주를 덧칠하는 듯한 다성적인(polyphonic) 중첩성과 변칙성이 두드러진다. 다시 말해 이들의 음악은 난해한 음향실험만이 지속되기보다는 록적인 비트와 팝적 선율을 잃지 않고 있기에 실험적임에도 친숙하게 들린다(“I Have Known Love”과 같이 사랑스런 선율을 담은 완벽한 팝송을 들어보라).

[Contact]는 이색적인 악기 사용과 샘필링의 운용도 돋보이는 앨범이다. 먼저, 엉뚱하게 등장하는 로킹한 컨트리 록 “Ruby”와 “Confusion”에 등장하는 밴조 기타 연주는 앨범 전체의 일렉트로닉 노이즈 사이에서 어쿠스틱의 이질감과 긴장감을 극대화한다(전작에서도 플룻이나 바이올린 등 어쿠스틱 악기가 쓰인 바 있다). 또한 “You and I”의 이륙하는 비행기 소음이나 “You’re Not Foolin’ Me”의 자명종 소리 등 샘플링이 사용되기도 하고 “Water”의 말미에는 난데없는 박수소리가 삽입되기도 하는 등 장식적 요소도 가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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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 MCA 레코드에서 발매한 합본 앨범 [Silver Apples/Contact]의 앨범 재킷

실버 애플스는 캐프(Kapp) 레코드의 부도로 인해 이미 녹음된 3번째 앨범을 발표하지 못하고 해체되었다. 그 후 수십년 동안이나 저주받은 이름으로 묻혀있던 실버 애플스는 1996년에 시미언이 공연 활동을 재개하면서 다시 수면위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또 이와 때를 같이하여 부틀렉 형태로만 재발매되던 이들의 초기작들이 리마스터링되어 나오면서 재조명 작업도 본격화된다. 1997년에는 1, 2집 합본 앨범이 MCA 레코드를 통해 재발매되었고, 훨리버드(Whirlybird) 레코드는 1997년에 1집과 2집을 각각 재발매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시미언은 스티브 앨비니(Steve Albini)와 작업하면서 1998년에 2장의 리믹스 앨범과 신작을 내놓으며 야심찬 행보를 내딛지만 이 앨범들은 초기작들의 명성에 미치지는 못했다.

한편, 후배 뮤지션들의 커버 연주와 샘플링 작업도 계속되었다. 특히 1996년에는 후배 밴드들의 헌정작인 [Electronic Evocations: A Tribute to the Silver Apples]가 나왔는데, 여기에는 윈디 앤 칼(Windy & Carl), 써드 아이 파운데이션(Third Eye Foundation), 앰프(Amp)와 같은 앰비언트/스페이스 록 진영의 대표적 밴드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또 시미언은 1990년대 말에 롭 레빗(Rob Levit)과 같은 재즈 뮤지션이나 소닉 붐(Sonic Boom), 앨키미스츠(The Alchemysts)와 같은 실험주의 전자음악가들과 같이 작업하기도 했고, 시드 배리트(Syd Barrett) 헌정작인 [Tribute to Syd Barrett](2000)에 “Scarecrow” 커버곡을 수록하는 등 지금까지도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만일 아날로그 방식의 전자음악에 관심이 있는 뮤지션이라면 제일 먼저 실버 애플스의 음악을 들어야하지 싶다. 컴퓨터와 각종 디지털 장비로 화려하고 기묘한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라서 그런지 손에 기름때를 묻히며 조립된 아날로그 장비에서 출몰하는 기괴한 전자음은 오히려 새롭게 들린다. 무엇이든 뚝딱 고쳐내고 조립하던 오래 전 TV 연속극의 전파상 아저씨 ‘순돌이 아빠’가 그리운 것처럼, 디지털 시대에는 찾기 힘든 이러한 아날로그 일렉트로닉 음악의 장인적 경지는 대중음악이 잃어가고 있는 또 하나의 위대한 유산이 아닌가 한다. 20040929 | 장육 jyook@hitel.net

10/10

P.S 1.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의 기본 부품은 발진기(oscillator), 필터, 앰프인데, 오실레이터(OSC)는 진동을 발생시키는 장치를 통틀어서 말하기도 하지만 전기적으로 동작하는 신디사이저에서는 전류의 파형을 만들어 내는 장치를 일컫는다. 즉 오실레이터는 건반의 피치에 맞는 주파수를 가진 파형을 필터에 전달하여 음을 만들어내는 장치로서 초기적 형태의 신디사이저라고도 볼 수 있다.

P.S. 2. 이들의 대표작은 [Contact]이지만 초기작 모두를 감상하고자 한다면 앞서 소개한 합본 앨범 [Silver Apples/Contact]가 더 유용할 것이다.

수록곡
1. You and I
2. Water
3. Ruby
4. Gypsy Love
5. You’re Not Foolin’ Me
6. I Have Known Love
7. Pox on You
8. Confusion
9. Fantasies

관련 사이트
Sliver Apples 공식 사이트
http://www.silverappl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