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및 장소: 2004년 5월 세차례 e-메일을 통해
질문: 신현준
정리: 신현준, 장육

20040725111556-mot

[weiv]: 과거의 음악 활동이 밴드 활동이었다기보다는 ‘실용음악’을 프로듀싱 하는데 주력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아니면 우연찮게 그랬던 것인지요? 그러다가 밴드로 음악을 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이언: 프로듀서를 하다가 갑자기 밴드를 하게 되었다기보다는, 밴드를 준비하는 동안 여러가지 다른 작업을 했다는 쪽이 옳을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BGM 작곡 등으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요, 대학교 2학년까지는 음악을 ‘즐거운 부업’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이때까진 프로듀서도 밴드도 (낭만적 공상일지언정) 제 현실적 꿈은 아니었지요. 그러다가 음악이 제게 있어서 부업이나 취미 정도로 가볍게 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1996년의 어느 날 이후로는 줄곧 밴드를 ‘구상’했습니다. 처음엔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시작해서, 아주 천천히 구체화시켜 나갔습니다. 원맨 프로젝트 형태로 곡부터 쓰기 시작했고 몇 년 후(2001년)에 음악적 취향이 거의 정확히 일치하는 Z.EE.군을 구인광고(!)를 통해 만나 지금의 형태가 되었습니다.(네, 본명만 비슷하고 형제는 아닙니다^^).

[weiv]: 프로필을 보아도 본인들이 어떤 인맥으로 활동했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주류 가요계’도 아니고 ‘홍대 앞 인디 씬’과는 또 다른 곳에서 음악활동을 한 것 같습니다. 제가 잘 몰랐던 씬(scene)이 있었다면 어디서 어떻게 존재했는지 말해 주십시오.
이언: 앞의 질문에 대한 나머지 답변도 되겠는데요. 어떤 구체적인 씬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최소한의 생계 등을 위해 손에 걸리는 대로 일을 했던 것뿐입니다. 작곡, 편곡, 음악 칼럼의 필자, 행사 음악감독 등의 일들을 전전했습니다. 어떤 씬에서 어떻게 존재하느냐의 문제보다도, ‘무엇’을 들려줄 것인가가 최대의 과제였고, 그 결과물을 내보일 때까진 살아남는 게 중요했습니다. 다만 제 나름의 규칙 같은 것을 두어서, ‘음악에 관련된 일’만을 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런 규칙마저 없으면, 음악에의 ‘절박함’을 잊어버리고 보다 안정된 삶 쪽으로 점점 기울어지다가 결국 그 생활에 안주하게 되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weiv]: 그랬군요. 그래도 데뷔 치고는 늦은 것 같습니다. 소위 ‘자기 음악을 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이 많았나요?
이언: 당연하지만, 레귤러한 일거리가 많진 않았고 대부분의 시간은 음악 공부를 하거나 연습을 하거나 곡을 쓰는 등, 앨범을 준비하며 보냈습니다. 재즈전문교육기관인 JASS를 다니기도 했고, 덕분에 홍대쪽 인디 밴드보다는 재즈 연주자들 쪽과 친분이 많습니다. (앨범 준비하기까지의 생활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허생전]에서 글공부만 하던 허생의 이야기가 항상 떠오릅니다. 늘 ‘아직 준비가 덜 됐다’고 느꼈던 점이 특히 그렇습니다.)

