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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 – SINCE 1993… one – 작은사람들, 2004

 

 

리메이크 민중가요 듣기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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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꽃다지와 조국과 청춘이 노래운동진영의 양 축을 이루며 노래를찾는사람들, 노래마을, 희망새 등의 노래운동집단이 활동하던 때 무대에서 전기기타를 들고 “열사가 전사에게”를 ‘헤비하게’ 부르던 이들이 등장했다. 이른바 ‘민중가요 록밴드’라고 불리던 천지인의 등장이다. 천지인의 1집(1993)은 뮤직센터21이라는 ‘불법’ 레이블을 통해 대학가 사회과학 서점이나 집회(데모)현장에서 유통되었다. 당시 ‘대학 운동권’에서 이 음반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이들 덕분에 록을 접목한 민중가요라는 스타일과 민중가요의 진정성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긴 했지만, 천지인 1집의 “청계천 8가”, “청소부 김씨 그를 만날 때”, “우리들의 외식”, “열사가 전사에게”와 같은 곡들이 오랫동안 사랑받은 것은 사실이다. 수록곡들의 서정적인 멜로디와 깊은 울림의 보컬은 김성민(기타)과 권민혁(보컬)의 역할이었다. 이 둘은 천지인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이들의 등장은 노래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일로 여겨진다. 천지인 덕분에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지점들이 쟁점화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이들은 대학 진보세력들의 취향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이른바 천지인의 음악을 듣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분명히 하는 장치가 되었다. 천지인을 통해 비로소 대학에서는 취향의 정치학이 발현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한 이들은 민중가요에 대한 개념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기존의 민중가요란 정서적으로 ‘현장의 삶’에 천착하고, 형식적으로 ‘가수/연주자’의 개념을 ‘해체’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민중가요란 누구나 쉽게 연주하고 부를 수 있도록 기본 코드가 주로 사용된, 주로 직설적인 가사로 만들어진 노래였다는 얘기다. 그런데 천지인의 노래들은 통기타를 들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니었다. 이를테면 천지인의 노래는 ‘감상용’이었다. 소외의 삶을 노래함에도 불구하고, 과연 주인공들이 노래들을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 논점이되었다.

사실 천지인의 등장은 시대적인 요구이기도 했다. 1991년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그로 인한 진보세력의 분열, 대중(정확하게는 대학 내 소비층)의 취향이 바뀌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맞물리던 시점에 록이라는 대중음악 스타일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천지인의 시도는 이후 노래공장의 [진보/미래/희망](1994)의 록과 랩(이 음반의 핵심은 천지인의 멤버이기도 했던 김정은(키보드)이다. 그녀는 “싯가 1억원짜리 법대생의 하루”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음반 수록곡들을 만들었다)의 시도로, 나아가 조국과 청춘 합법 1집/통산 5집(1996), 메이데이의 [산 자를 위한 발라드](1996)로도 이어졌다.

