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밴드(gloomyband) – gloomyband – gb, 2004 가감없는 우울, 명료한 혼란 우울한 밴드의 우울한 음악. 여기에 뭘 더 보태야 할까. 공연 때마다 ‘박수치지 말아달라’는 멘트를 남긴다는 데서 짐작할 수 있는 이들의 태도 정도? 무란(keyboard, vocal)과 유혁(guitar, vocal)으로 이루어진 이 2인조 밴드의 성격을 꼭 집어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이 밴드가 ‘실험적’이어서 그렇다기보다는 ‘우울한’ 음악으로 알려진 스타일들을 어둡게 배열하는 탓이다. 그리고 이 음반은 우리, P2P와 신용카드로 채집한 우울한 음악들을 울먹이며 즐겨왔던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강력히 호소한다. LP 턴테이블 위에 바늘을 얹는 효과음으로 문을 여는 “Catchball”, 속도감 있는 합주와 피아노가 반주하는 삼박자의 느릿한 선율을 병치시키면서 점차 충동적인 무드를 조성하는 “Sine”과 같은 곡들은 로우(Low)와 같은 밴드들의 정서를 환기시킨다. 강렬한 하드 록 사운드 속에서 중동풍 음률의 기타 프레이즈가 미끄러지는 “Why”는 익숙하면서도 반갑다. 이러한 곡들은 장르의 컨벤션(전자는 슬로코어, 후자는 그런지)을 스스럼없이 드러내지만 그럼으로써 그 컨벤션이 갖고 있는 감춰진 무언가를 잡아낸다. 흐릿하게 소리들을 배치하는 프로듀싱은 우울함이 갖고 있는 ‘분명한 혼란’을 표현하는 데 적합해 보인다. 이러한 곡들을 부르는 거칠고 스산한 남성 보컬과 간간이 끼어드는 연약하면서도 성긴 여성 보컬의 코러스는 햇빛을 본 두더지처럼 세상의 부조리 앞에서 두 눈을 괴롭게 껌벅인다. 따라서 음반의 가사가 어두운 삶에 대한 세 가지 주된 반응 양식인 추억(“Catchball”, “Tonight”)과 좌절(“Choking”, “노숙자”), 분노(“Heart”, “Pyromania”)를 담아 쓰여졌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요점은 이들이 자신들의 정직한 밴드명에 부끄럽지 않은 음악을 들려준다는 것이다. 방금 코마에서 깨어난 듯한 여성 보컬이 “I’m choking”이라는 구절을 반복하는 “Choking”의 ‘일렉트로닉’한 시도는 아슬아슬하게 어떤 선을 넘지 않는다. 문제는 음반의 후반부이다. 스웨터를 짜듯 촘촘하게 소리를 얽어가던 음반은 뒤로 갈수록 조금씩 올이 풀린다. ‘싸이키델릭 민중가요’ 같은 “Heart”와 사운드가든(Soundgarden)을 닮은 “Pyromania”에 삽입된 나레이션은 정제되지 않은 메시지가 묘한 아이러니를 불러일으키는데, 이는 곡의 구성 또한 흐트러뜨린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음악이 메시지에 ‘잡아먹힌’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 뉴에이지 풍의 맑은 건반 반주에 맞춰 민요풍의 멜로디로 마무리를 짓는 “All Day”(이 곡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는 정서적인 일관성보다는 형식상의 동떨어짐이 더 크다는 인상이다. 아울러 한국어로도 표현이 가능할 것 같은 곡(이를테면 “Catchball”)에서도 영어 가사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외국어가 갖는 ‘장벽’의 효과를 노린 것인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음반의 솔직한 추진력을 반감시킨다. 써놓고 보니 ‘일장일단을 가진 음반’이라는 내용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사실 위의 평가와는 관계없이 나는 이 음반을 여러 번 돌려듣고 있는 중이다. 특히 전반부와 중반부 다섯 곡은 깊이있는 밀도와 만족스러운 울림을 제공한다. EP 형태로 나왔다면 음반에 대해 더 긍정적인 자세를 가질 수 있었을까. 우울함을 가장한 냉소와 쇼맨쉽이 ‘쿨’로 포장되는 시점에서 이렇게 순수한 우울함을 만나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언젠가 그것이 다른 형태로(형식상으로든, 메시지로든) 변형과 가공을 거쳐야 하리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어떤 경우 감추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드러낼 수 있는데 음악만큼 그 역설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은 없을 것이므로. 20040315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7/10 p.s. 이 음반은 일종의 ‘선주문’으로 제작되었다. 음반 제작비를 모금한 뒤 완성된 음반으로 그 돈을 ‘돌려주는’ 형식인데, 제작 방식에 있어서 괜찮은 아이디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뮤지션의 ‘책임감’ 또한 늘어날 수 있게 될 것이고. 수록곡 1. Catchball 2, Sine 3. Tonight 4. Why 5. Choking 6. 노숙자 7. Heart 8. Pyromania 9. All Day 관련 사이트 우울한밴드 공식 홈페이지: 밴드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있고, 음반 구매가 가능하다. http://www.gloomyban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