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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es – Tyrannosaurus Hives – Interscope, 2004

 

 

나름대로의 ‘진화’이긴 하지만…

거라지 록 리바이벌(Garage Rock Revival!), 또는 네오 거라지 록(Neo Garage Rock)이 이 땅에 소개된지 어느덧 2년을 훌쩍 넘겼다. 한때는 ‘록의 희망’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 장르를 적극적으로 소개한 ‘주역’ 중 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자부심’ 비슷한 것을 품어야 할 것이나, 불가사의하게도 ‘피로감’만 앞선다. 왜 그럴까.

네오 거라지 록을 처음 소개할 때, 나의 가슴은 뛰고있었다. 록이 과연 어디로 가고있을까 혹시 죽은 것은 아닐까 별의별 억측이 대내외적으로 난무하고 있을 무렵, 돌연 등장한 화이트 스트라이프스(The White Stripes), 스트록스(The Strokes), 하이브스(The Hives) 등이 선사하는 ‘하이 에너지’는 말 그대로 ‘무덤 속에서도 벌떡 일어날 만한’ 것이었다.

특히 스웨덴 출신의 5인조 밴드 하이브스가 선사하는 전대미문의 파워 록은, 섹스 피스톨즈(The Sex Pistols) 이후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감전된 듯한’ 충격이었다. 물론 여기서의 ‘감전’은 이들의 음악 전부를 지칭하는 것은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알려져 있다시피 이들의 음반은 [Barely Legal](1997), [Veni Vidi Vicious](2000) 등의 정규작과 컴필레이션인 [Your New Favourite Band](2002)가 있는데, 무슨 음반부터 들었느냐에 따라 하이브스에 대한 ‘첫인상’에 상당한 차이가 난다.

나는 ‘다행히도’ 무자비한 스피드를 바탕으로 ‘발광’에 가까운 펑크 사운드를 갈겨대는 [Barely Legal]을 가장 먼저 들었다. 대다수의 록 팬들은 어정쩡한 편집음반 [Your New Favourite Band]를 처음으로 접하며 하이브스에 대해 그렇고 그런 인상을 갖기가 십상이다. 물론 그 음반에도 [Barely Legal]의 수록곡 상당수가 실려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약간 과장을 보태어 말한다면, [Barely Legal]은 ‘죽어가던 로큰롤에 성난 울부짖음을 퍼붓는’ 기념비적인 음반이다. 앞뒤 가리지 않는 록의 무모함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담겨있다. 이러한 무모함은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1977) 이후 정말이지 드물게 맛보게 되는, 조금 오버하자면 ‘전무후무’한 순간이다.

그래서, 상당기간 동안 하이브스를 섹스 피스톨즈만큼이나 ‘기념비적인’ 밴드로 소중히 여겼다. 날마다 [Barely Legal] 음반을 귀청이 터져라 들으며, 록이 인간의 마음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물론 이것은 몹시 ‘상대적’인 개념이다) 혼자 감격해 왔던 것. 이러한 풍요감은 비슷한 시기 각광받던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진득한 음악과 함께 하면,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행복감의 절정으로 치닫곤 했다.

이제 와 생각하면, 사실 이런 황홀감은 눈앞에 닥친 절망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최면’이 아니었나 싶다. 냉정하게 말해, 하이브스의 [Barely Legal]은 제2의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가 될 수 없었다. [Never Mind…]가 런던의 양아치들이 할 일은 없고 불만은 쌓여가던 와중에서 어쩌다 터져 나온 원초적인 폭발이라면, [Barely Legal]은 엇비슷한 원초적 핵폭풍이긴 하되, 여기엔 알게 모르게 ‘계산’이 숨겨져 있었던 것. 오늘날 네오 거라지 록의 핵심 키워드가 되고만, ‘세련됨’ 말이다.

