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환 – 외침!!(Clamour) – 진달래, 2004 동조하기 어려운 ‘진행형’의 퇴행 [Good Luck](2001)은 안치환의 음악이(혹은 그의 ‘민중가수’로서의 존재감이) 퇴행하고 있다는 생각에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한 음반으로 받아들여졌다. 확실히 “위하여!!” 같은 곡이 주는 인상은 ‘그도 지쳐가고 있다’는 것이었고, 더 이상 안치환의 음악에 ‘현장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3년 만에 발매하는 정규 8집 [외침!!(Clamour)](2004, 이하 [외침!!])에서 안치환은 “타협의 시대는 끝났습니다”라는 초강경한 선언을 내뱉는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증명이라도 하듯 음반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경하고 선언적이며 직선적인 록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묵직한 드럼 루핑과 일렉트릭 기타가 신스팝(synthpop) 분위기를 연출하는 “외침-Intro”를 지나 “산맥과 파도”, “해방구”에 이르면 확실히 전작의 미온함을 벗어던진 과격한 사운드를 채택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음반에서 우선적으로 부각되는 메시지는 현재의 상황과 맞물린 ‘반미주의’이다(“피 묻은 운동화”, “America”, “Stop the Wat”, “총알받이”). 그 밖에도 기득권층에 대해 ‘개새끼’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가하는 “개새끼들”, 부패언론에 일갈하는 “부매랑”,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의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여질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연탄 한 장”, 지역주의에 대한 “꼭두각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사회 이슈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메시지를 풀어내는 사운드는 강성 아메리칸 록과 안치환 특유의 신실함을 부각시킨 투박한 포크 사운드인데, 음반은 이러한 시도를 통해 최근 그의 음반들이 잃어버렸던 에너지를 되찾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외침!!]을 통해 드러나는 이러한 ‘활력’이 과연 안치환의 음악적 부활, 혹은 그로 대표되는 민중가요의 부흥을 의미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확신하기 힘들다. 우선 [외침!!]에서 전면에 부각되는 강경한 ‘아메리칸 록’ 사운드가 과연 음반의 메시지와 어떠한 조응을 이루어내는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말의 요지는 ‘반미 감정을 미국의 음악 스타일에 담아낸다’는 비난과는 조금 다른 맥락의 얘기이다(데모 현장에 나이키 신발을 신고 나가는 것이 문제가 아닌 것처럼). 미국인은 아메리칸 록과 함께 성장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한국인에게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풍의 투박한 아메리칸 록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과연 얼마만큼 효과적일까. 물론 ‘그렇다면 한국적인 것은 무엇이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은 안다. 하지만 ‘민중가요’를 부르는 안치환이 ‘민중’에게 다가갈 수단으로서의 음악을 선택하는 방식이 조금 안이한 듯하다는 생각 역시 지울 수는 없다. 그리고 이것이 미국에서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갖는 위상과 한국에서 안치환이 갖는 위상의 차이에 대한 한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또한 사운드의 과격함을 제하고 나면 과연 [외침!!]이 기존 안치환의 음악에서 어떤 변화를 이루어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물론 민중가요에 ‘왜 음악적인 발전이 없는가’ 항의하는 것은 논점에서 어긋난 지적일 수도 있다. 민중가요에서 음악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 이상의 의미는 갖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오랜 시간 동안 변화 없는 음악을 들려주는 것에 대한 변명은 되지 못한다. 민중이란 대상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며, 그들에게 다가서는 수단 역시 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 민중가요가 놓치고 있는 ‘세대성’에 대한 지적이기도 할 것이다. 이는 안치환에게 지금 당장 기타를 벗어던지고 ‘아카펠라 댄스’ 음악을 들려달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막상 안치환이 자신의 노래를 가장 들려주고 싶을) ‘젊은 세대’에게 “피 묻은 운동화”나 “연탄 한 장”이 과연 얼마만큼의 설득력을 가지겠는가. 물론 안치환의 음악이 갖는 진정성에 대해 의문의 제기할 생각은 없다. 그는 15년에 달하는 시간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그리고 대체로 동의할 수 있는) ‘정의’에 대해 노래한 가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안치환의 음악이 자신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과시하는 것 이상은 바라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매순간 벅차게 절규하는 그의 보컬과 강경하고 또박또박하게 내리꽂히는 사운드는 지나치게 자신들의 ‘목적성’을 주장함으로써 오히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한다. 가사 또한 어느 정도 효과적인 은유를 보여주는 “산맥과 파도”, “물 속의 반딧불이 정원” 정도를 제외하면 너무 직접적이라 거부감을 감추기 힘들다. 특히 직접적인 욕설을 퍼붓는 “개새끼들”과 결국 또 다른 편견을 드러냄에 다름 아닌(“양키 옆에 통역하는 한국 여자들 그 여자들 덕에 또 한 번 화가 날거요 / 난 그 여자가 싫소 / 난 그 사람이 싫소”) “오늘도 미국 대사관 앞엔” 같은 곡은 정치적 진정성이 음악적 선정성으로 왜곡되는 순간일 것이다. 안치환이 [외침!!]을 통해 드러내는 시선의 한계를 가장 극명히 보여주는 트랙은 1980년대의 광장문화와 지금의 촛불시위를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며 “세대를 넘어 함께 가자”고 제안하는 “해방구”이다. 안치환이 시대를 바라보는 시점은 여전히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였던 1980년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지금의 시점에서 이러한 ‘정체’는 그의 의도가 무엇이던 간에 나와 같은 ‘후세대’에게 (동의가 아닌) 동조하기 어려운 ‘향수’ 이상은 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Good Luck]의 낭만주의나 [외침!!]의 공격성이 갖는 차이는, ‘함께 풍파를 겪은 세대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방식’을 이글스(Eagles) 식으로 풀어내는가 AC/DC 식으로 풀어내는가 정도 이상의 의미로는 다가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아직도 진행형에 머물고자 하는 안치환의 최근 결과물로서 결코 만족스러운 것이 되지 못한다. 20040810 | 김태서 uralalah@paran.com 4/10 수록곡 1. 외침-Intro 2. 산맥과 파도 3. 해방구 4.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5. 물 속 반딧불이 정원 6. 개새끼들 7. 부메랑 8. 피 묻은 운동화 9. America 10. Stop the War 11. 총알받이 12. 오늘도 미국 대사관 앞엔 13. 꼭두각시 14. 내버려둬 15. 연탄 한 장 관련 글 안치환, [I Still Believe] 리뷰 – vol.1/no.7 [19991116] 시처럼 음악처럼 – 시인 김남주에게 바치는 안치환의 헌정음반 – vol.2/no.8 [20000416] 안치환 [Confession] 리뷰 – vol.3/no.15 [20010801] 안치환, [Good Luck!] 리뷰 – vol.3/no.15 [2001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