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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 갑판위에엎드린채 – 비단뱀 클럽, 2004

 

 

여전히 별스러운

별의 3번째 ‘월간 뱀파이어’인 [갑판위에엎드린채]는 내 기억에 의하면 원래 작년에 발매가 된다고 별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별이라는 밴드를 생각했을 때는 다소 이색적인(잡지가 없는) 싱글앨범 형태인 [83]이 세 번째 ‘월간 뱀파이어’ 대신 발매가 되었다. 앨범은 올해 2004년이 되어서야 나왔다. 언제나처럼 CD와 같이 제공되는 잡지(아니 CD가 잡지와 함께 제공되는 부록이었던가?)와 함께.

앨범이 나오기 전 어어부 프로젝트의 백현진과 같이 작업을 했다는 소문을 들은 팬들은 아마도 이번 앨범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다른 때 보다 컸을 것이다. 하지만 앨범이 나오기 전에 나온 싱글 [83]은 이러한 기대와 호기심을 한풀 꺾어 줄만큼 그저 그런 앨범이었다. 실험적으로 느껴지는 “상수도 5/1″같은 곡은 그냥 실험적으로만 느껴졌고, 언제나처럼 앨범에 있는 ‘팝’적인 곡인 “83”은 예전만은 못하다는 느낌을 줬다.

이번 앨범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전보다 쉽다(혹은 덜 난해하게 보인다)는 느낌을 준다. 그중 쉽게 눈에 띄는 것은 ‘곡의 제목들’이다. 그 동안 별은 앨범에는 개별적인 곡들의 개성을 느끼게 하는데 방해가 되는 장치로 보이는 “80845-1″와 같은 일렬번호가 제목을 대신했다. 앨범의 대표 곡으로 느껴지는 비교적 소수의 곡들에만 “80845-2 부루마블”과 같은 식으로 뒤에 부제를 붙이는 방식으로 곡의 제목을 쓴 것이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는 그런 일렬번호가 사라졌다. 제목이 없는 단 세 곡을 제외하고는 모든 곡에 일반적인 제목이 붙어있다. 덕분에 전 앨범들에 있는 곡들의 제목이 주던 낯설고 이질적인 느낌은 사라졌으며, 곡들의 개성도 보다 더 쉽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일단은 전보다 곡들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월간 뱀파이어’에는 시 같은 느낌의 글과 예술적으로 보이는 사진, 그림들로 채워진 지난 잡지들에 비해 보다 일반적인 ‘잡지’에 가까워졌다.

앨범은 ‘앰비언트 성향의 어두운 일렉트로닉’, ‘슈게이징 스타일의 일렉트로닉’, ‘신스팝 스타일의 일렉트로닉’의 곡들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전 앨범들과 다르게 일종의 ‘스포큰 워드’의 곡이 세 곡(제목 없는 3번째 트랙, “6”, 제목 없는 11번째 트랙)이나 존재한다. 그 중 가장 인상깊은 것은 역시 백현진이 보컬로 참여한 제목 없는 3번째 트랙이다. “강아지는 멍멍/고양이는 야옹”같은 유아적인 가사를 가진 이 곡은, 아줌마와 복사기를 지나 하느님의 웃음으로 끝난다. 유아적이며 재미있는 가사는 낯설고 어두운 느낌의 사운드와 맞물려 묘한 기괴함을 만든다.

위에 말한 스타일의 곡들 중 별이 가장 잘 만드는 것은 역시나 ‘신스팝 스타일의 일렉트로닉’ 이다. 그중 “비밀경찰”은 “오늘 문닫은 후 너만의 기쁨을 위해 은밀한 쇼를 준비했어” 와 같은 가사를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를 연상시키는 비트와 밝은 톤의 키보드와 시타가 만들어 내는 신비하고 낭만적인 분위기에 담은 귀여운 느낌의 곡이다. 첫 번째 앨범에 있는 같은 성향의 곡인 “2”에는 못 미치지만, 두 번째 앨범에 있는 “너와 나의 20세기”보다는 인상적인 느낌을 준다. ‘앰비언트 성향의 어두운 일렉트로닉’에 해당되는 “아편굴처녀가몰래들려준이야기”같은 곡은 예전보다는 좋아졌지만 아직도 지루한 느낌을 주며, ‘슈게이징 스타일의 일렉트로닉’에 해당되는 “83”은 나쁘진 않지만 위에 말한 “비밀경찰”이나 “진정한사랑이 우리를부를때”같은 곡들에 비해선 부족한 느낌이다.

별은 이번 앨범에서도 어떠한 ‘의미’를 전달하기보다는 ‘느낌’을 주려고 애쓴 것으로 보인다. 곡들은 의미를 의도적으로 못 느끼도록 방해하는 일종의 장치들을 가지고 있다. 그 장치란 “83”처럼 가사를 못 알아듣게 웅얼거리는 보컬일 때도 있고, “6”처럼 “하지만 그런건 중요한게 아니야”라는 가사일 때도 있으며, ‘월간 뱀파이어’에 있는 일부분을 고의적으로 지운 인터뷰 일 때도 있다. 앨범에서 그들이 의미대신 주려는 것은 앨범의 맨 마지막에 있는 곡인 “비단길”이 가진 분위기처럼, 적당히 어두우면서도 예쁜 어떻게 보면 ‘순정만화’ 적인 느낌으로 보인다.

이번 앨범은 별의 다른 앨범들에 비해서 여러모로 공을 들인 흔적이 느껴지지만 부족하다는 느낌은 여전하다. 물론 부족한 느낌도 낮선 느낌처럼 이들이 의도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부족함이 아쉬움 혹은 불만족으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다음 앨범에는 조금 더 신경을 써 부족한 느낌을 없애줬으면 한다. 그리고 별은 그동안 앨범, 앨범과 같이 제공되는 ‘월간 뱀파이어’, 홈페이지, 라이브 공연을 통해 일반적인 인디밴드들과 다르게 폐쇄적이며 컬트적인 존재가 되는데 성공하였다. 그런 컬트적인 것도 좋으나, 별의 예쁘고 어두운 이미지는 그들을 충분히 멋진 신스팝밴드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디페시 모드(Depeche Mode)가 되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20040617 | 고두익 nosf@magicn.net

6/10

수록곡
1. 가짜선원의 노래
2. 비밀경찰
3. (Untitled)
4. 6
5. 83
6. 늑대인간
7. 아편굴처녀가몰래들려준이야기
8. (Untitled)
9. 진정한사랑이 우리를부를때
10. 갑판위에엎드린채
11. (Untitled)
12. 비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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