‘생각만큼 이들은 순수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혹은 두 번째 음반 [Veni Vidi Vicious]를 듣자마자 바로 ‘확신’으로 굳어졌다. 인기곡 ‘Hate To Say I Told You So’가 담겨있는 이 음반에는, [Barely Legal] 그 어딘가에 희미하게 숨겨져 있던 말끔함과 세련됨이 온전히 그리고 본격적으로 정체를 과시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의심이 들기 시작하니, 광란의 퍼포먼스로 유명한 하이브스의 매너 또한 색안경을 쓰고 보게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특히 밴드의 프론트맨인 하울린 펠레 알름퀴비스트(Howlin’ Pelle Almqvist)의 풍모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자니 로튼(Johnny Rotten)의 발작적 보이스에 믹 재거(Mick Jagger)와 이기 팝(Iggy Pop)의 스테이지 매너를 그대로 계승한 그의 존재감은, 하이브스 밴드 자체의 ‘정체성’에 대해 한없는 상념에 빠지게 한다. 과연 이들은 무엇인가? 진정한 ‘로큰롤의 수호자’인가? 아니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역사적’ 밴드들의 엑기스 만을 모아 만인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쇼맨’들인가? 회의감은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Elephant](2003)나 스트록스의 [Room On Fire](2003) 등, 기대했던 밴드들의 후속타가 그다지 기대에 못 미쳤던 아쉬움과 궤를 같이해(이 또한 몹시 상대적인 개념이 아닐 수 없다) ‘동반상승’의 단계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런 호들갑에는, 실로 커다란 모순이 자리잡고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하이브스의 최신 음반이라 할 수 있었던 [Veni Vidi Vicious]는, 사실 2000년도에 발매되었다는 걸 간과한 것. 즉 이들에 대해서는 그동안 과거의 궤적만을 보듬어 안은 채, 제멋대로의 상상을 펼쳐오고 있었던 셈이다(그토록 감격해 마지않았던 [Barely Legal]은 무려 7년 전 음반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이브스를 화이트 스트라이프스나 스트록스의 오늘날과 ‘대등하게’ 비교?평가하는 건 대단한 무리가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4년 만에 등장한 정규 음반 [Tyrannosaurus Hives](2004)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과연 이들의 진면목은 무엇인가? 명성에 비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포트폴리오가 빈약한 밴드 하이브스가, 그 긴 침묵을 통해 얻은 깨달음은 과연 무엇일까?

[Tyrannosaurus Hives] 음반에는 과연 세월의 흐름만큼 쌓여온 신중한 고심의 흔적이 역력하다. [Barely Legal]의 광포함도 [Veni Vidi Vicious]의 세련된 하드 록도 모두 껴안는 동시에, 어느 순간 벗어나 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이, 과연 하이브스의 ‘새로운 경지’를 적확하게 표현하는 미사여구로만 작용할 수 있을까?

변화를 감지하며 느끼게 되는 충격은 첫 곡 ‘Abra Cadaver’부터 바로 시작된다. 하이브스 특유의 격렬함과 스피드는 여전하지만, 여기엔 그동안 듣는 이를 매료시켰던 ‘육중함’이 없다. 놀라울 정도로 얄팍한 것. 노래 전반에 사용된 이펙트는 어딘지 모르게 ‘스페이스 록’적이기도 하다(음반을 제작하며 하이브스는 독일의 전자음악 거장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Two-Timing Touch And Broken Bones’ 또한 기계적인 비트와 미니멀적인 기타 리프, 화끈하기는 하지만 격렬한 감정이 많이 억제된 보컬 때문에, 마치 미국의 전설적인 뉴 웨이브 밴드 데보(Devo)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이 같은 데보 스타일의 뉴 웨이브 사운드는 ‘Walk Idiot Walk’에서 보다 심화되며, 음반 전체의 ‘화두’로 승화한다.

‘No Pun Intended’는 하이브스의 예전 스타일과 스피드가 일정 부분 되살아나고 있지만, 역시나 가볍고 기계적이며 심플하다. ‘A Little More For Little You’는 놀라운 곡이다. 가히 ‘해학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짧게 끊어서 치는 리듬 기타는 영락없이 스트록스를 방불케 하는 것.

