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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redible String Band – The 5000 Spirits Or The Layers Of The Onion – Elektra/Hannibal, 1967/1994

 

 

유니콘을 타고 크리쉬나를 만나다

1960년대의 서양 대중음악을 주도한 양대 흐름은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록과 포크였다. 그러나 두 나라의 록은 서로 달랐고 포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포크가 토피컬 송(topical song) 또는 프로테스트 송(protest song)의 형태를 띠면서 리얼리즘 성향을 강하게 나타냈다면 영국의 포크는 정치나 사회현실과 무관한 과거지향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성격이 두드러졌다. 영국 포크의 이러한 발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싱어 송라이터 클라이브 파머(Clive Palmer)다. 펜탱글(Pentangle)의 기타리스트 버트 얀시(Bert Jansch)는 그를 ‘적어도 400-500년 정도는 일찍 태어났어야 하는 인물’로 평가한 바 있다. 중세의 전원 공동체와 민간설화에 대한 그의 열렬한 예찬은 당시 영국 포크 씬의 수많은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비록 음악적으로는 그리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는 영국 모던 포크 생성기의 유력한 사상가로서 기능한 것이다.

클라이브 파머가 자신의 뜻을 최초로 펴게 된 것은 1960년대 중반 글래스고에 ‘클라이브의 인크레디블 포크 클럽(Clive’s Incredible Folk Club)’을 열면서부터다. 그는 여기서 젊은 싱어 송라이터 로빈 윌리엄슨(Robin Williamson)과 함께 하우스 밴드 격인 인크레디블 스트링 밴드(Incredible String Band, 이하 ISB)를 결성했고 이후 마이크 헤론(Mike Heron)을 받아들여 트리오 체제를 출범시켰다. 많은 공연을 통해 실력을 가다듬은 이들은 1966년에 프로듀서 조 보이드(Joe Boyd)의 눈에 띄어 엘렉트라(Elektra) 레이블을 통해 역사적인 데뷔 앨범 [The Incredible String Band]를 내놓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앨범을 발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버렸고 클라이브 파머와 로빈 윌리엄슨은 각각 아프가니스탄과 모로코를 향해 유랑의 길에 올랐다. 그룹의 재결성은 모로코 여행 중 돈이 떨어진 로빈 윌리엄슨이 급거 귀국하여 마이크 헤론을 만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후 멤버의 확대와 축소를 거듭하면서 이 두 사람은 1967년부터 약 5년 간 ISB의 전성기를 이끌어나갔다.

[The 5000 Spirits Or The Layers Of The Onion]은 듀오로 재결합한 ISB의 첫번째 앨범이다. 비록 클라이브 파머는 없었지만 그가 설파한 중세 신비주의의 영향은 앨범 전반에 걸쳐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진혼곡 조의 “Eyes Of Fate”나 “My Name Is Death” 등은 이러한 영향을 선명하게 나타낸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적 범위가 비단 영국과 중세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도처에서 등장하는 블루스의 선율은 밥 딜런(Bob Dylan)의 영향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고(“No Sleep Blues”, “Way Back In The 1960’s”, “Blues For The Muse”) 짐브리나 탐부라 같은 다양한 악기의 활용은 월드 뮤직에 대한 이들의 깊은 관심을 일깨워 준다(당시는 월드 뮤직이라는 단어조차 없던 시절이다). 이를 통해 이들은 동과 서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아우르는 방대한 세계를 음악 속에 축조해낸다. 그리스 민속음악으로 시작해서 브리티쉬 포크를 거쳐 블루스로 변형되는 “Mad Hatter’s Song”은 이들의 이러한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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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듀오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ISB는 엄밀히 말해서 두 사람의 싱어 송라이터로 구성된 ‘따로 또 같이’ 류의 밴드다. 텁텁한 허스키 보이스의 마이크 헤론과 냉소적인 비음의 로빈 윌리엄슨은 솔직히 듀엣으로서 그리 잘 어울리는 커플은 아니다. 천진난만하고 동화적인 마이크 헤론의 음악과 이국적이면서 고풍스러운 로빈 윌리엄슨의 음악은 전혀 상이한 세계를 표방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구사하는 두 사람의 보컬 하모니는 언뜻 들어도 어설프기 그지 없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적 맥락에서 불일치하는 화음과 고르지 못한 음정은 오히려 자연스럽고 여유로운 멋을 표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들의 음악은 애초부터 기교적 엄밀성이나 정확성을 추구하는 음악이 아니라 영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구속되지 않은 영혼의 진솔한 드러냄. 이것이 바로 ISB의 음악이다.