[weiv]: 이름을 보면 Z.EE.님은 이언 님의 친동생 같습니다. 사진으로만 보아서 그런지 인상도 비슷하고… 라이너 노트에 “없던 친형이야”라든가, “아버지 보고 계시죠?”라는 문구도 있네요.
이언: 위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친형제는 아니구요^^. (그런 오해는 무척 자주 받습니다. 아마 예명으로 활동하게 될 것 같아서 앞으로는 그렇지 않겠지만…) 예상하신 바대로, 집에서는 당연히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몇 년 동안이나 고정된 직업 없이 반백수 상태로 지내는 걸 좋아하실 부모님은 별로 없겠지요. 특히 아버지의 반대가 무척 심했는데요. 몇 번 정도는 아주 심하게 충돌(?)이 있어서 위태로운 지경까지 갔었는데, 앨범 발매가 구체화되고 난 후에는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Z.EE.: 본명 때문에 그런 오해를 많이 사곤 했습니다. 실제로는 형제가 아니지만, 음악적인 부분 뿐 아니라,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도 너무나 공통점이 많아서 저희도 처음에 깜짝 놀랐습니다. 실제로는 제가 형이 없는데, 마치 친형이 생긴 기분이라 ‘없던 친형이야’ 라는 표현을 담았습니다. ‘가족들’에게 감사를 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아버지를 거론한 것은, 못(mot) 로서 작업을 시작하기 얼마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살아계셨으면, 불같으신 성격에 노발대발 하셨겠죠. 그러나 또 늘 그랬듯이, 결국 아낌없이 도와주셨으리라고 믿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있나요, 어디.

[weiv]: 우드 베이스 음에서 재즈의 영향을 짐작했는데, 그 영향이 ‘애시드 재즈’에 가까운지 ‘고전적 재즈’인지는 분간하기 힘들었습니다. “What A Wonderful World”도 있어서 후자인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가요’에 재즈를 도입하는 것은 대부분 ‘무작’으로 끝나는데 못의 앨범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재즈에 관한 철학이 어떤 것인지 말해 주십시오.
이언: 고전(스탠다드 및 실험적인 퓨젼)적인 의미의 재즈 쪽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트립합 비트 등과 결합되면서 애시드 같은 장르를 연상케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애시드나 훵크가 앞쪽으로 달려나가려는 업비트인 반면 저희는 좀 더 무게감에 비중을 둔 다운비트의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재즈를 단순히 물리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에서 끝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였습니다. 다른 여러 가지 장르적 스타일의 특성들이 새로운 시너지를 발휘하는 어떤 ‘포인트’를 찾아내는 것이 저희가 오랫동안 매달려온 작업의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특히 재즈는, 단순히 어떤 편곡적인 특성이나 연주의 테크닉, 이론적 바탕만으로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마인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솔로만 재지한 라인으로 끼워 넣는다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코드 진행과 멜로디를 만들 때부터 재즈적인 ‘상태’에서 곡을 쓴다고 할까요.

[weiv]: 좋아하고 영향받은 ‘모던 록’ 밴드들 가운데 유투(U2)와 R.E.M.과 너바나(Nirvana)도 분명히 있을 것 같습니다. 추측이지만 “현기증”과 “그러나 불확실성은 더욱 더”같은 곡은 (제가 좋아했던) 심(Seam)의 느낌도 강했습니다. ‘따라 했다’는 식의 질문은 아니고, 한때 좋아했던 적이 있다면 언제쯤인지…
이언: 그런지 쪽에서 너바나와 펄 잼(Pearl Jam)을 특히 좋아했습니다. 유투는 어렸을 적에 처음 들었을 때보다 요즘 들으니 더욱 좋고,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반면 R.E.M.은 처음 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렇다할 충격적인 감흥은 받지 못하고 있어서 스스로도 좀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의 음악은 자세히 들어볼 기회가 없었는데요, 말씀을 듣고 나니 꼭 들어봐야겠네요.^^;
Z.EE.: 유투나 R.E.M., 너바나 같은 밴드는 (기타뿐 아니라 보컬도!) 카피를 많이 했었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좋아하고 있습니다.

