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 – Self Control – 서울음반, 2004 어중간한 한 걸음 엄정화가 2001년 7집 [화(花)]를 끝으로 가요계 활동을 접고 배우로의 전업을 시도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틴 아이돌로 출발한 30대 중반의 여가수가 더 이상 기존 팬 층에게 어떠한 자극도 줄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니 말이다. 그래선지 3년만의 컴백음반 [Self Control](2004)을 발매하기에 앞서 엄정화는 두 가지 화제성 이벤트를 만들어냈다. 하나는 ‘얼굴 없는 가수’ H(하지만 그의 정체가 2000년 별 주목 받지 못한 “Dream”의 주인공 현승민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여 저음의 남자목소리를 립싱크로 부른 것이고, 또 하나는 새로 나올 음반이 ‘대중성’과 ‘작품성’을 고려하여 각각의 고민을 반영한 더블 음반으로 제작되리라는 사실을 공개한 것이다. 전자의 경우, 이태원 등지에서 게이 클럽의 디바(diva)로 추앙 받는 엄정화임을 상기한다면 일견 당연한 전략일 것이고, 후자의 경우에도 이제는 ‘음악’으로 승부한다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으니(게다가 두 장을 한 장 값에 판매한다는 메리트까지 있으니) 확실히 엄정화(혹은 기획사가)가 새 음반을 내놓으며 평균치 이상의 공을 들였음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여기서 얘기가 좀 복잡해진다. 우선 음악성을 고려했다는 [Self Side], 첫 곡 “Everythig Is Changed”의 냉랭하면서 건조한 그루브감도 나쁘지는 않고, 단조로운 비트 사이로 샘플링 된 현악 사운드가 중간 중간 끼어드는 “Eternity” 역시 괜찮은 훅(hook)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단, 마돈나(Madonna)의 “Music”과 “Don’t Tell Me”를 들어보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서라면 말이다. [Self Side]에서 엄정화의 역할모델(roll-model)이 누구인지는 너무나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물론 마돈나가 [Ray Of Light](1998)와 [Music](2000)을 통해 선보인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도 ‘주류 여가수’임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크게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연예 산업 내에서 갖는 자신의 비중과, 그러한 톱스타의 시도 자체가 주는 ‘신선함’으로 마돈나는 그리 새롭지 않은 사운드를 자신만의 특화된 무언가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이는 선발주자에게나 득이 되는 것이지 후발주자가 차지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정재형이 만들어내는 일렉트로니카 비트와 윌리엄 오빗(William Orbit), 미르와 아마자이(Mirwais Ahmadzai)가 만들어낸 마돈나의 그것 사이에 차별점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은 [Self Side]의 커다란 약점이다. 이 점을 알고 있는지, 엄정화(와 정재형)는 국내 일렉트로니카 씬의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실력파들을 대거 참여 시키는 것으로 이런 문제를 만회해보려고 한다. 하지만 참여진이 화려하다는 [Self Side]에서 그 화려한 참여진들은 최대한 ‘누군가와 닮은’ 소리를 만들어 내거나(프랙탈(Fractal)이 참여한 “Flying”과 달파란의 “Love Me”), 그게 아니면 최대한 엄정화라는 가수의 개성을 지워버리고 자신들의 색깔을 덮어씌우는데 노력한다(롤러코스터의 “Union Of The Snake”, 윤상의 “지금도 널 바라보며”). 그리고 이러한 두 가지 시도 모두 ‘가수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내고자 하는 엄정화’와는 거리가 먼 결과물들이다. [Self Side]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작 초대 손님들에 휘둘려 엄정화 본인의 비중이 현저하게 감소했다는 점에 있다. 이런 문제점은 “In The Rain”과 “봄”이 기껏 쌓아올린 음반의 유로 일렉트로니카(Euro-electronica) 사운드를 깎아먹는 문제보다도 심각하다. 오히려 엄정화 개인이 부각되는 것은 자의식과는 거리가 멀다는, ‘상업적’ 의도로 만들어진 [Control Side]에서이다. 기존 가요의 공식에 충실한 [Control Side]에서 만큼은 엄정화는 엄정화로서 존재한다. 기존 댄스 가요의 문법 안에서 “Eros”, “Crush” 같은 곡은 분명한 나름의 미덕을 지니고 있다. 프로듀싱 면에 있어서도, (정재형이 주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리긴 하였지만) 중구난방 식의 [Self Side]보다는 오래 호흡을 맞춰온 주영훈 쪽이 좀 더 일관적인 작업을 이어가는 듯하다. 중간 중간 끼어 드는 발라드 트랙(“Good Bye My Love”, “우리 다시” 같은)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그리고 앞으로도 나아질 것 같지 않은) 가창력 문제를 드러내지만, 이 점에 대해 굳이 여기서 딴지를 걸고 넘어질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 정도 (안전한) 댄스 음반을 가요계에서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작년 발매되어 많은 지탄을 받았던 이효리의 [STYLISH..E hyolee](2003) 역시 사운드 면에 있어서는 그리 흠잡을 데가 없는 음반이었다. [Control Side]는 엄정화 개인을 부각시키는 데는 성공하지만, 너무나 ‘평범’한 소리를 들려주며 여타 댄스 음반들과의 차별점을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한다. 그렇다면 엄정화의 [Self Control]은 실패한 음반인가? 여기서 다시 한 번 얘기가 꼬인다. 사실 이 음반을 ‘가요’라는 범주에서 바라본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Self Side]는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지만 유로 일렉트로니카의 냄새를 그럴듯하게 풍기며 그간 댄스가요계에서 접하기 힘들던 색다른 소리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Control Side] 역시 나이트 클럽에서 정해진 율동을 따라 몸을 흔들어대기엔 그리 나쁘지 않은 음반이다. 문제는 엄정화가 스스로를 자의식 있는 가수로 재규정 하려는데 있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Self Side]는 만족스럽지 못하고, [Control Side]는 무책임하다. 여기서 엄정화의 본심(소위 말하는 상업적 시도인가 아닌가에 대해서)에 대해 얘기할 생각은 없다. 본심이 무엇이던 간에 양질의 결과물을 가지고 나온다면 그것이 큰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Self Control]는 (직접 작곡활동에 참여한다기 보다는 자신이 부를 노래를 ‘선택’할 줄 아는) ‘음악인’ 엄정화에 대한 각은 잡아놨으되, 그에 합당한 소리를 들려주는 데는 실패한다. 20040319 | 김태서 uralalah@paran.com 5/10 * 이 글은 벅스웹진에 실린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수록곡 Self Side 1. Everything Is Changed 2. Eternity 3. Flying 4. Union Of The Snake 5. Love Me 6. 지금도 널 바라보며 7. In This Rain 8. 봄 9. Eternity (Electronic Bossa Mixed By URU) Control Side 1. Eros 2. Good Bye My Love 3. Crush 4. 아닌가요 5. 신데렐라 6. 미안해 7. 우리 다시 8. 딜레마 (Dilemma) 9. 사랑은, 미친 짓이다 10. Boy 11. Wacko 관련 사이트 엄정화 공식 홈페이지 http://www.uhmjunghwafore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