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T – The Blues: Soul of a Man – Columbia/소니뮤직(라이선스), 2003/2004 블루스 잔혹사, 미국 대중음악의 로제타 스톤 어두운 우주를 유영하는 보이저 호를 맴도는 나지막한 목소리는 1900년대 초, 델타 블루스의 아버지이자 보틀넥 슬라이드 기타 주법의 창시자인 블라인드 윌리 존슨(Blind Willie Johnson)이 로렌스 피쉬번의 육성을 빌어 초기 블루스 거장들의 지난했던 삶과 음악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델타 블루스 초기 거장들의 삶이 미국 흑인 잔혹사의 한 장을 이룬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블라인드 윌리 존슨은 생후 그의 “Dark was the Night, Cold was the Ground”가 우주로 보내는 인류의 메시지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리지만, 생전의 삶은 처참했다. 어린 시절 학대로 인해 시력을 잃고 평생 길거리를 전전하며 단 한 푼을 위해 노래를 부르던 그가 언제 죽었는지는 아직까지도 알려져있지 않다. 델타 블루스의 송가 “Devil Got My Woman”의 네에미아 ‘스킵’ 제임스(Nehemiah ‘Skip’ James)도 마찬가지. 31년, 단 한 장의 앨범만을 남긴 후, 33년간 종적을 감추었다가 1964년 몬트레이 페스티벌에서 전설적으로 재림한 그는 생활고 때문에 제때에 치료하지 못한 병으로 3년 후 숨을 거두었다. 빔 벤더스(Wim Wenders)는 16프레임의 빠른 흑백 화면과 황량한 슬라이드 기타 위로 그들의 불운했던 생애를 잔혹동화처럼 펼쳐 보인다. 신실하지만 울혈을 토해내듯 “누구든 할 수 있다면 대답해 주오/도대체 인간의 영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Won’t somebody tell me, answer if you can/just what is the soul of a man)”라고 노래하는 존슨은 블루스의 울혈진 한을 가스펠의 신실함으로 담아낸다. 백인 지배계급의 횡포와 억압을 ‘내 여자’라는 메타포로 위장해 “그런 여자의 남자가 될 바에야 차라리 악마가 될테요(I’d be the devil, to be that woman man)”라 부르는 스킵 제임스의 핍진한 하이 테너 보이스도 일체의 원한이 증발해 버리고 증류수처럼 남은 블루스의 순수를 전달한다. 물론, 벤더스는 무성영화 형식으로 ‘재연’한 존슨과 제임스의 삶을 통해 미국 대중음악사의 젖줄이라 할 수 있는 블루스를 재조명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간다. 그는 의사 다큐멘터리이자 오마주의 사이사이에 십여 명의 유수 뮤지션들을 등장시켜 트리뷰트 공연을 펼친다. 그 효과는 놀랍다. 루 리드(Lou Reed), 벡(Beck), 닉 케이브(Nick Cave), 로스 로보스(Los Lobos), 존 스펜서 블루스 익스플로전(Jon Spencer Blues Explosion), 마크 리보(Mark Ribot), 카산드라 윌슨(Cassandra Wilson) 등 재즈와 록의 바운더리 안에서 활동해 온 아티스트들이 선현의 음악을 다채로운 사운드 스펙트럼으로 재현(remake)하는 순간 순간, 블루스가 미국 대중음악의 젖줄로 현 뮤지션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감동적으로 ‘체감’하게 된다. [소울 오브 맨] 스틸 컷 [소울 오브 맨]의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시카고 블루스 씬의 거장 제이비 르노어(J.B. Lenoir)의 생전 모습을 담은 ‘실제’ 다큐멘터리가 등장하는 장면이다. 1965년, 독일 블루스 프로모터인 호르스트 리프만의 초청으로 촬영한 르노어의 홈 비디오(?) 라이브는 정사(正史)에서는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그의 진가를 제대로, 가슴 아프게 보여준다. 1960년대 후반 시카고 블루스 씬에서 활동했지만 대중과 평단의 무지로 준 무명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역시 무고한 죽음으로 블루스 잔혹사의 한 장을 이룬 르노어는 당대 영국 블루스씬의 개척자이자 미국 블루스의 정통한 콜렉터이기도 했던 존 메이올(John Mayall) 등의 블루스 뮤지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부기우기 풍의 리듬 기타 주법과 하이 테너 창법으로 블루스 특유의 ‘우회한’ 저항의 방식을 당대 현안에 대한 비판의식으로 확장한 그의 공적을 이보다 더 생생하게 확인하기도 힘들 것이다. 존 메이올 앤 더 블루스 브레이커스(John Mayall & the Blues Breakers)의 라이브 장면을 찍은 고색창연한 스냅샷과 함께, 르노어를 추모하는 “The Death of J.B. Lenoir”가 겹치는 장면에서 흑인 잔혹사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비감의 극치를 이룬다. 그것의 실체는 백인 지식인의 낭만주의적 원죄의식이다. 계속되는 트리뷰트 기그(gig)를 그 원죄의식의 양성화라고 봐도 될까? 재즈, 록, 펑크 등 블루스를 먼 조상으로 삼고있는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대가답게 선현의 사운드를 재해석하는 방식도 다채롭다. 