[weiv]: 기악곡인 “Mixolydian Weather”는 토어토스(Tortoise) 등의 ‘포스트 록’의 느낌까지 풍깁니다. 위에서 말한 재즈의 영향과 만나는 부분도 있고… (그러고 보니 “날개”의 기타 솔로도 재즈의 영향이 묻어 있군요. 그건 그렇고…) 굳이 믹소리디언 선법을 택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어떤 이색적 분위기를 표현하고 싶었다든가… 아, 그리고 이 곡이 본인이 ‘가장 하고 싶은 음악’에 가까운지요?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참 불행한 일인데…^^
이언: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So What”처럼 모달 재즈(modal jazz)적인 기법을 사용해서 전개한 곡인데요. 믹소리디언 음계의 느낌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보통의 메이저 음계보다는 한 단계 어둡고, 마이너 음계보다는 두 단계 밝은, 믹소리디언만의 특이한 색깔이 있다고 할까요. 다행히(?) 이 쪽이 ‘가장 하고 싶은 음악’의 정 중앙에 있는 곡은 아닙니다. 앨범에서는 히든으로 처리할 예정이구요. 2집에는 보컬 버전을 수록하겠다는, 때 이른 계획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weiv]: 포티스헤드(Portishead)를 좋아해서인지 트립합 풍의 단조의 곡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때로 칙칙하고 음울해집니다^^ 이건 ‘내성적 성격’이라는 개인적 차원의 것이라고 봅니다. 이를 혹시 ‘시대’와의 관계로 해석해 줄 수 있는지요? 불편하다면 안 하셔도 됩니다.
이언: 몇 번인가는 장조의 즐거운 곡을 써보려는 의식적인 노력도 해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곡을 쓰면 어느새 음울한 곡이 튀어나오는데요. 말씀대로 개인적인 성향 탓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시대와의 관계’를 핑계삼아 넋두리를 좀 하자면, 이 땅에서 ‘진지하게(쇼 비지니스로서의 음악이 아닌)’ 음악을 하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쿨하거나, 절박하거나. 하나는 주 수입원은 안전하게 따로 확보한 상태에서, 포기할 수 없었던 꿈에 대해서 보다 자유롭고 여유롭게, 또 그만큼 진지하게, 그러나 결코 현실의 삶을 위협하지는 않는 선에서 ‘쿨하고 현명하게’ 자아실현을 해나가는 방법입니다. 다른 한쪽은 미련하게도 음악에 모든 것을 걸고, 그 배수진의 ‘절박함’을 에너지원 삼아 지탱해가는 방법입니다. 당연히 쿨하고 현명한 쪽이 살아남고, 안전장치도 없는 절박함 속에서 안간힘을 쓰던 쪽은 결국 하나 둘씩 떨어져나갑니다. 저는 굳이 후자쪽을 택했고, 이 땅에서 음악에 모든 것을 건다는 그 어리석은 절박함의 정서가 결국 음악이 되어 나오는 게 아닐까도 생각합니다.

[weiv]: 가사의 운(韻)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못의 경우만 그런 건 아닙니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사운드의 풍성함을 희생해서라도 가사를 강조하기를 바라는 게 저 같은 ‘나이 든’ 사람의 생각입니다.
이언: 그런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저희 나름대로 절충점을 찾는다고 한 것이 지금의 사운드인데, 역시 개선의 여지가 아직 많은 것 같습니다. 깊이 새겨듣겠습니다.

[weiv]: 작곡은 기타를 치면서 한 것 같습니다. 맞나요? 본인도 기타를 연주하는 것 같고…
이언: 작곡은 기타를 치면서 한 곡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곡도 있습니다. 두 가지의 경우 모두 기타를 염두에 두고 작곡한 것은 맞는데요. 다만 실제로 기타를 손에 쥐고 곡을 만들게 되면, 아무래도 ‘손에 익은’ 연주, 혹은 ‘손이 편한’ 연주 쪽으로 흘러버릴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음악적인 상상력을 제한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컴퓨터만을 이용해서 초안을 잡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게 제가 잡은 초안을 Z.EE.군과 함께 의논하면서 실연주를 고려한 버전으로 수정하게 됩니다. 반면 솔로 연주의 경우에는 주로 Z.EE.군이 초안을 잡고 그 이후에 저와 함께 수정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weiv]: 크레딧에서 기타 연주는 Z.EE.님이 다 한 것으로 나와 있네요. 이언 님 본인이 한 것도 있는데 그렇게 한 것이죠? 솔직히 자백하시죠^^
이언: 앨범에 녹음된 연주는 모두 Z.EE.군이 한 게 맞습니다^^; 전에 원맨 프로젝트 형태로 혼자서 할 때는 제가 녹음도 하고 했었는데, 연주 쪽에 특별히 재능도 없는 것 같고 해서^^ 새로운 곡 작업과 예전에 했던 녹음을 전부 다시 하면서 기타 연주는 Z.EE.군에게 일임했습니다.

