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 컴플렉스 – Transistor – 예당 엔터테인먼트, 2004 당당한 노예선언 그러니까 작년 피터팬 컴플렉스(Peterpan Complex)의 데뷔음반 [Radio Star](2003)가 떠들썩한 입소문과, 인디 밴드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공격적인 마케팅을 등에 업고 등장했을 때부터 이상한 위화감을 느낀 것이 비단 필자만은 아니었으리라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이 의심했을 법한 이들의 정체성의 문제, 즉 “라디오헤드(Radiohead)와 플라시보(Placebo)를 섞어서 적당히 나누어 놓은 것 같다”는 평가는 밴드 멤버들에 의해 일부는 긍정되고, 또 일부는 부정되었지만, (어쩌면 인디 씬의 숙원 과제일)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인디 밴드의 등장’이라는 타이틀과 맞물리며 어떻게든 안간힘을 쓰고 이를 외면하는 괴상한 모양새가 연출되었던 것이다. 국내 록 음반은 물론이고 이미 검증 받은 해외의 록 음반 판매고도 바닥을 기어 다니는 현재의 상황에서 ‘스타성’과 ‘양질의 사운드’를 동시에 갖춘 음악 및 가수는 결코 함부로 비난할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리고 기대 이상이라느니, 아니면 쓸데없이 부풀려졌을 뿐 실속은 없었다느니 하는 의견이 분분하긴 했지만 [Radio Star]는 충분한 성공을 거두었다. ‘관습’으로 굳어진 영미 기타팝/록의 전형적인 서사구조를 별 고민 없이 사춘기적인 예민함과 결합시키는 방법은 이미 국내에서도 넬(Nell)로부터 시작된 하나의 공식이 되어버렸지만, [Radio Star]가 만들어내는 멜로디와 안정적인 사운드 메이킹은 분명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올 초에 발매된 EP음반 [2-0.5](2004)부터 무언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는 인상을 받은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하기야 음반의 홍보 문구로 ‘라디오헤드를 연상시키는 기타팝 앨범’이란 말이 쓰였다면 얘기는 이미 끝난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2-0.5]가 발매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숨 가쁘게 발매된 [Transistor](2004)를 듣는 기분은 참으로 씁쓸하다. 나는 부디 이 음반에서 “Burn It Down”을 다시 만나는 일만은 없기를 바랬다. 하지만 음반의 정 중앙에 자리 잡은 “Burn It Down”을 마주하는 허탈함은 음반 자체가 주는 어이없음에 비하면 차라리 별게 아니다. 이제 와서 ‘누군가의 음악으로부터 영향 받았음을 부정하지 않는’ 음악에 대해 비난을 할 생각은 없다. 또한 해외의 경우를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이미 이루어질 거의 모든 시도가 이루어진 기타 팝이 전대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난 소리를 들려주리란 기대가 부질없는 것임도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Transistor]는 정도가 좀(매우) 심하지 않나 싶다. 첫 곡 “Transistor”부터 마지막 곡 “피터팬 컴플렉스”에 이르는 모든 수록곡을 각각 라디오헤드의 [The Bends](1995)와 [OK Computer](1997) 시기의 곡들과 연관지을 수 있다는 사실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곡의 큰 흐름만이 아닌 세세한 효과음이나 마무리마저도 이토록 ‘정확하게’ 재현해내는 다음에야 말이다. 여기서 시시콜콜 각각의 수록곡이 라디오헤드의 어떤 곡과 닮았는지 열거할 생각은 없다. 솔직히 말해서 이정도로 대놓고 베낀 곡들에 대해 뭐라고 비난을 할 수 있을지도 막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뻔뻔함’이 음반의 문제를 덮는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음반 발매 이후 이루어졌을 인터뷰를 아직 접하지 못한 까닭에 이들이 스스로가 받은 영향력을 인정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해 볼 수는 없지만 문제의 핵심은 이게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력이 ‘상업적인 의도’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순수한 ‘존경’의 의미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또한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완성된 결과물이 (그것이 무엇이었던 간에) 창작의 의도를 완전히 압도해버리기 때문이다. 이들로서는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재현하는 것이 흠모하는 밴드에 대한 존경과, 그들의 팝적인 감수성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그리고, 분명 이번에도 나름의 ‘효과’를 거두고는 있지만), 아직 한창 자신들만의 소리를 찾아가기에도 바쁜 이들이 어째서 이토록 안이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과 (실망을 넘어선)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다. 무엇보다, ‘고민 없는 차용’에 익숙해진 밴드가 그 차용 대상을 전부 소모해 버리고 나면 이후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남는다. 그 때가 되면 ‘남의 것을 차용한’ 음악을 끊임없이 ‘자가 복제’하려는 걸까(이미 서서히 조짐이 보이는 것 같다)? …생각조차 하기 싫다. 인디 씬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밴드였던 피터팬 컴플렉스의 경력은 이렇게 누군가에 대한 ‘노예선언’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종결되는 듯하다. 물론 앞으로의 일이 또 어떤 변화(혹은 성장)를 겪게 될 지에 대해서는 속단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Transistor]는 피터팬 컴플렉스에 대해 (수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갖고 있던 기대를 완전히 ‘배신’하는 음반이다. 그리고 또한 밴드가 첫 선을 보였을 당시, 이들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보다는 눈앞에 드러났던 문제점에 좀 더 비중을 두었어야 했다는 반성을 남기는 음반이기도 하다. 20040526 | 김태서 uralalah@paran.com 3/10 * 이 글은 벅스웹진에 실린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수록곡 1. 트랜지스터 2. You Know I Love You 3. 완성에의 부족 4. 솔로몬의 Key 5. 너의 기억 6. Burn It Down 7. 상식의 오류 8. 행복 9. I’m With You 10. 자장가 11. 피터팬컴플렉스 관련 글 피터팬 컴플렉스 [Radio Star] 리뷰 – vol.5/no.5 [20030301] 피터팬 컴플렉스 [2-0.5] 리뷰 – vol.6/no.4 [20040216] 관련 사이트 피터팬 컴플렉스 공식 사이트 http://www.peterpancomple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