[The 5000 Spirits Or The Layers Of The Onion]이라는 제목은 당시 히피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던 크리슈나무르티의 명상 철학에서 빌어온 것이다(앨범의 표지도 인도철학의 영향을 명백히 드러낸다). 인간의 정신은 마치 양파처럼 무수한 껍질에 싸여있어서 그것을 하나씩 벗을 때마다 보다 내밀한 자아에 근접하게 되고 모든 껍질을 다 벗길 때 비로소 참 자아인 무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사상 자체의 가치나 타당성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사상이 널리 확산되고 유포되던 시대다. 이 앨범은 LSD와 싸이키델릭, 프리 섹스와 반전으로만 국한되지 않는 히피 정신세계의 한 단면을 오늘날의 우리에게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다. 세속적인 삶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자연의 미물에서 인생의 지혜를 발견하고(“Little Cloud”, “Hedgehog’s Song”) 순진무구한 사랑을 예찬하는(“Painting Box”, “First Girl I Loved”) ISB의 음악은 한때 많은 사람이 꿈꾸던 유토피아적 공동체의 따스함을 우리로 하여금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이 앨범의 성격은 통기타와 짐브리의 음색이 정겹게 어우러지는 첫 곡 “Chinese White”부터 명백히 드러난다. 마이크 헤론의 꾸밈 없는 보컬과 서정적인 멜로디가 일깨우는 것은 훈훈한 인간미와 순박한 이상주의다. 이어지는 로빈 윌리엄슨의 “No Sleep Blues”는 리듬과 코드 진행에서 블루스임이 분명하지만 창법과 멜로디만은 여지없는 브리티쉬 포크다. 이러한 요소들의 상위는 은은한 플루트 선율과 함께 이 곡을 브리티쉬 포크/블루스의 인상적인 접합으로 만들어낸다(로빈 윌리엄슨의 블루스 곡들은 대부분 이러한 패턴을 따른다). 앨범의 가장 아름다운 곡 중 하나인 “Painting Box”는 마이크 헤론 특유의 소박하고 낭만적인 사랑 노래다. 시타 소리가 가볍게 귀를 자극하는 이 곡은 로빈 윌리엄슨의 연인 리코리스(Licorice)의 찬조출연으로 더욱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이 앨범은 이처럼 두 멤버가 교대로 등장하면서 각자의 음악성을 뽐내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이크 헤론의 다소 교과서적인 접근과 로빈 윌리엄슨의 변칙적인 접근은 이러한 교차 구성 속에서 더욱 극명하게 서로의 특징을 부각시킨다. 또한 이 앨범은 이들의 첫 히트곡(?) “First Girl I Loved”를 배출했다는 점에서도 중요성을 갖는다. ‘지금쯤 너도 결혼을 했겠지/아이도 있을 것이고/아마 낯선 어른이 되어 있을거야’라는 로빈 윌리엄슨의 탄식은 듣는 이의 마음에 오랫동안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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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5000 Spirits Or The Layers Of The Onion] 이후 ISB의 음악은 무척 심각해진다. 일반적으로 이들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되는 후속작 [The Hangman’s Beautiful Daughter]는 전작의 자취를 찾기 어려울 만큼 경건하고 진지한 음악을 담고 있다. 이들의 이러한 경향은 이어지는 앨범들에서도 한동안 지속됨으로써 [The 5000 Spirits Or The Layers Of The Onion]의 간결함과 가벼움을 더욱 독보적인 것으로 만든다. 1973년의 [No Ruinous Feud]에서 다시금 소품 위주의 접근으로 돌아오기는 하지만 전기 악기를 대폭 채용한 이 앨범의 포크 록 성향은 [The 5000 Spirits Or The Layers Of The Onion]의 어쿠스틱 지향과는 차이가 큰 것이었다. 2002년에 컬렉터스 초이스 뮤직(Collectors’ Choice Music)은 [The 5000 Spirits Or The Layers Of The Onion]과 [The Hangman’s Beautiful Daughter]를 더블 CD로 합본하여 발매한 바 있다. 현재로서는 가장 최신 버전이고 이들 최고의 앨범들을 한데 묶었다는 점에서 이 버전은 상당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물론 두 앨범을 따로따로 구입하는 것도 아직은 가능하다. 하니발(Hannibal)과 엘렉트라(Elektra)의 과거 판본들이 지금도 시중에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 구 버전의 경우 음질 면에서는 약간의 손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20040430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10/10

수록곡
1. Chinese White
2. No Sleep Blues
3. Painting Box
4. Mad Hatter’s Song
5. Little Cloud
6. Eyes Of Fate
7. Blues For The Muse
8. Hedgehog’s Song
9. First Girl I Loved
10. You Know That You Could Be
11. My Name Is Death
12. Gently Tender
13. Way Back In The 1960’s

관련 사이트
The Incredible String Band 공식 홈페이지
http://www.incrediblestringban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