[weiv]: “현기증”의 경우는 가사가 매우 길어서 ‘따라부르기’가 곤란할 정도로 가사의 내러티브에 특별히 공을 들인 곡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있었던 사연’이 있다면 말해 주세요~
이언: 현기증은 1999년도에 만든 곡으로, 앨범 수록곡 중 가장 오래된 곡인데요. 요즘이야 핸드폰 시대이다 보니 ‘전화선을 빼어’ 둔다는 둥 가사의 맥락이 대중들에겐 그다지 어필을 못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지 않을 전화를 하염없이 기다리고만 있는 제 자신이 싫어서…-_- 전화선을 뽑고 심지어 전화번호를 바꾸는 등의 쓸데없는 짓을 하던 경험에서 쓴 가사입니다.

[weiv]: “자랑”,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날개” 등을 들을 때는 가사나 창법이 최성원, 하덕규, 조동익, 김창기 등 제 나이 때의 훼이버릿 뮤지션의 감성이 떠올랐습니다. 뭐랄까, ‘절망 속의 구도(求道)’같은 감성입니다. 제 말이 황당한 것인지 아닌지 평해 주십시오.
이언: 그렇게 들어주셨다니 기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네요. 언급하신 분들은 저에게도 역시 훼이버릿의 뮤지션들입니다. ‘구도’라는 단어에 대해서 제가 스스로 동의를 표하는 것이 낯간지러운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만, ‘절망 속의 구도’라는 표현은 제가 느껴 오던 심경과 정서에 대한 (저도 찾고 있었던)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던 ‘절박함’의 정서와도 닿아 있다고 생각됩니다.

[weiv]: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후반부에서는 마디 끝에 ‘잡음’의 반복과 더불어 신시사이저 라인도 음계를 흐트러뜨립니다. ‘의도’를 질문할 건 아니고 재미있게 들었다는 평 전합니다. 그건 그렇고… 음반을 제작하고 정진용씨와 만난 계기는 어떤 것인지요? 정진용 씨가 앨범 제작 과정에서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로서 했던 역할은 어떤 것이었는지요? 일반적인 가요 음반 제작자와 달랐던 점이 있다면?
이언: 데모 앨범이 복잡한(?) 경로를 통해 정진용 이사님에게 전달이 되었고, 관심을 보여주신 정이사님이 즉시 연락을 해 오셔서 뵙게 되었었습니다. 대부분의 곡들은 계약 등의 시점 훨씬 이전에 이미 다 완성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반 가요 제작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구요. 정진용 이사님께서는 리메이크 곡의 수록에 대한 아이디어(저희로서는 대환영이었습니다)라던가, 제작자이자 감상자로서의 의견을 제시해주셨습니다. 기본적으로 밴드의 의도를 최대한 존중해주시면서 풀 서포트를 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보면 저희보다도 오히려 더 록 스피릿(rock spirit)으로 충만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덕분에 좋은 스튜디오에서 후반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인디펜던트와 메이저 레이블 각각의 장점만을 취한 형태로 제작이 되었다는 생각에 상당히 만족스럽습니다.

