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MOT) – Non―Linear – Bounce Entertainment/Universal Music, 2004 우울하지만 희망적인 비선형 난곡선 단일음과 무박(無拍)으로 이루어진 신호음 같은 것이 아니라면 모든 음악은 2차원 평면에서 선형의 궤적을 그리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단순한 음악일지라도 그 사운드는 파동을 통해 전달되며, 파동은 파고와 주파수로 측정되는 변화무쌍한 곡선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어떤 음악을 비선형적(non-linear)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수학적, 혹은 음향공법적 차원보다는 음의 질료들을 배합하고 텍스처를 직조하는 방식과 관련될 것이다. 공학도 출신인 이언(보컬)과 Z.EE.(기타)로 구성된 2인조 밴드 못(MOT)의 데뷔 앨범 타이틀이 의미하는 바는 그래서 비교적 쉽게 이해된다. 말하자면, 인트로만 들어도 예측되는 단순한 음악보다는 다양한 질료와 요소를 끌어들이고 이들간에 변칙적인 조화와 시너지가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야심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이 그리는 궤적은 지수함수와 같은 파워 커브(power curve)로서의 비선형이 아니라 많은 변곡점을 만들면서 여기저기 음소들 사이를 배회하는 예측불가능한 난곡선이다. 이러한 의도와 방식에 대해 뭔가 ‘척’하는 것이라고 비아냥거리는 반응도 있겠지만 뮤지션으로서 철학과 작업방식이 어떠한 과정으로 투영되었는지는 몰라도 그 결과는 차갑고 현란한 형식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일단 못의 음악에서는 라디오헤드(Radiohead)와 포티스헤드(Portishead), 국내 밴드로는 유앤미블루나 미선이 정도가 연상되는데, 재즈 교육과 프로듀싱 훈련, 개인적인 레코딩 작업 등을 거치면서 기본기를 다진 멤버들은 세기는 부족하지만 열정은 충만한 홍대 앞 아마추어 밴드들과는 달리 학구적이고 전문가적인 인상을 풍긴다. 그리고 홈레코딩과 전문 스튜디오 작업을 병행하며 가다듬어진 앨범의 사운드 역시 정밀하게 직조되어 있고 편곡은 화려하다. 그러나 이 앨범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 고차원 비선형 함수의 해를 구하기 위한 ‘미분’같은 수고스러운 작업은 필요 없다. 이 앨범에 내재된 변수들과 그것들의 조합, 그 조합이 이루어내는 시너지는 다차원적이지만 굳이 세분하지 않아도 될 만큼 융화되어 있으며 음악 전체의 느낌은 생경하기보다는 친근하다. 즉 기계적인 비트와 샘플링, 그리고 변박과 조바꿈 같은 변칙적인 요소들이 그저 차가운 계산적 의도로만 읽히지 않는 것은 단조와 다운비트로 일관되게 조성되고 있는 우울한 무드와 서정적인 멜로디, 시적인 가사 때문이다. 리얼 드럼 연주를 다시 프로그래밍 한 듯한 다소 기계적인 트립합 비트와 반(反)기계적인 어쿠스틱 베이스 연주를 조합하고 여기에 또렷한 아르페지오 기타 음과 이지러질 듯이 파열하는 기타 노이즈를 수놓은 “Cold Blood”는 앨범 전체의 느낌과 사운드 색채를 대변한다. 이언의 보컬은 우울하고 냉소적으로 들리지만 멋을 부리기보다는 주류 가요의 친근함까지도 포괄하는 독특한 감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녀’와의 소소한 추억들을 떠올리며 예쁘게 진행되던 가사는 “모든 추억은 투명한 유리처럼 깨지겠지 / 유리는 날카롭게 너와 나를 베겠지 / 나의 차가운 피를 용서해”라면서 다소 섬뜩하게 반전된다. 그리고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의 저 유명한 스탠더드 재즈 송을 독특한 일렉트로니카 넘버로 해석한 “What A Wonderful World”를 지나면, 과도한 증폭을 피하면서 가볍게 와우와우 이펙트를 먹여 아련하게 부유하는 듯한 톤을 만들어낸 Z.EE.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빛을 발하는 “카페인”이 들려온다. 5/4박자의 리듬 패턴이 변칙적인 느낌을 강하게 드러내고 웅장한 느낌의 현악 세션과 드라마틱한 헤비 메틀 리프를 조합한 듯한 “Love Song”도 독특한 트랙이다. 이러한 화려한 구성과 다채로운 악기 사용은 퍼즈 톤의 기타 음과 첼로 연주를 통해 장중한 느낌을 전하는 “현기증”의 코러스 부분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못은 화려한 사운드를 과시적으로 발산하는 데 치중할 것 같다가도 곧 내성적인 소년의 감성을 담은 소박한 노래들을 읊조린다. 