따라서 ‘미제국주의의 산물’이라는 뉘앙스보다는 ‘대중 음악의 전형’이라는 뉘앙스에 더 가까운 천지인의 록 음악은 민중가요의 제도권 진입이 아니라 민중가요의 저변을 확대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정작 민중 가요의 제도권 진입은 1996년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96년은 대중음악 사전 심의제도가 폐지된 해이고 [자유] 콘서트가 처음 열린 해였다. 이 여파로 정태춘/박은옥, 안치환, 연영석, 서기상, 손현숙의 음반들이 발매되고 천지인의 1집도 복각되었다(이 흐름의 중심에는 ‘불법’ 레이블이었던 뮤직센터21의 후신인 레이블 인디(indie)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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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데뷔 음반이 발표된 지 11년이 지난 2004년, 천지인의 메이저 데뷔 음반이 발매되었다. 여기서 합법이란 의미는 공중파를 포함한 모든 대중적인 활동을 시작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멤버들은 김정은을 제외하고는 모두 새로운(젊은?) 멤버들로 교체되었고, 연주와 스타일도 달라졌다. 모두 10곡의 수록곡들 중에 기존 곡들이 6곡이나 실린 까닭은 ‘최초의 메이저 데뷔 음반’인데다가 이전의 앨범들을 구할 길이 없다는 점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음반을 다 듣고 나면, 아니 첫 곡 “청계천 8가”부터 무언가 말하기 어려운 감정이 기어올라온다. 이들의 변화는 감상하는 입장에서 딜레마를 낳는다. 혹자는 알앤비(R&B)풍의 연주에 랩이 추가된 “청계천 8가”를 들으며 너무하네, 라고 느낄지도 모르고 혹은 아쉽다, 라고 느낄지 모른다. 원곡에 비해(혹은 권민혁의 보컬에 비해) 2% 모자란 듯 느껴지는 엄광현의 목소리(그는 윤도현의 가창 스타일을 반복한다)와 스크래칭과 랩, 샘플링과 코러스가 뒤섞인 “쉽진 않겠지만”, “밤바다”, “청계천 8가”, “열사가 전사에게”와 같은 곡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개인적으로는 원곡 “밤바다”나 “싯가 1억원짜리 법대생의 하루”에서 들을 수 있었던 김정은의 서정적이고 드라마틱한 키보드 연주가 없다는 것이 가장 아쉬웠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런 ‘비관적’인 감상이다. 바로 이들의 1집(과 그 시절의 경험, 구체적으로는 1990년대의 자기 자신)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향수, 같은 것 말이다. 1집에 비해 지금은 별로라는 생각은 혹시, 천지인이라는 밴드를 신화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게 아닐까? 다시 말해, 1993년 이후 꾸준히 그 자리에서 활동해 온 이들의 ‘역사’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신화가 된다는 것은 ‘그 시절의 박제’가 된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대중 음악의 신화화’는 단지 기업들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할 뿐이다. 천지인을 비롯한 다른 노래운동가들은 여전히 현장에 있다. 환경이 바뀌고 사람들이 바뀌어도 지향하는 곳을 여전히 ‘사람과 삶과 노래’로 규정하고 애쓰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물론 그 중에서 이전만큼 치열하고 즐겁고 진지한, 음악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의미있는 곡들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떤 의미에서 2004년의 한국은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끼는 시대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무의미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여, 천지인의 메이저 데뷔 음반 [SINCE 1993.. one]의 의미는 바로 이들이 현재까지 살아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역설적으로 노래운동 진영의 열악한 환경과 신자유주의 시대의 진보진영의 처지(진보진영의 제도화)를 보여준다고 해도 말이다. 이 음반에서 가장 아쉬운 것이 음악적인 발전이나 시대적인 고민이 크게 느껴지지 않으며 메이저 데뷔 음반을 의식한 까닭인지 신곡의 가사들이 모호하고 추상적인 감상주의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지만, 그것은 이후의 활동으로 확인될 것이다. 다만, ‘우리’의 역할은 이들이 메이저 ‘시장’에서 살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어떻게 사라져가는지를,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에 젖기보다는 상처투성이일지라도 스스로 선택한 길을 끝까지 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미약하나마 자신의 애정을 증명하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이 상처받고 더 자주 타협하고 흔들릴지 모르지만, 그래도, 거기 그렇게 살아있기를, 건강히 살아있기를 희망하는 것. 그게 진심이다. 20040916 | 차우진 lazicat@empal.com

5/10

컬쳐뉴스(http://www.culturenews.net)에 실린 글입니다.

수록곡
1. 청계천 8가(ver.2)
2. 쉽진 않겠지만
3. 외눈박이 물고기
4. 희망을 위하여
5. 조금씩
6. 청소부 김씨 그를 만날 때
7. 밤바다
8. 언제나 여기에
9. 청계천 8가
10. 열사가 전사에게

관련 사이트
천지인 공식 사이트
http://www.chunjy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