[weiv]: 아울러 셀프 프로듀싱으로 되어 있는데 정규 스튜디오인 리드 사운드(LEAD SOUND)에서 녹음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스튜디오 작업이 낯선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시행착오가 있었을 텐데 어떤 점이 곤란했나요? 정규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것이라곤 하지만 홈 레코딩(하드 디스크 레코딩이겠죠?)을 많이 해본 솜씨를 느낄 수 있었는데 홈 스튜디오와 정규 스튜디오에 모두 작업을 한 건지요? 특정 곡을 예로 들어주면 감사… “자랑”과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가 본인이 믹싱했다고 나와 있던데 이 두 곡이 주로 집에서 작업한 것인가요?
이언: 드럼과 첼로를 제외한 모든 녹음은 홈 스튜디오에서 이뤄졌습니다. 모든 곡의 기본적인 믹싱 역시 곡당 1주일 정도씩의 시간을 공을 들여 홈 스튜디오에서 1차적으로 완료한 후에, 그것을 레퍼런스 삼아 리드 사운드의 좋은 장비 위에서 ‘재현하는 동시에 개선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사운드 메이킹의 음악적인 비중을 매우 높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공격적이고 음악적인 의미의 이펙팅(과격한 컴프레서라던가, 딜레이 세팅 등)은 최대한 미리 작업해서 fix를 시킨 상태로 데이터를 가져갔습니다. 믹싱을 해주신 박혁 기사님(크래쉬 등을 담당하셨던..)께서 이런 방식과 팀의 색깔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이해를 해주시고, 또 성격이 잘 맞는 등(?)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서 비교적 수월하게 작업을 한 편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저희가 미리 했던 레퍼런스 믹스를 전혀 새로운 장비를 이용해서 완벽히 재현하는 동시에 개선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대체로는 더 ‘깔끔’해졌지만, 그 ‘깔끔함’이 꼭 좋은 의미에서만은 아니었고, 그래서 믹스를 끝낸 후 몇 곡은 집에서 다시 작업한 ‘러프한’ 느낌의 버전으로 교체했습니다.

[weiv]: 앞으로 레코딩 작업을 한다면 어떤 방향을 취할 것 같습니까?(알고 있겠지만 롤러코스터 같은 경우는 작정하고 홈 레코딩을 고집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지요?)
이언: 박혁 기사님과도 다시 얘기를 나눴는데, 이후의 앨범 작업을 다시 하게 된다면 지금까지의 방법보다도 더 홈 스튜디오 작업의 비중을 늘려, 거의 모든 후처리 작업 및 이펙팅을 완료한 후 정규스튜디오에서는 ‘보정’을 하는 수준으로 진행을 하려고 합니다.

[weiv]: 평소에는 드럼을 미디로 찍어서 작업했을 텐데 네 곡에서는 ‘생드럼’을 녹음했네요. 평소에 해 보던 방식이 아니라면 본인들의 의도와는 다른 경우가 많은데 어땠는지요?
이언: 아, 가장 할 말이 많은 부분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우선 프로그래밍 드럼에 비해서 리얼 드럼 녹음이 분명히 메리트를 갖는 트랙이 어떤 것인가를 판별해야 했습니다. ‘세션 시켜서 하는 생 연주가 아무래도 미디로 찍은 것보다는 낫지’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시대도 이젠 아니었고, 음악적으로 그런 장르도 아니었으며, 설사 세계 정상급의 드러머가 와서 기가 막힌 연주를 해준다 한들 저희의 의도와 제어를 벗어난 결과물이 나오는 것은 원치 않았습니다. 신서틱한 전자드럼이 더 어울리는 트랙이 있었고(“What A Wonderful World”,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hyper-real한?) 시퀀싱 드럼이 요구되는 곡이 있었으며(“Love Song”, “그러나 불확실성은 더욱 더”), 반복적인 샘플루프들과 시퀀싱 패턴이 여러겹의 층을 이루는 컨셉의 곡도 있었습니다(“I Am”, “가장 높은 탑의 노래”). 결국 “자랑”과 “Mixolydian Weather”를 포함한 여섯 곡을 리얼로 녹음하기로 결정하고 진행했습니다.