미선이의 “나를 미워하세요”라는 회심의 자학에 대한 화답인양 “나를 비웃어요 / 나를 마음껏”이라며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절박한 애증을 토로하는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노래로 비참하게 내면을 고백하는 인디 록의 감수성을 충실히 따른다. [Non-Linear]는 그밖에도 시퀀싱 드럼이 사용된 전형적인 트립합 넘버 “I Am”과 “가장 높은 탑의 노래”, 여전히 어두운 무드이긴 하지만 끊어치는 기타 스크래치와 현란한 신서사이저 연주가 다소 훵키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러나 불확실성은 더욱 더”, 내성적인 소년의 수줍은 고백 같이 사랑스러운 선율을 담고 있으면서 주류 가요의 감성에도 맥이 닿아 있는 듯한 “자랑”, 불협화음과 샘플링, 재즈와 앰비언트를 넘나드는 변칙적인 연주 등을 전면화해 가장 실험적으로 들리는 “상실” 등 놀랍도록 다채롭고 완성도가 높다. 또 마지막 트랙으로 실린 “Mixolydian Weather”는 메이저 키의 루트 음에 텐션을 첨가하여 장조이지만 단조의 느낌을 가미하는 믹소리디언 스케일(mixo-lydian scale)을 사용한 재즈 넘버로서 앨범 전체로 보면 다소 돌출되는 경향이 있어 히든 트랙에 삽입된 듯 하지만 멤버들의 재즈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회심의 연주곡이다. 다만, 이러한 곡이 이들의 다음 행보에서 중심이 된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노회한 선택이 될지 모르며 그만큼 지금 이들이 붙들고 있는 지적인 접근법은 다소 나이브하다는 느낌도 든다. 그리고 이 앨범이 지나치게 말끔하게 정련되어 전문적인 프로듀싱과 컴퓨터 프로그래밍, 틀에 박힌 세션 연주에 능숙한 ‘꾼’의 작업물 같다는 점도 조금은 걸린다. 특히 이제는 인디 록의 미덕처럼 고착화되어 버린 로-파이 사운드나 미니멀리즘적 접근의 배제는 물론이고 록의 느낌 자체를 의도적으로 축소한 듯 하다. 다소 의외이지만 이 앨범에 대해서 주류 언론이 먼저 주목하고 있는 점도 이러한 특징과 맥락을 같이한다(여전히 음악적 핵심을 꿰뚫기보다는 잘 만들어진 음악에 대한 피상적인 관심 이상은 아닌 듯 보이지만). 즉 이 앨범의 사운드 퀄리티가 주류의 입맛에도 만족할 만하고, 몇몇 트랙에서 엿보이는 대중적이고 감성적인 가요의 느낌이 트립합이나 재즈와 같은 고급스러운(?) 외피를 두르고 있는 점도 주류의 포섭자들(기자들과 제작자, 게다가 BGM에 혈안된 영화감독까지)이 눈독을 들이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이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할지, 경계할지는 전적으로 뮤지션들의 선택일 테지만… 그러나 어찌 되었든 [Non-Linear]가 오랜만에 등장한 ‘잘 만들어진’ 수작임에는 틀림이 없다. 홈레코딩은 투박하고 생동감 있는 로-파이적인 느낌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성의 없고 질 낮은 사운드로 만족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Non-Linear]는 홈레코딩 작업에서 사운드의 질과 수준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때로 전문적이고 철저한 정제과정이 필요하고 이것이 청자들에 대한 기본적 책임일 수 있다는 교훈을 대충 만드는 편의주의가 싹트고 있는 한국 인디 씬에 던진다고 할 수 있겠다. 더구나 펑크는 포기하지 못한 채 어설픈 흑인 음악과 전자 음의 세계를 기웃거리느라 포스트 인디 씬을 향한 어떤 방향타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국내 인디 음악 씬을 떠올릴 때 이들의 앨범은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 20040725 | 장육 jyook@hitel.net 8/10 수록곡 1. Cold Blood 2. What A Wonderful World 3. 카페인 4. I Am 5. Love Song 6. 현기증 7. 가장 높은 탑의 노래 8. 그러나 불확실성은 더욱 더 9. 자랑 10. 상실 11.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12. 날개 13. Mixolydian Weather (hidden track) 관련 글 ‘포스트인디’ 상황의 절망, 현기증, 상실, 불확실성…그리고 ‘자랑’: 못(MOT)과의 인터뷰 – vol.6/no.14 [20040716] 관련 영상 “Cold Blood” 관련 사이트 못(mot) 공식 사이트 http://www.motmusi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