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기억해 / 밤 늦도록 잠들지 못하고 오직 너만을 생각하지 / 하지만 영원한 건 없어…” ([Leave Home](1977)에 수록된 “I Remember You” 중에서) 뉴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우리에게 찾아온 것은 희망의 서신들이 아니라 위대한 뮤지션들의 잇단 부고였다. 2002년에는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의 레인 스탤리(Layne Staley), 클래쉬(The Clash)의 조 스트러머(Joe Strummer), 스테레오랩(Stereolab)의 매리 한센(Mary Hansen)이 세상을 등졌고, 2003년에는 자니 캐쉬(Johnny Cash)와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를 잃어야만 했다. 그리고 올해에도 얼마 전 6월 거장 레이 찰스(Ray Charles)가 숨을 거두더니 며칠 전 또 다시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며칠 전인 9월 15일 라몬즈(The Ramones)의 기타리스트 자니 라몬(Johnny Ramone)이 전립선 암 투병 중 향연 55세로 숨을 거두었다는 비보가 날아든 것이다. 앞서 거론한 뮤지션들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글을 써볼 생각은 못했던 필자는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팬을 들었다. 록 음악을 가까이 하기 시작할 때부터 너무나도 좋아했던 뮤지션의 죽음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를 잊을 것이다. 자니 커밍스(Johnny Cummings)라는 본명으로 1948년에 뉴욕주 롱 아이랜드에서 출생한 자니 라몬은 1974년 조이 라몬(Joey Ramone) 등과 함께 라몬즈를 결성한 펑크 록의 아버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익히 알다시피 라몬즈는 MC5와 스투지스(The Stooges)가 개척한 프로토 펑크(proto punk)를 계승하여 뉴욕 돌스(The New York Dolls) 등과 함께 1970년대 뉴욕 펑크 씬을 이끌었고 이후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와 클래쉬 등의 런던 펑크 혁명은 물론이고 포스트 펑크, 얼터너티브 록의 태동에까지 결정적으로 기여한 그야말로 위대한 밴드이다. The Ramones, “Please Don’t Leave(demo)” from [End of the Century(expanded)](2002) 1996년에 해체된 라몬즈는 2002년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지만 그들에게 2000년대는 비극의 시작일 뿐이었다. 그들의 강렬하고 우직했던 로큰롤에 그 어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2001년 4월 조이 라몬(Joey Ramone)이 임파선 암으로 죽었고 이듬해 6월에는 베이시스트 디 디 라몬(Dee Dee Ramone)도 약물 과다복용으로 조이의 뒤를 따랐다(원년 멤버 4명 가운데 생존해 있는 사람은 이제 토미 라몬(Tommy Ramone) 밖에 남지 않았다). 요절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26년 동안 벌어졌던 펑크 록의 전격전(blitzkrieg)을 마치고 명예로운 휴식기를 보내던 노장 로커들의 연이은 죽음은 그들의 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로큰롤의 역사는 원래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라몬즈에게 닥친 불운은 그들의 다소 촌스럽지만 쾌활하고 박력 있었던 생전의 모습과 대비되어 좀 더 허망하게 느껴진다. 펑크 록 아버지들의 조우, 나이 들어서도 가죽 재킷과 청바지를 입고 다니던 자니 라몬(사진 오른쪽)과 역시 고인이 된 조 스트러머의 생전 모습 Ramones, “Sheena Is a Punk Rocker(live)” from [The Khsan show](1979) 경쾌한 멜로디 라인을 담은 쓰리 코드의 단순미학을 완성했던 자니 라몬의 기타 연주는 화려한 테크니션이나 예술혼을 투영하는 장인적 경지와는 또 다른 경지에 이르렀다. 누구나 그의 리프를 흉내낼 수 있었고, 자신만의 독보적인 핑거링이나 이펙트 운용법도 없었지만 아무도 그의 기타 연주를 폄하하지는 않았다. 펑크 록 기타 주법의 완성자라 할 수 있는 자니 라몬이 후배 뮤지션들에 끼친 영향은 엄청난 것이었으며 그의 록 기타 미니멀리즘은 아직까지도 모든 열혈 펑크 로커들에게 바이블로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마지막을 지켜본 지인들 사이에는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의 스티브 존스(Steve Jones), 펄 잼(Pearl Jam)의 에디 베더(Eddie Vedder), 롭 좀비(Rob Zombie), 레드 핫 칠리 페퍼스(The Red Hot Chili Peppers)의 존 프루시언트(John Frusciante), 피트 욘(Pete Yorn), 빈센트 갈로(Vincent Gallo) 등 쟁쟁한 뮤지션들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바가지 머리를 한 순박한 외모의 자니 라몬은 위대한 펑크 로커였다. 그리고 라몬즈의 앨범 제목처럼 그의 죽음은 한 시대의 종언을 또 다시 고하고 있다. 세월이 지나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를 기억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펑크 정신의 아이콘으로서 청년 자니 라몬의 이름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Rest in Peace, Johnny! 20040919 | 장육 jyook@hitel.net 관련 글 Ramones [Ramones] 리뷰 – vol.3/no.19 [20011001] Ramones [Rocket To Russia] 리뷰 – vol.5/no.4 [20030216] Joey Ramone [Don’t Worry About Me] 리뷰 – vol.4/no.8 [20020416] 관련 사이트 The Ramones 공식 사이트 http://www.ramon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