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e – Pretty On The Inside – Caroline, 1991 낮은 곳에 임하지 못하소서 27살에 ‘자기 밴드’ 홀(Hole)의 데뷔 앨범, [Pretty On The Inside](1991)를 낸 커트니 러브(Courtney Love)는 20대 초반부터 언더그라운드 음악씬을 전전해 온 인물이었다. 올뮤직(All Music Guide) 등을 보면 커트니 러브는 1980년대 초부터 페이스 노 모어(Faith No More)의 리드보컬이었는가 하면 베이브스 인 토이랜드(Babes In Toyland)의 초기 멤버이기도 했다. 모두 이들 밴드들이 앨범을 내기 전의 일이다. 적나라하게 말하면 커트니는 이들 밴드가 데뷔앨범을 발매하기 전에 그만두었거나 쫓겨났다는 이야기일 것이다(올뮤직에서는 베이브스 인 토이랜드의 캣 벌랜드(Kat Bjelland)가 커트니 러브를 쫓아냈다고 언급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음악적 경력의 한 켠에는 10대부터 그루피였고 20대에 음악을 하기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스트리퍼라는 직업을 선택한 그녀의 음악 외적인 경력도 수반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본 앨범에서의 자서전적인 고백에 의하면 ’10대부터 창녀’였다(“Teenage Whore”) 홀을 이야기할 때 항상 한 켠에서 이야기되는 것이 너바나(Nirvana)이긴 하지만(불행히도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Pretty On The Inside]가 커트니 러브 개인의 황폐한 자의식을 분노로 드러낸 음반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리고 그녀가 만일 홀이 아닌 베이브스 인 토이랜드의 멤버로서 커리어를 이어왔을 가능성까지 생각해보면, 그리고 이 앨범이 커트니 러브가 너바나에 의해 촉발된 그런지 음향에 영향받기 이전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앨범은 포스트 펑크(post-punk)이며 라이엇 글(riot grrrl) 흐름의 일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다. 199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홀 뿐 아니라 L7, 베이브스 인 토이랜드, 세븐 이어 비치(7 Year Bitch), 비키니 킬(Bikini Kill) 등 많은 여성 포스트 펑크 밴드들이 언더그라운드에서 성과를 올리던 시기였다. 이러한 밴드들이 하드코어한 언더그라운드 펑크의 색채를 띄고 있다가 그런지의 열풍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990년대 중반이다. 슬리터 키니(Sleater Kenney) 같은 밴드는 그런지의 섬세함과 장르적 세련미를 이전의 걸 펑크와 중용적으로 결합한다. 반면 홀은 첫번째 주류 진입 앨범인 [Live Though This](1994)를 통해 라이엇 글 펑크로부터 그런지 걸로 단절과 변신을 시도한다. 감성과 내용은 이어지고 있지만 음악적 성향은, ‘과거를 벗어던졌다’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벗어던진 것은 음악스타일만은 아닐 것이다. 분명 그녀는 맘 먹고 뜨기로 작정한 것이다. 한 켠에서는 라이엇 글 밴드로 취급되면서 한 켠으로는 록계의 마돈나(Madonna)로 취급되는, 그러나 그 어느 쪽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 밴드 홀의 리더 커트니 러브의 경력은 커트니가 왜 자리잡지 못한 채 몇 년씩 언더그라운드 씬을 전전했는지 설명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음악 뿐 아니라 영화판에서도 오버한다는 평판을 감수하며 자기를 소개하고 노출했을 것이며 그로 인해 경멸당하는 것도 감수했을 것이다. 커트니 러브는 하위 여성록 씬의 에너지를 수렴하고 발산하는 인물 중 하나였지만 인디씬의 소박한 공동체적 성향에 결국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자학과 노출을 반복하는 그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좀 더 높은 무대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녀는 또 메인스트림에서 살아남기에는 너무 솔직하고 적나라하며 서툴기 짝이 없다. 