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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pana – Hors de Combat – Redder, 2004

 

 

Shy boys make experiments on Mogwaism

얼마 전 국내에 라이선스 앨범이 발매되면서 관심을 불러일으킨 익스플로전스 인 더 스카이(Explosions In The Sky)나 두 메이크 세이 씽크(Do Make Say Think) 등이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포스트 록, 혹은 익스페리먼틀(experimental) 록 씬에도 수많은 무명 밴드들이 명멸하고 있을 것이다. 포스트 록은 프로그레시브/아트 록, 아방가르드 펑크 등 실험주의 록 음악의 계보를 이어가면서 날로 즉물화되고 감각화되고 있는 현대 록 음악에 예술적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지만, 지나친 엄숙주의와 천편일률적인 방법론, 그리고 대중의 감성에 쉽게 각인되지 못하는 지루하고 난해한 형식주의는 록 음악의 대지 위에 또 하나의 골방을 만들고 있을 뿐이라는 비판을 자처하는 듯하다.

뉴욕시 로체스터(Rochester) 출신의 인디 포스트 록 밴드 칼파나(Kalpana)는 이런 점에서 색다르게 다가온다. 칼파나는 불교용어로 ‘분별적 사유’라는 뜻도 있고, 인도 출신 최초의 여성우주인으로서 2003년 컬럼비아호 폭파 때 숨진 칼파나 차왈라(Kalpana Chawla) 박사의 이름이기도 하다. 어떤 뜻으로 차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국적이고 신비스런 느낌을 주는 것은 확실한 듯 하다. 그러나 밴드명에 비해 아론(Aaron), 드류(Drew), 블레어(Blair), 마이클(Michael)이라는 이름으로만 알려진 칼파나의 멤버들은 무게를 잡거나 신비스럽게 보이려 하기보다는 친근하고 평범한 아마추어 로큰롤 밴드 같은 인상을 풍긴다(홈페이지에는 자신들의 소소한 일상과 음악에 대한 생각들을 가볍게 털어놓고 있다).

칼파나의 데뷔 앨범인 [Hors de Combat]은 미니멀한 소품에서 변화무쌍하고 장대한 기악곡까지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다. 첫 곡인 “The Voice is Dead”는 이모 코어 펑크의 영향이 농후한 곡인데, 퍼즈톤의 둔탁한 기타 리프와 박진감 있는 드러밍에 웅얼거리는 듯한 보컬과 섬세한 아르페지오 기타 연주가 뒤섞여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또한 앨범에서 가장 부각되는 “Save Me.You Can’t Save Me”는 주선율을 담당하는 오르골 소리 같은 청아한 신서사이저 음과 드럼 머신의 비트로 전반부를 이어가는 곡인데, 오르골 소리와 드럼 머신의 조화는 차갑고 기계적인 느낌을 풍기지만 신비스럽고 서글프게 들린다. 여기에 중반부부터 갑자기 파열되는 헤비한 기타 노이즈는 전혀 예기치 못한 흥분과 절묘한 반전을 선사하며 앨범의 하이라이트로 치달아간다. “Save Me.You Can’t Save Me”가 감성적이면서도 친근하게 들리는 싱글 넘버라면, 12분을 넘는 대곡인 “Amber”는 ‘침잠-점증-절정-하강’이라는 모과이식 방법론을 충실히 따르면서 두 대의 기타가 뿜어내는 온갖 이펙트와 노이즈, 마이클(Michael)의 드럼 속주까지 더해져 비장하게 휘몰아쳐 가는 앨범의 압권이다. 그리고 “Amber”의 긴장과 극치감을 달래주는 마지막 곡 “Frozen Machines”는 수줍은 미성을 들려주는 아론의 보컬과 영적인 무드를 조성하는 오르간 연주가 떠돌며 천상의 대기를 호흡하려는 듯한 아름다운 앰비언트 넘버이다. 이들 곡들 이외에 “34 Stories of Ana Mendieta”, “We have Illegal Weapons”, “This Will Be Expensive” 등 나머지 수록곡들은 시카고 포스트 록 성향의 재즈적 화성과 이모 코어 풍 기타 노이즈가 뒤섞인 다소 지루한 기악곡들이지만 이 앨범은 무명 인디 밴드의 첫 작품치고는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다소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칼파나의 음악들은 ‘수줍은 소년 모과이’같이 들린다. 모과이처럼 묵직하고 공포스럽지 않으면서도 풋풋한 열정과 진지함이 느껴진다는 말이다. [Hors de Combat]은 색다른 익스페리먼틀 록을 찾고 있었던 포스트 록 마니아들이나 포스트 록의 영토에 첫 발을 내딛는 입문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수작이다. 칼파나가 제2의 익스플로전스 인 더 스카이가 될 수 있을지, 그저 그런 인디 밴드로 잊혀져갈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의 번뜩이는 감각과 독특한 사운드 질감만은 신선한 자극이 되기에 충분하다. 20040711 | 장육 jyook@hitel.net

7/10

수록곡
1. The Voice is Dead
2. 34 Stories of Ana Mendieta
3. We have Illegal Weapons
4. Sic
5. Save Me.You Can’t Save Me
6. Don’t Move
7. This Will Be Expensive
8. Amber
9. Frozen Machines

관련 사이트
Kalpana 공식 사이트
http://www.kalpanamusic.com
Redder Records 공식 사이트
: Kalpana에 대한 소개가 실려 있으며 앨범 구입이 가능하다
http://www.redderrecord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