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 핀 – 올랭피오의 별 – Sha Label/T―Entertainment, 2004 휘어진 직선 “우리가 거닐던 그 자리에 우리 옛 그림자가 방황함을”: 모든 것이 순조로왔다면 이 리뷰는 ‘[weiv] vol.4/no.XX [2002XXXX]’라는 호수를 달고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만사란 원래 순조롭지 않은 법이다. 때로는 앞에 나왔어야 할 것이 뒤로 가기도 하고, 뒤에 있던 것이 앞서 있었던 것처럼 등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운명은 운명이 정하는 바로 그 길만을 따라가게 마련인가 보다. [매트릭스(The Matrix)]의 대사처럼 말해봤지만, 실은 단순한 이야기다. 시간의 흐름을 순순히 따랐다면 우리는 허클베리 핀의 세 번째 정규음반을 이기용의 솔로 프로젝트인 스왈로우(Swallow)보다 먼저 만나게 되었을 것이라는 소리다. “그는 찾았다, 마당을 또 외딴 집을”: 따라서, 우리가 허클베리 핀의 신보에서 스왈로우를 직접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곡들(“Time”, “Hey Come”, “올랭피오의 별”)을 마주하게 될 때, 거기서 느끼게 되는 기시감(旣視感)은 밴드가 음반을 발매하기까지 겪은 지난한 과정에 대한, 의도하지 않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결국 밴드는 스스로 레이블을 차리고 유통 회사와 계약하는 방식으로 음반을 발매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를 닮은 사내](2001)에서부터 밴드는 목소리를 조금씩 낮추고 ‘내성적 분노’를 드러내는 데 골몰해왔다. 그 주된 방법은 비올라를 비롯한 현악기의 사용으로 전반적인 소리를 풍부하게 (들리도록)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는 밴드의 직선적인(혹은 정직한) 멜로디와 의외로 잘 어울렸다(이소영이 바이브레이션을 거의 쓰지 않는다는 점은 밴드가 만드는 멜로디를 고려해 볼 때 우연이 아니다). 비올라는 이 밴드의 모토라고 해도 될텐데, 첼로보다 가늘면서도 바이올린보다 굵은 비올라의 ‘모호한’ 음색은 어두우면서도 음울하지 않은 밴드의 음악과 어울린다는 인상을 준다. “너는 기쁨으로…”: [나를 닮은 사내]의 방향성은 신보에서 그대로 유지된다. 즉 직선적이면서도 부드럽게 굽은 음률과 지글거리는 기타 사운드 사이로 파고드는 부드러운 음색의 절충이 유지되고 있다는 뜻이다. 전작에 비해 사운드는 다소 빈 듯한 느낌이 있는데, 이 공간을 채우는 것은 곡 자체의 밀도다. 가벼운 셔플 리듬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이소영의 선굵은 목소리로 시작하여 점차 다른 악기들이 가세하면서 코러스를 향해 망설임없이 나아가는 첫곡 “Time”은 좋은 오프닝이다. 출렁이는 듯한 코러스에 그런지 록의 공격적인 사운드가 가세하는 “I Know”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듯한 곡이다. “…그리고 특히 눈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하지만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곡은 “연”이 될 가능성이 큰데, 민요처럼 단순하고 인상깊은 멜로디가 비올라의 대위적 선율과 더불어 반복되는 이 곡은 뒤를 잇는 “Hey Come”과 더불어 밴드의 서정적인 면을 또렷이 드러낸다. 이러한 곡들은 통속적이지만 과하지 않고 애처롭게 굴지만 징징대지 않는다. 지하철과 버스 속에서 무지막지하게 변경된 노선과 요금에 대한 분노를 잠시나마 잊게 해 줄 수 있는 곡들이라는 말도 될 것이다. 이 곡들 외에도 특별히 빠지는 곡은 없다. “자폐”, “K” 등의 곡은 전형적인 ‘허클베리 핀 그런지’인데, 이러한 곡들을 듣다 보면 군악대 출신 슈게이징 밴드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절도있게’ 연주하던 밴드의 모습이 떠오른다. 신보의 곡들을 연주할 경우 그럴 일은 이제 많지 않겠지만. 재발매된 허클베리핀 1집 “우리 모두는 같은 곳에서 꿈을 깬다”: 후반부의 곡 배치가 약간 불안하다는 느낌은 있지만 (육중하게 스피커를 두드리는 “자폐”를 끝 곡으로 배치한 것은 다소 뜻밖이었다), 더불어 이소영과 김윤태의 적극적인 개입이 적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끝내 발매되고 만 이 음반에서 허클베리 핀은 지금까지 내놓은 그들의 음반 중 가장 안정된 소리를 들려준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는 말로 맺기가 아쉬운 것은 그 까닭이다. “I don’t want to be your doll”(“자폐”)이라고 격렬하게 외치는 이소영의 목소리와 함께 끝나는 이 음반을 다 듣고 나면 아마 모두들 비슷한 상념에 빠져들 것이다. 그리고 아마 모두들 그 상념을 오래 곱씹게 될 것이다. 20040630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8/10 P.S. 본문 중에 굵게 인용한 글귀는 빅토르 위고의 [올랭피오의 슬픔]에서 따 온 것이다. 수록곡 1. Time 2. I Know 3. 물고기 4. 연 5. Hey Come 6. 불안한 영혼 7. K 8. 올랭피오의 별 9. 춤추는 고양이 10. 민요 11. 자폐 관련 글 허클베리 핀 [18일의 수요일] 리뷰 – vol.2/no.24 [20001216] 허클베리 핀 [나를 닮은 사내] 리뷰 – vol.3/no.21 [20011101] 스왈로우(Swallow) [Sun Insane] 리뷰 – vol.6/no.1 [20040101] 관련 사이트 허클베리 핀 공식 홈페이지 http://www.huckleberryfin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