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ssor Sisters – Scissor Sisters – Universal, 2004 ’70년대의 재구성’엔 청진기가 필요 없다? 2001년 뉴욕에서 결성된 혼성 5인조 밴드 시저 시스터즈(Scissor Sisters)의 음악세계는, 적어도 그들의 첫 음반 [Scissor Sisters](2004)를 중심 축으로 놓고 본다면, ‘인용’과 ‘패러디(풍자)’라는 개념을 빼놓고는 도저히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마치 프랭크 자파(Frank Zappa)처럼, 심각한 아방가르드 정신으로 무장한 채 영미 팝?록의 패러다임을 과감히 비틀겠다는(뉴욕이라는 이들의 출신 배경을 볼 때 기대해봄직한) 야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것은 아닌 듯. 시저 시스터즈가 구사하는 ‘리바이벌’의 일대 향연은 ‘오리지널’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존경심’으로 가득하다. 특히 시저 시스터즈의 엘튼 존(Elton John)을 향한 존경심 가득한 집념은, 음반 전체에 일종의 ‘컨셉’을 이룬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Scissor Sisters]를 자세히 들어보면 이들의 엘튼 존을 향한 ‘오마주’는 확실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본질적’ 차원으로 승화되는 게 아닐까 싶다. 즉 우리가 흔히 엘튼 존 하면 떠오르는 그런 발라드 넘버뿐만이 아니라, 최전성기를 누리던 1970년대 중반 그의 스타일을 속속들이 꼼꼼하게 학습한 흔적이 짙은 것. 실제로 엘튼 존의 전형적인 발라드를 차용했다고 볼 수 있는 노래는 “Mary” 한 곡뿐이다. 이 곡은 특히 “Rocket Man”과 매우 흡사한데, 흥미롭게도 간주 부분에 등장하는 70년대 스타일의 연주(전기 피아노와 기타의 앙상블)는 피터 프램튼(Peter Frampton)의 “Baby, I Love Your Way”의 정서를 거의 그대로 계승한 듯 하다. 이밖에 ‘엘튼 존 과(科)’의 곡들이라고 할 수 있는 “Take Your Mama”와 “Music Is the Victim”은 그의 음악 세계를 세심하게 파악한 이들만이 탄생시킬 수 있는 엣센스로 가득하다. 즉 “Crocodile Rock”이나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같은, 글램 록의 체취를 강하게 풍기던 엘튼 존 식 로큰롤을 착실히 답습한 것. 물론 시저 시스터즈의 ‘음악 순례’는 엘튼 존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첫 곡 “Laura”는 뒤틀린 풍자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피아노와 멜로디카 연주가 랜디 뉴먼(Randy Newman)의 신랄한 스타일을 거의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듯. 곡 중간 와와 이펙트가 들어간 기타 연주와 후반부 브래스가 가미된 두터운 사운드는 예의 70년대 분위기를 한가득 발산한다. “Tits on the Radio”와 “Filthy/Gorgeous”는 쉭(Chic) 스타일의 고급스러우면서도 관능적인, 통통 튀는 베이스가 중심이 된 70년대 훵키(funky) 디스코의 정수를 그대로 재현하는 노래들. 여기에 날카롭게 가세되는 팔세토(falsetto, 가성(假聲)) 보이스가 별 생각 없이 살아도 모든 게 즐거웠던(혹은 그랬다고 널리 믿어왔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자는 듯 자못 유혹적이다. 신서사이저의 오밀조밀한 연주가 두드러지는 “Lovers in the Backseat”과 기계적인 비트의 반복으로 차가운 느낌을 풍기는 “Better Luck” (중반부에 등장하는 컨트리 록 스타일의 기타 솔로는 ‘전형적’이면서도 신선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펫 샵 보이스(Pet Shop Boys) 스타일을 방불케 하는 정교한 느낌 가득한 “It Can’t Come Quickly Enough” 등은 모두 신스 팝의 범주 안에 묶어 놓을 수 있는 댄스곡들. 그러나 [Scissor Sisters] 음반의 ‘압권’을 이루는 노래는 단연 “Comfortably Numb”가 아닐까. 불멸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걸작 [The Wall](1979)에 수록된 가슴 저미는 명곡이, 시저 시스터즈의 ‘가위손’을 거쳐 휭키 디스코 넘버로 변신한 모습을 보노라면 가히 충격적. 