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X Bandits – Down At The Hop – Shoeshine/비트볼(라이선스), 2003/2004 안나 카레니나와 낡은 통기타 경이로울만큼 정성스럽게 적힌 속지의 내용에 따르면 BMX 밴디츠(BMX Bandits)는 “1980년대 중반 영국에서 일어났던 C86 혹은 애노랙(anorak) 무브먼트를 앞장서서 이끌었으며… 틴에이지 팬클럽(Teenage Fanclub), 유지니어스(Eugenius), 숩 드래곤스(Soup Dragons), 수퍼 스타(Super Star)와 같은… 뮤지션들이… 필수 코스처럼 머물렀”지만, “스코틀랜드, 미국, 일본 등지의 강력한 컬트 추종자들을 넘어서 크게 알려져 있지는 않은” 밴드이다. ‘스코틀랜드 인디 씬의 딮 퍼플(Deep Purple) 같은 존재’라는 말이 떠오른 것이 본인들과 딮 퍼플 중 어느 쪽에 더 결례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의 7년만의 신작인 [Down At The Hop]은 청자에게 결례를 범하지 않는다. 듣지 않고 지나치는 일이 결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음반의 무기는 ‘강력한 팝송의 훅’이다. 아주 오래전에 멸종된 줄 알았던 단아하고 상쾌한 노래들을 듣다 보면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 주라기 공원’ 코스를 37분 정도 돌고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프로듀싱, 가사, 곡의 구성, 사용된 악기, 창법, 덧붙여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시도’와 같은 것들을 따질 이유도 별로 없어 보이고 그럴 생각도 들지 않는다. 탬버린과 단촐한 기타 연주, 신서사이저가 곡을 이끄는 “Love at the Hop”은 그런 의미에서 단숨에 귀를 사로잡는 음반의 대표곡이다. 누구나 이 곡을 듣게 되면 맥주가 그리워질 것이고, 그게 아니라도 파워에이드나 게토레이 정도쯤은 마시고 싶어질 것이다. 비치 보이스(Beach Boys)에 대한 오마주처럼 들리는 “Little Kitty”와 “I’m in Such Great Shape”, 유난히 코르그(Korg) 신서사이저 소리가 또렷이 울리는 “Death and Destruction”과 단정한 포크인 “Silly Boy”도 좋은 곡이다. 하지만 이 밴드는 활발한 기운을 뿜어낼 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The Road of Love Is Paved with Banana Skins”나 “Back in Her Heart”, “Back in Your Arms”같은 곡들 말이다. 머지비트(Merseybeat) 시절까지도 거슬러갈 수 있을 이러한 곡들은 성격은 좋지만 고집스러운 술집 주인 같은 인상을 풍긴다. ‘바로 이것이 진짜 팝송’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것이다. 속지의 인터뷰에서 “많은 멜로딕 기타 팝은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밴드의 말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점이 감상에 ‘비판적인 시각’을 부과할 만큼은 아니다. 대부분의 가사가 ‘엇나간 사랑’으로 인해 빚어진 쓸쓸한 상황을 다루고 있는 것은 벨 앤 세바스찬(Belle And Sebastian) 같은 밴드들 덕에 익숙해진 이 바닥 특유의 정서에 다름아닐 것이다. 이들의 ‘컬트적’인 명성을 어디선가 전해듣고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사람들은 음반을 듣고 난 뒤 ‘좋긴 한데 별 거 없더라’는 반응을 보일 공산이 크다. 이는 GPS 시스템까지 동원해가면서 찾아간 ‘원조 설렁탕집’에서 밥을 먹고 나온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과도 비슷할 것이다. 이런 반응을 바꿀 수 있는 비장의 주문 같은 것은 이 글을 쓰는 사람에게 없다. 다만 ‘원조의 진면목’ 같은 건 언제나 그 ‘추종자들’의 ‘극복에 대한 의지’ 덕에 재발굴되었을 때는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말하는 것으로 족해야 할 것이고, 이 음반 같은 경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들의 음악을 오래도록 들을만한 것으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을 덧붙이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끝으로, 하나마나한 소리 같지만, 이 밴드의 멤버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듯 보인다. 부클릿에 실린 사진에서 프랜시스 맥도널드(Francis McDonald)는 카우보이 모자를 쓴 채 통기타 한 대를 끌어안았고, 더글러스 스튜어트(Duglas T. Stewart)는 뚱한 표정으로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를 쥔 채 앉아 있다. 낡은 음악과 통속적이고 비극적인 엇나간 사랑 이야기. 바로 이 음반의 컨셉이 아니던가. 20040608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8/10 P.S. 7월 10일과 11일 양일간 이들의 내한공연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비트볼 레코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록곡 1. Love at the Hop 2. Little Kitty 3. I’m in Such Great Shape 4. Miss Nude Black America 5. Death & Destruction 6. The Daughters of Julie Evergreen 7. The Road of Love Is Paved with Banana Skins 8. Silly Boy 9. Back in Her Heart 10. Wake Up, Francis 11. Love’s Supposed to Be Fun 12. Back in Your Arms 13. A Hungry Man 14. The End of Time 15. Mailbox 관련 사이트 Shoeshine Record 홈페이지 http://www.shoeshine.co.uk 비트볼 레코드 홈페이지 http://www.beatballrecord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