[weiv]: 드럼을 연주한 다니엘 제헤(Daniel Zehe: 발음이 맞나요?)는 누구인지, 누가 섭외했는지, 작업 과정은 만족스러웠는지 등등도 말해 주시죠.
이언: Daniel은 정진용 이사님께서 전에 다른 앨범 작업을 하시면서 알게 된 독일인 드러머로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드럼을 전공하는 친구인데요. 이번 녹음을 위해 독일에서 한국까지 불러왔습니다. 드러머의 개인적인 색깔이 필요 이상으로(저희들의 의도와 일관성을 해칠 정도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드럼 연주 패턴을 2주쯤 전에 미리 제시하고 충분히 연습하게 한 후에 녹음에 들어갔는데요. 결과는 절반 정도의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우리가 필요로 했던(시퀀싱으로는 표현하기 힘들었던) 미묘한 연주의 뉘앙스를 얻어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다니엘(Daniel)의 연주의 그루브는 정확히 저희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연주 패턴의 문제가 아니라 아주 미묘한 정도의 밀고 당기는 박자감의 차이였는데요, 결국 며칠 꼬박 걸려서 원하는 느낌으로 매 비트를 하나하나 (거의 편집증적으로) 에디팅 했습니다(기계적인 ‘정박’에 맞췄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weiv]: 생드럼이 들어간 곡이 여섯 트랙은 아닌 것 같은데…
이언: 최종적으로 “믹솔리디안 웨더”와 “자랑”의 두 곡은 결국 녹음한 드럼의 느낌이 프로그래밍에 비해 그다지 메리트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원래의 프로그래밍 트랙을 사용했으며, ‘현기증’은 심벌과 하이햇 트랙만을 리얼로 시퀀싱 트랙 위에 오버더빙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애초 계획의 6곡 중 4곡에서만 리얼 드럼이 사용되었습니다.

[weiv]: 첼로 녹음은 리드 사운드가 아닌 다른 매카(Mecca)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네요. 특별한 이유는? 두 곡에서 첼로를 연주한 사람은 ‘전업 세션’인지 음악 동료인지 등등… 그리고 현 섹션을 더 넣고 싶었는데 사정 상 절제한 것인지, 앞으로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등등…
이언: 메카 스튜디오 홀 울림의 독특한 특성(?) 때문에 그곳에서 녹음했습니다. 그런 부분의 어드바이스는 박혁 기사님이 해주셨구요. 첼로를 연주한 한수진 양은 학교 후배이자 실력 있는 첼리스트 유망주입니다^^. 사실은 현기증의 첼로 솔로를 녹음하기 위해서 섭외했는데, ‘이왕 부르는 김에'(^^;;)라는 생각에 “Love Song”의 신스 스트링 섹션에 약간의 질감을 더 하는 정도의 용도로 가볍게 몇 트랙 녹음해서 사용했습니다. 웅장한 풀 오케스트라 편성 쪽엔 별로 관심이 없고(능력도 없고), 작은 실내악 같은 편곡의 곡을 시도해 볼까하는 생각은 있습니다.

[weiv]: 재즈든, 록이든, 인디든 한국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내면에만 침잠해 있고 사회적, 문화적 표현에 인색하다는 평도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제게 무슨 뾰족한 의견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언: 우선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뮤지션들이 ‘사회 참여적’ 성향을 드러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그런 목소리가 ‘당연히 그래야하는’ 정도보다는 작은 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결국 변명조가 될 것 같아 조심스러운데요,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해외의 굶주리는 결식아동 문제에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사회와 문화를 걱정하기에 앞서 ‘내 신세’가 당장 목을 죄어오는 무거운 현실 앞에서 안으로만 움츠러들게 되는 게 아닐지…(제가 그렇다는 건 아니구요. 저는 원래 근본 성향이 대책 없는 예술지상주의에 가까운 쪽인 것 같습니다.) ‘삶이 여유 있는 사람만이 사회를 걱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누군가 반론을 제기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요. 아마 그런 대찬 실천적 참여적 에너지를 갖고 있는 사람은, 음악보다 더 직접적으로 사회를 바꾸는 ‘뜻있는 일’에 골몰하고 있을 거라는 쪽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weiv]: 때로는 음악에 장식이 많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건 ‘신인’이라는 전제 아래 하는 말입니다. 조금 소박하고 풋풋하기를 바랬던 마음이 있었나 봅니다. 물론 지금 나이가 서른이 다 되어가기 때문에(^^) 이런 말이 부당할 수도 있겠죠. 좌우지간 ‘신인의 데뷔 음반’에 대한 나름의 소신을 말해 주십시오.
이언: 욕심이 많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면은 강박이라고까지 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3∼4년쯤 전에 – 현기증, 카페인이 완성되고, 지금 앨범에서는 제외된, 보다 ‘날 것’인 느낌의 곡들이 써지던 무렵에 – 소박하고 풋풋하며 ‘가능성’을 제시하는 결과물을 먼저 들고 나왔어야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고, 그러지 않기로 한 이상은, ‘진화’해야만 했습니다. (그때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스스로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확신이 없는 예술가는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무도가’였다면 일단 누군가와 한 판 붙고 결과를 보는 게 옳았겠지만요.) 결국 ‘신인다움’의 덕목을 추구하기보다는 더욱 ‘완결된’ 혹은 ‘숙성된’ 결과물을 보여주기로 한 것이고, 그러한 소신이 나름대로 잘 반영된(최소한 ‘5년이나 묵혔다’는 점에서는) 데뷔앨범을 완성시켰다고 생각합니다.