‘B Is For Brutus’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격렬하고 극적인 음색의 기타 리프는 하이브스의 지난날을 떠올리게 하는 면모가 강하지만, 전반적으로 단호하리만큼 딱딱 끊어지는 리듬감은 분명 과거의 ‘리바이벌’은 아닌 듯 싶다. 얼핏 리바이벌의 노선을 걷는다 싶으면서도 결국 그렇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는 접근법은 ‘See Through Head’ 또한 마찬가지. 전반적으로 ‘Die, All Right!’과 엇비슷한 전개방식을 보이지만, 붕붕 뜨는 느낌이 훨씬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Diabolic Scheme’은 하이브스의 패러다임 자체를 산산조각 내는 노래. 곡 틈새를 파고드는 현악 어레인지와 블루스 스타일의 뉘앙스도 그렇고, 믹 재거나 데이빗 요한센(David Johansen), 또는 스티븐 타일러(Steven Tyler)를 방불케 하는 ‘떠벌이는’ 보컬이 놀라움을 안겨준다.

‘Missing Link’는 예의 데보 스타일의 뉴 웨이브 록. ‘Love In Plaster’ 또한 데보로부터 받은 영향과 동시에, 기계적이고 복잡한 변박자를 통해 하이브스가 음반을 제작하며 경도되었다는 크라프트베르크를 곧바로 떠올리게 한다.

‘Dead Quote Olympics’는 ‘레이몬즈(Ramones)를 기리며 만든 노래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전개 방식이 흡사하다. 단순하면서 쉽게 다가오는 멜로디와 간결한 연주가 펑크 록의 향취를 흩날리지만, 바늘처럼 날카롭게 찔러대는 기타 리프(마치 스티브 앨비니(Steve Albini)의 지도라도 받은 듯한)가 역시나 이번 음반을 통해 만개된 ‘변화’를 충분히 암시한다.

마지막 트랙인 ‘Antidote’는 여러모로 ‘Hate To Say I Told You So’와 비슷하게 전개되지만, 극적인 멜로디를 지양하며 ‘반복’적인 어프로치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Tyrannosaurus Hives] 음반을 통해 유감 없이 보여준 ‘뉴 웨이브’에 경도된 하이브스의 자세는, 놀랍게도 최근 영미 록의 새로운 경향과도 정확하게 일치된다. 비평과 대중으로부터 관심과 찬사를 받는 신스(The Shins), 스텔라스타(Stellastarr*), 프란츠 퍼디난드(Franz Ferdinand)처럼 말이다.

영미 록의 역사를 보았을 때 펑크에서 뉴 웨이브로의 이동은, 그 어떤 ‘필연성’을 지니고 있었다. 순수한 결정체로 혜성같이 등장한 어떤 강렬한 존재가, 엄청난 세파에 시달리며 살아남기 위해 택하지 않을 수 없는 ‘자구책’으로서의 결과물 말이다. 그런데 하이브스의 ‘진화’는 과연 어떠한 시각이나 잣대로 들여다보아야 할 것인가? 더욱이 이미 그 전개 과정을 뼈저리게 체험한 청취자의 입장에서 말이다. 흥미로우면서도 ‘반복감’을 느끼며 피로한 감정에 빠지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다. ‘티라노사우루스 벌떼들’이라는 음반 제목으로부터, 이런 딜레마 아닌 딜레마의 미묘한 늪으로 빠져들어 가는 밴드의 상황이 허풍 반 자조 반으로 드러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과연 지나친 것일까. 20040810 | 오공훈 aura508@unitel.co.kr

6/10

* 이 글은 벅스웹진에 실린 글입니다.

수록곡
1. Abra Cadaver
2. Two-Timing Touch and Broken Bones
3. Walk Idiot Walk
4. No Pun Intended
5. A Little More for Little You
6. B Is for Brutus
7. See Through Head
8. Diabolic Scheme
9. Missing Link
10. Love in Plaster
11. Dead Quote Olympics
12. Antid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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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es [Your New Favourite Band] 리뷰 – vol.4/no.10 [20020516]

관련 사이트
The Hives 공식 사이트
http://www.hives.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