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523033013-SHAZAM

Move – Shazam – Regal Zonophone/Repertoire, 1970/1998

 

 

참을 수 없는 무거움의 가벼움

흔히 미국인들은 아이러니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한국인들도 이 점에서는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를 자살 선동 혐의로 재판에 회부하거나 록의 악마주의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 등은 바로 아이러니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얼라니스 모리세트(Alanis Morrisette)의 “Ironic”이라는 노래를 한 번 들어보자(나도 안다. 캐나다 가수라는 거). ‘아흔 여덟 살 된 노인이 복권에 당첨되고는 이튿날 죽었단다… 아이러닉하지 않아?(An old man turned ninety-eight/He won the lottery and died the next day/…And isn’t it ironic…dontcha think)’. 이것은 ‘아이러닉’한 것이 아니라 ‘재수가 없는’ 것이다. 이 노래에서 아이러니는 가사의 내용이 아니라 ‘아이러니가 뭔지도 모르는 가수가 아이러니에 관한 노래를 불렀고 그것을 히트까지 시켰다는 사실’이다. 사물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곳에 아이러니는 없다. 매사에 지나치게 심각한 곳에도 아이러니는 존재하기 어렵다.

무브(The Move)는 록 음악이 갈수록 심각하고 무거워져 가던 1960년대 말-1970년대 초에 활동하던 그룹이다. 우리에게는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The Electric Light Orchestra; 이후 ELO로 표기)의 전신으로서 이름만 조금 알려져 있는 정도지만 이들은 이후 록 역사에서 상당히 비중있게 거론되는 그룹이다. 무브에 관해서 가장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사항은 이들이 팝 멜로디와 헤비 사운드의 결합에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이다. 이후 칩 트릭(Cheap Trick)과 스매싱 펌킨스(The Smashing Pumpkins) 등으로 이어지는 이러한 흐름의 시원에 바로 무브가 존재했던 것이다. 무브의 이러한 성향은 괴짜 아티스트 로이 우드(Roy Wood)에게서 비롯되었다. 그의 탁월한 멜로디 감각과 유쾌한 장난기는 아무리 무거운 주제라도 가볍게 풀어나갈 수 있는 토대로서 기능했다. 비록 프로그레시브 록에서 헤비 블루스와 하드 록에 이르는 당대의 음악적 흐름에 두루 발을 담궜지만 무브의 음악에는 이들 장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유머와 재기가 언제나 충만해 있다.

무브의 두번째 앨범 [Shazam]은 세간의 평가를 크게 양분하는 이들의 문제작이다. 데뷔 앨범 [The Move]의 흠잡을 데 없는 싸이키델릭 팝과 비교할 때 대작 중심의 [Shazam]은 음악에 대한 이들의 접근을 극단적으로 변화시킨 작품이다. 이 앨범을 혹평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이것의 구성을 문제로 삼는다. 앨범에 실린 총 6개의 수록곡 중 오리지널 작품은 A면에 수록된 단 3곡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한 곡은 아멘 코너(Amen Corner)가 이미 발표한 바 있는 곡이고(“Hello Susie”) 또 한 곡은 데뷔 앨범에 수록되었던 트랙을 재활용한 것이다(“Cherry Blossom Clinic Revisited”). 결국 앨범을 통틀어 완전히 새로운 곡은 “Beautiful Daughter” 한 곡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누가 봐도 실망스러운 구성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앨범의 음악적 내용도 그리 탄탄하게 보이지 않는다. “Hello Susie”와 “Beautiful Daughter”는 경량급의 소품들이고 “Cherry Blossom Clinic Revisited”는 유치찬란하며 B면의 커버곡들은 어색하고 작위적이다.