[weiv]: 역시 편견이지만 ‘명문대생 출신’이 가지는 ‘교과서적 느낌’도 느껴집니다. 비범하게 번뜩이는 부분이 드문드문 보이지만, ‘망가지면서 막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제어를 가한다는 생각이 듭니다(이건 제가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부당한가요? 의견을!
이언: ‘적절하게 제어를 가한다’는 말씀은 매우 적절하다고 보여집니다. 그것이 ‘교과서적 느낌’으로 해석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긴 합니다만…^^; 저희는 그 적절한 제어의 선이 못(mot)의 성격을 규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망가지면서 막 나가는 것’은, 방법적으로 매우 간단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때로 음악과는 전혀 관련 없는, 지적인 ‘재치’만으로도 가능하고, 컨셉과 아이디어만 훌륭해도, 아니 심지어 훌륭하지 않더라도 ‘막 나가는 정도’만 충분히 뒷받침이 되면, ‘더 자극을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추어 실험 밴드의 경우처럼)자신이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문제는 그 자극이 ‘과연 더욱 음악적인가’하는 것입니다. 저희는 변칙적 일탈의 범위를 ‘음악적으로 기여하는’ 선으로 제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악과는 거의 무관한 상태의 ‘지적유희’로서의 자극은 굳이 못이라는 밴드가 아니어도 제공해줄 밴드가 많을테니까요.

[weiv]: 그렇게 판단을 내리게 된 동기나 기초는 무엇인지요?
이언: 여기서 ‘음악적’이라는 판단 기준이 전통적인 의미의 고리타분한 화성학은 물론 아닙니다. 말로 설명하긴 애매하지만, 총체적인 ‘완성도’ 혹은 ‘완결성’과 맥락이 닿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4분의 5박 리듬으로 일관하는 “Love Song”이나, 네 마디마다 키(key)가 바뀌는 “그러나 불확실성은 더욱 더”, 4/4박과 3/4박이 번갈아 나오는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가장 높은 탑의 노래” 중 클라이막스에서 슬그머니 5/4박으로 변화하는 변박 등의 변칙적인 요소가, 단지 ‘변칙적인 요소의 도입’이라는 식으로 생뚱맞게 툭 불거져 보이기보다는,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장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그 곡의 일부로서 기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편적인 아이디어로써 ‘삽입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유기적으로 설계된 구조물의 일부입니다.