제임스의 오리지널 “Look Down the Road”를 흥겨운 루츠리듬의 하드록으로 재해석한 루 리드, 르노어의 오리지널 “I Feel So Good”을 블루지한 프로토 펑크로 폭발시키는 닉 케이브(Nick Cave), 르노어의 “Vietnam” 을 재즈 블루스의 느릿느릿한 그루브로 풀어내는 카산드라 윌슨, 역시 르노어의 오리지널을 텍스멕스(Tex-mex) 풍의 라이브한 감성과 부기우기 리듬의 브라스와 드럼으로 업데이트한 로스 로보스(Los Lobos), 제임스의 “I’m Glad”를 크림(Cream)보다 포키하고 즉흥적으로 접근하는 벡(Beck), 제임스를 가장 원형적으로 복원하는 “Devil Got My Woman”의 보니 레이트(Bonnie Raitt)까지. 이 다채로운 리메이크는 모두 블루스 근본주의(?)를 위한 변주인 셈이다. 마침내 루 리드가 마지막으로 등장해 대미를 장식하는 “See My Grave is Kept Clean”는 그 긴 기타 싸이키델리아의 여운만큼이나 가시지 않을 감동을 남길 것이다. 존슨, 제임스, 르노어의 오리지널과 함께 [소울 오브 맨]의 리메이크 넘버들은 미국 블루스의 역사를 다이나믹하면서도 통합적으로 아우른 컴필레이션의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마냥 감동적인 건 아니었다는 말은 해야겠다. 블루스의 원류에 대한 헌사의 표현 방식이 아이러니하게도 흑인 문화에 대해 억압과 은폐에서 동경과 재현이라는 변증법적 포섭의 역사를 밟아온 미국 (백인) 지배문화의 단면을 낭만화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루스에서 시작해 가스펠, 알앤비, 록, 재즈, 소울, 훵크, 힙합 등으로 스타일을 변화시키며 이어 온 흑인 음악의 역사는 지배 문화가 매번 제국주의적으로 동화해 통합한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이런 종류의 죄의식의 비전은 모종의 인식론적 우월감을 배면에 깔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번 블루스(Urban Blues)]의 저자 찰스 카일(Charles Keil)을 빌면 ‘도용과 재활의 신드롬(Appropriation-Revitalization Syndrome)’으로 얼룩진 미국 흑인 음악사를 벤더스가 다소 비약적인 인과론으로 재확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이것은 빔 벤더스의 한계 이전에 ‘양키’ 지식인 문화사의 근본적인 한계일 거라고 생각을 접었다. 빔 벤더스의 경우, 그 한계를 부정하지 않고 그 안에서 가능한 사심없는 소양(?)을 발휘, 블루스 선현과 백년의 거리를 둔 후예들의 ‘지고지순한’ 직거리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양해)해줄 일이다. 20040909 | 최세희 nutshelter@hotmail.com 9/10 * 이 글은 [씨네진]에 실린 글입니다. 수록곡 1. Vietnam – Cassandra Wilson 2. Down In Mississippi – Eagle Eye Cherry /Vernon Reid /James “Blood” Ulmer 3. Hard Times Killing Floor Blues – Lucinda Williams 4. Look Down The Road – Lou Reed 5. I Feel So Good – Nick Cave and The Bad Seeds 6. Devil Got My Woman [New Recording] – Jon Spencer Blues Explosion 7. Slow Down Woman – Cassandra Wilson 8. Don’t Dog Your Woman – T-Bone Burnett 9. Voodoo Music – Los Lobos 10. The Death Of J.B. Lenoir – John Mayall & The Bluesbreakers 11. Alabama – J.B. Lenoir 12. God’s Word – Shemekia Copeland 13. Illinois Blues – Alvin Youngblood Hart 14. I’m So Glad – Beck 15. Special Rider Blues – The Jon Spencer Blues Explosion 16. Dark Was The Night, Cold Was The Ground – Marc Ribot 17. Devil Got My Woman – Bonnie Raitt 18. Crow Jane – Skip James 19. Washington D.C. Hospital Center Blues – Garland Jeffreys 20. Soul of a Man – Blind Willie Johnson 21. See That My Grave Is Kept Clean – Lou Reed 관련 글 OST [The Blues: Feel Like Going Home] 리뷰 – vol.6/no.18 [20040916] OST [The Blues: Piano Blues] 리뷰 – vol.6/no.18 [20040916] 관련 사이트 Scorsese films의 [The Blues] 페이지 http://www.scorsesefilms.com/blues.htm PBS의 [The Blues] 페이지 : 영화 정보, 아티스트 바이오그래피, 수록곡 소개 등이 실려 있다 http://www.pbs.org/theblues EBS의 음악다큐멘터리 블루스 페이지 : 스틸 영상과 방영 일정을 확인할 수 있다 http://www.ebs.co.kr/Homepage/?progcd=0002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