스티비 닉스(Stevie Nicks)의 “Edge of Seventeen”을 방불케 하는 기타 연주로 시작하여 비지스(Bee Gees)나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의 트레이드 마크인 팔세토 창법(‘팔세토’는 보컬리스트인 제이크 시어즈(Jake Shears)가 이 음반 전체에서 구사한 양대 축 중 하나다. 나머지는 엘튼 존 스타일의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뱉는 보컬)이 난무하는 이 노래는 소름끼칠 정도로 전형적인 훵키 뮤직으로 천연덕스럽게 전개된다. 또한 노랫말 중 “relax!” 부분을 프랭키 고스 투 할리웃(Frankie Goes To Hollywood)의 명곡 “Relax”로 교묘하게 배치시킨 솜씨는 기상천외하다. 하지만 음반 끝 곡인 “Return to Oz”에 이르면, 시저 시스터즈의 태도가 말 그대로 ‘키치’적인 정서로만 똘똘 뭉쳐있지는 않다는 인상을 확실하게 받게된다. 애잔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다감한 보컬로 시작되는 ‘Return To Oz’는, 미디엄 템포의 팝/록으로 전개되는 곡. 여기에 영롱한 음색의 피아노 연주가 가미되며, 1970년대 초반 스페이스 록 시절의 데이빗 보위(David Bowie)를 연상시키는 분위기로 충만하게 된다. 믹 론슨(Mick Ronson)을 연상시키는 기타 솔로 또한, 심각하고 진지한 분위기로 대미를 장식하려는 시저 시스터즈의 의도에 부합된다. 1970년대의 대중음악을 잊지 못하는 이들에게, [Scissor Sisters]는 즐겁다 못해 ‘오싹한’ 기분을 안겨준다. 시저 시스터즈의 거침없는 ‘과거로의 회귀’ 정신은, 최근 들어 이 쪽 방면에 유행으로 자리를 잡은 ‘복고풍’ 흐름과 정확히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프란츠 퍼디난드(Franz Ferdinand)가 1980년대 유행음악의 공기를 거의 완벽하게 재구성함으로써 가장 각광받는 밴드의 위치에 올랐다면, 뉴욕의 시저 시스터즈가 지향하는 ‘시간여행’의 지점은 정확히 1970년대 중후반의 대중음악 씬. 그것도 훗날 ‘가장 상업적’이었다고 일컬어지는 돈 냄새 가득한(하지만 오늘날까지도 ‘클래식 록’으로 즐겨 애청되는) 장르에 몸을 담근 것이다. 이 때문에 흥겨움에 절로 몸을 흔들면서도, 시저 시스터즈의 간결유쾌 한 복고정신을 과연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지 고민이 꽤 드는 것도 사실이다. 시저 시스터즈가 언급하고 있는 엘튼 존이나 비지스 등의 ‘고전’은 분명 허를 찌르는 색다른 차원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여태껏 미국 인디(또는 언더그라운드) 록 뮤지션들의 ‘지침서’가 되었던 영웅들이 비틀즈(The Beatles),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 킹크스(The Kinks),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 닐 영(Neil Young), 빅 스타(Big Star) 등이었음을 생각해보면 말이다. 특히 1980년대 뉴 웨이브에 대한 경배와 재해석의 흐름이 힘을 얻어가는 현 시점에서 돌연 터져 나온 시저 시스터즈의 존재감은, 역설적으로 1970년대 뮤직 씬의 불가해한 심연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든다. 더욱 섬뜩한 것은, 그저 시저 시스터즈의 발랄한 댄스뮤직 앞에서는 일차적으로 몸과 마음이 ‘무장해제’될 뿐이라는 것. 이건 엄밀히 말해 그들의 음악이 대단하다기 보다는, 그만큼 70년대의 ‘필’이 말로 형언하지 못 할 만큼 우리의 뇌리 속에 단단히 뿌리 박혀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리라. 청진기를 감히 들이댈 엄두를 못 낼만큼, 그 때 그 시절은 눈부시게 찬란했다. 20040918 | 오공훈 aura508@unitel.co.kr 7/10 *이 글은 벅스웹진에 실린 글입니다. 수록곡 1. Laura 2. Take Your Mama 3. Comfortably Numb 4. Mary 5. Lovers in the Backseat 6. Tits on the Radio 7. Filthy Gorgeous 8. Music Is the Victim 9. Better Luck 10. It Can’t Come Quickly Enough 11. Return to Oz 관련 사이트 Scissor Sisters 공식 홈페이지 http://www.scissorsister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