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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ret Machines – Now Here Is Nowhere – Reprise, 2004

 

신비함을 포기한 사운드 머신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거나 성공을 점쳤던 무명의 밴드가 좋은 작품을 통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긴 하다. 물론 모습이 바뀐 만인의 연인은 더 이상 신비롭거나 매력적이지 않은 측면도 있긴 하지만.

브랜든 커티스(Brandon Curtis)와 벤자민 커티스(Benjamin Curtis) 형제가 주축이 된 시크릿 머신즈(The Secret Machines)는 텍사스 주 댈러스 출신이지만 주로 뉴욕 인디 씬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2002년에 데뷔 EP [September 000]를 발표했는데, 이 앨범은 대중성보다는 실험성에 치중한 독특한 포스트 펑크 사운드를 담고 있다. 또 2003년에는 뉴욕 인디 록 씬의 대표적 밴드들의 싱글들을 모은 편집음반 [Yes New York]에 “What Used To Be French”를 가지고 참여하여 인지도를 높이기도 했다.

시크릿 머신즈는 정규 데뷔 앨범 [Now Here Is Nowhere]를 통해 초창기의 실험적인 네오 포스트 펑크 스타일에서 주류의 감성에 가까운 하드 록 사운드와 현란한 연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배급사가 워너 브러더스인 사실은 그냥 넘어가자). 예컨대, 그랜대디(Grandaddy)의 싱어 제이슨 라이틀(Jason Lytle)의 목소리처럼 감미롭게 들리는 “The Leaves Are Gone”에서의 보컬을 제외하면, 브랜든 커티스의 창법은 주류 아레나 록의 보컬리스트들처럼 블루지하면서도 기교적이다(“Sad and Lonely”와 같은 곡에서 그의 보컬은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 같이 들리기도 한다). 게다가 벤자민 커티스의 드럼 연주는 해외 평단의 지적처럼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존 보냄(John Bonham)을 연상시킬 만큼 강력해서 이들이 대중적 성공을 염두에 두고 1970년대 하드 록 스타일을 부분 차용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시킨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First Wave Intact”는 둔탁한 해머 드러밍과 잡아채는 듯한 날카로운 기타 스크래치가 9분 동안이나 지속되는 대곡인데, 마지막 부분의 압도적인 노이즈가 인상적일 뿐 전체적으로 지루하게 들린다. 한편, 앨범에서 가장 이질적인 “The Leaves Are Gone”는 앞서 언급했듯이 부드럽고 서정적인 노래와 서서히 퍼져 가는 스산한 전자음이 예기치 못한 비감을 전해주는 아름다운 발라드 곡이다. 그러나 잠시 빠져든 멜랑꼴리를 걷어내듯 이후의 트랙들은 진득한 록 사운드와 댄서블한 비트를 이어간다. 특히 “Nowhere Again”은 커티스 형제가 시크릿 머신즈를 결성하기 전에 UFOFU라는 펑크 밴드에서 연주했다는 전력을 떠올리게 할 만큼 다른 곡들의 하드 록적 분위기를 배제한 빠르고 현란한 포스트 펑크 넘버로서 앨범에서 가장 뛰어난 곡이다.

시크릿 머신즈의 등장으로 트렌드 세터가 없는 현재 인디 록 씬의 지형도는 조금 더 갈피를 잡기 어렵게 된 것 같다. 뉴욕 인디 록 씬의 핵심 코드인 네오 포스트 펑크와 하드 록적 질료를 혼성교배하는 이들의 시도는 모든 교배물들이 그렇듯 일단 새롭긴 하고 해외 평단의 호평도 이런 차원에서 이해되지만, 한계 또한 분명하다. 실험주의와 인디 순수주의를 일부 양보하고 친숙한 로큰롤 비트를 끌어들인 것 자체야 흠잡을 일이 아니고 앨범의 완성도도 비교적 높긴 하지만, 그 만큼 진부해진 사운드만큼은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신비스런 기계들, 신비할 것 없이 안전하게 작동되는 로큰롤 주크박스가 되려는 것인가. 20040822 | 장육 jyook@hitel.net

6/10

수록곡
1. First Wave Intact
2. Sad and Lonely
3. The Leaves Are Gone
4. Nowhere Again
5. The Road Leads Where It’s Led
6. Pharaoh’s Daughter
7. You Are Chains
8. Light’s On
9. Now Here Is Nowhere

관련 글
Various Artists [Yes New York] 리뷰 – vol.5/no.17 [20030901]

관련 사이트
The Secret Machines 공식 사이트
: 앨범 전곡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http://www.thesecretmachin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