[weiv]: 녹음할 때는 잘 모르는데 시간이 지나서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더군요. 지금 시점에서 앨범에 대한 자평을 내려 주시고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알려 주세요.
이언: 후회가 없는 작업이라는 것이 없는 작업이라는 것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감내할 수 있는 정도의 후회만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앨범에 대한 자평만큼 어려운 일은 없겠네요. 좋게 말하자니 팔불출이고, 나쁘게 말하자니 자아비판입니다. 사실 집에서 작업을 하다보면, 욕심이 끝이 없어집니다. 몇 곡을 녹음하고 작업하는 사이에, 소위 ‘내공’ 이 쌓이면, 이전에 녹음했던 곡들에서 아쉬운 점이 보이고, 그러면 같은 곡을 재녹음하게 됩니다. 현기증 같은 경우는 그렇게 세 번째 녹음된 경우지요. 시간이 부족함을 늘 아쉬워하면서도, 농담반 진담반 하는 얘기는, 10년이 주어지면, 10년 동안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재녹음을 하고 있을 거라고. 그런 의미에서, 어느 시점에서는 누군가 끊어주고,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면, 이 정도도 괜찮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weiv]: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간략히 묻겠습니다. 먼저 공연은 어떤 편성으로 할 계획인지요?
이언: 주변의 음악적 동료들로부터 해서 공연을 위한(혹은 2집 녹음을 위한?) ‘준 멤버’격의 고정 세션을 물색중입니다. 포티스헤드 같은 시스템이랄까요. 어쩌면 애초의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공연을 하게 될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2인조라는 시스템에서 알 수 있듯, 못(mot)이 ‘공연위주’의 팀은 아닌 게 사실입니다. 공연활동은 못(mot)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어쿠스틱 재즈 편성의 공연을 시도한다거나 하는 등의 아이디어도 생각중입니다.

[weiv]: 방송활동이나 팬 클럽(?)에 대한 계획이 있다면…
이언: 방송 활동을 얼마나 하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뮤직비디오는 정성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저희는 나오지 않습니다. 유명 배우도 나오지 않습니다). 팬클럽은… 전국적인 점조직으로 분포하던 팬클럽 회원들을 이제 규합해야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_-;

[weiv]: 너무 이른 질문일지 모르지만 2집 앨범에 대한 계획도 말해 주십시오.
이언: 성격상 적당히 하고 넘어가질 못해서, 곡 작업은 굉장히 오래 걸리는 편입니다.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지 않으려면, 2집 앨범은 지금부터 준비해야겠네요. (사실 어느 정도는 준비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만…)

[weiv]: 음악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mp3의 유통에 대한 입장도 간략히 말해 주십시오.
이언: 합리적인 선에서 mp3를 합법화, 유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불법 mp3가 완전히 근절될 수는 없을 것이고, 또 mp3를 철저히 뿌리 뽑아야할 ‘악의 근원’이라고만 할 수도 없겠지요. mp3가 아니었더라면 끝내 듣지 못했을 음악을 mp3 덕분에 듣게 되었다면, 그것을 꼭 나쁜 일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떨어져 있는 돈을 보면 줍고 싶듯이, 쉽게 구할 수 있는 mp3를 구해 듣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불법 mp3를 들으면서 그것이 그 뮤지션에 대해 빚을 지는 일이라는 정도의 인식은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대가를 지불하도록 요구받는 것에 대해 터무니없이 억울해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음악시장의 질이 높아지려면, 즉 좋은 음악들이 더 많아지려면, 그 좋은 음악이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당연한 원리입니다.

[weiv]: 앨범 커버와 부클릿이 특이합니다. 누구 작품인지요?
이언: 앨범의 자켓 및 부클릿 디자인은 서양화를 전공한 친동생 ‘The Eyot(발음은 ‘아이욧’)이라는 닉네임의 사나이)’가 해주었습니다. 석달 정도의 작업 기간이 걸렸는데요. 옆에 붙어 앉아 이것저것 구체적이고 까다로운 요구를 끝없이 해대는 형 때문에 상당히 괴로웠다는 후문입니다. 아트웍은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weiv]: 앨범 발매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오랫동안 좋은 음악 하는 뮤지션이 되길 빌겠습니다. 20040721 | 신현준 homey81@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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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Non-Linear] 리뷰 – vol.6/no.14 [200407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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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mot) 공식 사이트
http://www.motmusi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