그녀는 마치 날 것의 자신 그대로 높은 무대에 오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이것이 부자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무모한 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상처투성이이긴 하지만 아직 생존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America’s Sweetheart](2004)가 보여주는 것처럼 그녀는 여전히 뛰어난 펑크 걸이지만, [Pretty On The Inside]는 이 모든 복잡한 것이 시작되기 전의 앨범으로서 많은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지 열풍이 불지 않았더라면 홀은 인디씬의 펑크 그룹으로 어쩌면 ‘소박하고 행복하게’ 남아 있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Pretty On The Inside]는 음악적으로나 내면적으로 L7이나 베이브스 인 토이랜드와 같은 라이엇 글 펑크 밴드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pussy’라는 단어로 남성밴드들에 맞대응하며 “죽은 남자는 널 강간하지 못해”(“Dead Man Can’t Rape”)라고 소리치는 세븐 이어 비치 같은 밴드에 비해서 홀은 덜 목적적이다. 또한 보통의 라이엇 글 인디밴드들이 여성멤버들로 이루어진 밴드 공동체 음악으로, 멤버 간의 조화로운 호흡과 유대를 중시하는 것에 비해 홀은 리더 개인의 자의식을 노출하기 위한 밴드의 성격이 강하다(마치 자우림같다). 홀을 페미니즘-정치를 구현하는 밴드로 바라보려는 것은 노숙자가 진보적일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진배 없이 ‘어찌어찌 분류는 가능하지만 과녘에 딱 맞지는 않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것은 여전히 정치적이다. 그래서 음악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이 앨범은 라이엇 글 앨범의 일환으로 여겨진다. 동시에 킴 고든(Kim Gordon)이 프로듀싱 했다는 점을 연상하기 편리하게도, 송라이팅 혹은 보컬 라인에 있어서 소닉 유스(Sonic Youth)의 [Daydream Nation](1988)의 넘버들을 연싱시키는 부분도 없지 않다. 앨범에서 커트니 러브는 종종 소닉유스처럼 노래한다(“Babydoll”). 생각해보면 좋게 말해도 커트니 러브와 홀이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한 밴드는 아니었다. 요컨데 ‘홀 스타일’이라고 차별화할 만한 스타일을 앨범을 반복하면서 구축해온 것은 아니다. 커트니는 요식 발명가라기 보다 요리사에 가깝다. 다른 요리사의 레시피를 참고하여 자기 가게의 입지와 구매층에 가깝게 변형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트니의 유례없이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요리”라는 간판을 달아놓고 고개를 높이 세우고 있다. 요리사의 자의식은 이런 식으로 그 안에 가득 담기게 된다. 본래부터 그런 것이 팝이고 팝아트 아닌가? 커트니 러브의 재능은 ‘음악에 투신’한 것이 아니라 자기노출과 표현의 재료로서 음악을 사고하는 것에 있다(이런 점도 국내 모 밴드의 보컬과 닮은 점이긴 하군). 흔히 오해하는 것과 달리, 음악의 독창성과 음악에 담긴 자의식의 밀도와 순도는 좀 다른 이야기다. 내 생각에 전자보다 후자가 있을 때, 음악은 설득력을 가지고 공감을 획득한다. 커트니에 대해서는 언제나 그것만은 인정한다. 그리고 만족한다. 20040426 | 김남훈 kkamakgui@hanmail.com 6/10 수록곡 1. Teenage Whore 2. Babydoll 3. Garbage Man 4. Sassy 5. Good Sister/Bad Sister 6. Mrs. Jones 7. Berry 8. Loaded 9. Starbelly 10. Pretty On The Inside 11. Clouds 관련 글 Hole [Live Through This] 리뷰 – vol.6/no.8 [20040416] Hole [Celebrity Skin] 리뷰 – vol.6/no.8 [20040416] Courtney Love [America’a Aweetheart] 리뷰 – vol.6/no.5 [20040301] 관련 영상 “Teenage Whore” Live 관련 사이트 Courtney Love 공식 사이트 http://www.courtneylo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