[Shazam]에 접근하기 위한 키워드는 ‘광기’다. 광기는 로이 우드가 초창기부터 꾸준하게 다뤄왔던 주제의 하나다. 정신병원에 수용된 환자의 독백을 노래한 “Cherry Blossom Clinic Revisited”는 이 점에서 이 앨범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는 곡으로 간주할 수 있다. 데뷔 앨범에 실렸던 2분 30여초의 트랙 “Cherry Blossom Clinic”을 세 배 가량 확장한 이 곡에서 이들은 바흐(J.S.Bach), 듀카(P.Dukas), 차이코프스키(P.Tchaikovsky) 등의 선율을 활용해 무질서하면서도 컬러풀한 정신분열의 세계를 형상화한다. 클래식 음악의 직설적 차용이 듣기에 따라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심각하려다가 유치해진 것과 애초부터 유치하게 나가겠다고 마음 먹은 것과는 경우가 많이 다르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은 몬티 파이돈(Monty Python) 코미디의 요소를 음악에 도입하려 시도한 듯하다. 아르스 노바(Ars Nova) 원곡의 고전적 프로그레시브 록 넘버 “Fields Of People”을 더욱 웅장하고 스펙타클하게 만들면서도 ‘good evening madam, it’s recorded’라는 장난스러운 멘트와 짖궂은 웃음소리를 집어넣은 것은 몬티 파이돈적 아이러니를 음악적으로 변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Fields Of People”이 아르스 노바라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밴드의 음악이라면 [Shazam]의 나머지 커버곡들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스탠더드 넘버들이다. 바일-만(Weil-Mann) 컴비 작곡의 “Don’t Make My Baby Blue”는 브릴 빌딩 팝의 대표적인 히트곡이고 탐 팩스턴(Tom Paxton)의 “The Last Thing On My Mind”는 수많은 가수들이 불러 유명해진 포크의 명곡이다. 무브는 이 두 곡에 애시드 록 스타일의 폭발적인 기타 사운드를 덧붙임으로써 팝과 헤비 사운드의 결합에 선구적인 업적을 달성한다. “Don’t Make My Baby Blue”의 크림(Cream)을 연상케 하는 묵직한 기타 톤과 “The Last Thing On My Mind”의 버즈(The Byrds)와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를 결합한 듯한 환각적 와와 사운드는 원곡에 새로운 차원을 부여할 뿐 아니라 록의 새로운 하위 장르를 잉태하는 것으로도 이어진다. 물론 여기서 이러한 결합에 전혀 무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노래와 연주 사이에 아귀가 맞지 않거나 작위적인 구석이 종종 발견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색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옅어져 간다. 로이 우드의 광기어린 기타와 이들의 불을 뿜는 연주는 몇몇 결점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지속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앨범의 도입부에 배치된 두 곡의 소품은 말 그대로 소품들이다. 5분 여에 육박하는 “Hello Susie”를 소품이라고 부르는 데는 다소 어폐가 있겠지만 곡의 분위기만은 확실히 아담한 소품의 느낌이다. 원래 아멘 코너가 버블검 스타일로 발표했던 곡이므로 아무리 하드 록적 처리를 거쳤다 해도 본바탕을 감추기는 어려운 듯하다. 이 곡에서 귀담아 들을 부분은 베브 베번(Bev Bevan)의 뇌성벽력 같은 드러밍이다. 곡의 성격에 비해 다소 과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상당히 인상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만큼은 틀림 없다. 이어지는 “Beautiful Daughter”는 이후 ELO의 사운드를 예견케 하는 단아한 발라드다. 통기타와 현악으로 이루어진 곡 치고는 중반부의 긴장감이 만만치 않다. 앨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는 수록곡들의 사이사이를 채우는 거리 인터뷰다. 지나는 행인이나 택시 기사 등을 상대로 ‘영국 팝 음악에 대한 견해’를 묻는 이 인터뷰는 앨범이 지닌 또 하나의 ‘몬티 파이돈적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뷰어를 자청한 로이 우드는 부지런히 쫓아다니지만 긍정적인 의견을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알기로 [Shazam]은 현재까지 두 번에 걸쳐 CD 재발매가 이루어졌다. 한 번은 1990년대 초 일본에서였고 다른 한 번은 1990년대 말 독일에서였다. 팝의 메카라고 하는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아직도 발매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03년에 EMI에서 무브와 ELO의 전작 재발매 계획이 발표된 바 있으나 어찌된 일인지 현재까지 감감 무소식이다. 때문에 현재 구입 가능한 것은 일본의 테이치쿠(Teichiku) 버전과 독일의 레퍼토어(Repertoire) 버전 둘 뿐이다. 이 두 버전의 결정적인 차이는 커플링이다. 테이치쿠 판은 무브의 데뷔 앨범을 커플링하고 있고 레퍼토어는 이들의 라이브 EP [Something Else]를 합본으로 제공하고 있다. 물론 각자의 필요에 따라 결정할 일이기는 하지만 필자는 레퍼토어 버전에 좀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무브 콜렉션에 있어서 첫 두 앨범은 필수 아이템들이다. 한 장 값으로 이 둘을 한꺼번에 구입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레퍼토어 판의 수많은 보너스 트랙들은 그냥 지나쳐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운 자료들이다. 20040515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10/10

수록곡
1. Hello Susie
2. Beautiful Daughter
3. Cherry Blossom Clinic Revisited
4. Fields Of People
5. Don’t Make My Baby Blue
6. Last Thing On My Mind
7. So You Want To Be A Rock & Roll Star [Live][Bonus Track] 8. Stephanie Knows Who [Live][Bonus Track] 9. Something Else [Live][Bonus Track] 10. It’ll Be Me [Live][Bonus Track] 11. Sunshine Help Me [Live][Bonus Track] 12. Piece Of My Heart [Previously Unreleased Live EP Outtakes] [Bonus Track] 13. Too Much In Love [Previously Unreleased Live EP Outtakes] [Bonus Track] 14. (Your Love Keeps Lifting Me) Higher And Higher [Previously Unreleased Live EP Outtakes] [Bonus Track] 15. Sunshine Help Me [Previously Unreleased Live EP Outtakes] [Bonus Track]

관련 글
The Electric Light Orchestra [The Electric Light Orchestra] 리뷰 – vol.5/no.19 [20031001]

관련 사이트
Roy Wood 공식 사이트
http://www.roywood.co.uk
The Move 비공식 사이트
http://www.themoveonline.com/news_roywoodo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