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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oyd Cole & The Commotions – Rattlesnakes – Chrysalis/Polydor, 1984/1998

 

 

환상 속의 그대

로이드 콜 & 더 코모션스의 [Rattlesnakes]가 올해로 발매 20주년을 맞았다. 로이드 콜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얼마 전 코모션스와 함께 조촐한 합동 공연을 가진 바 있다. 로이드 콜 하면 무엇보다도 그의 지적이며 때로는 현학적인 가사로 유명하다. 흔히 인용되는 ‘She looks like Eva Marie Saint in On The Waterfront/She reads Simone de Beauvoir in her American circumstance(그녀는 [워터프론트]에 나오는 에바 마리 세인트처럼 생겼지/그녀는 미국적 상황 속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를 읽는다네)(“Rattlesnakes”)’ 같은 가사나 “Are You Ready To Be Heartbroken?”에서 언급되는 작가 노만 메일러(Norman Mailer)의 이름 그리고 레나타 아들러(Renata Adler)의 동명 소설을 모티브로 한 “Speedboat” 같은 곡들은 확실히 그의 현학 취미를 잘 드러내는 사례들이다. 심지어 그는 “Rattlesnakes”에서 미국 여배우 에바 마리 세인트의 이름을 ‘이브 마리 상’으로 발음하는 과욕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태도가 특별히 위선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스크리티 폴리티(Scritti Politti)의 “Jacques Derrida” 같은 곡에 비하면 그의 아는 척은 그야말로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로이드 콜은 문학과 영화와 음악에 깊이 심취한 젊은이다. 인생의 경험이 부족하고 현실과 픽션 사이의 구분도 모호한 그에게 예술 작품 속의 가상 세계가 현실 판단의 준거를 이루는 것은 그리 이해 못할 일이 아니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답게 그의 노래들은 대부분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이성관계의 달콤씁쓸한 상황들에 대한 관찰과 사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슬픔과 위트와 쓸쓸함과 냉소가 동시에 공존하는 그의 목소리는 지나간 사랑의 회한을 표현하는데 더 없이 훌륭한 도구로 기능한다. 그는 이러한 목소리를 포크/싱어 송라이터 전통에 입각한 내밀한 멜로디에 실어 매우 낭만적이면서 사적인 느낌의 음악을 만들어낸다. 그의 선율은 때로 수다스러운 가사에 눌려 잘 드러나지 않기도 하지만(“Perfect Skin”, “Speedboat”, “Are You Ready To Be Heartbroken?”) 말수가 좀 적은 곡에서는 여지없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노출한다(“Down On Mission Street”, “2cv”, “Patience”). 그렇다고 가사가 조밀한 곡들이 상대적으로 열등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 곡들은 서스펜디드 코드나 메이저 세븐쓰 코드를 활용한 세련되고 도회적인 선율로 로이드 콜 음악의 가장 개성적인 측면을 형성한다.

[Rattlesnakes]의 음악적 성취를 따지는데 있어서 결코 간과되어서 안되는 것은 바로 코모션스의 기여다. 특히 기타리스트 닐 클락(Neil Clark)은 시종일관 탁월하고 인상적인 연주를 통해 이 앨범의 사운드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Perfect Skin”에서 들려주는 닐 영(Neil Young) 식의 단음 솔로와 “Rattlesnakes”의 유려한 어쿠스틱 기타 리프 그리고 “Are You Ready To Be Heartbroken?”의 섬세하고 정교한 아르페지오 등은 이 앨범의 수록곡들을 더욱 감칠 맛나고 고급스럽게 만든다. 특히 “Forest Fire”의 훵키한 리듬워크와 드라마틱한 솔로는 그가 1980년대의 가장 과소평가된 기타 영웅 중 한 사람임을 깨닫게 한다. 물론 로렌스 도네건(Lawrence Donegan, Bass)과 스티븐 어바인(Stephen Irvine, Drums)의 견실한 리듬 그리고 블레어 코완(Blair Cowan)의 은은한 키보드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의 연주는 자칫 단조로워지기 쉬운 로이드 콜의 기타 팝에 생기와 뉘앙스를 부여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Rattlesnakes]에 대한 한 가지 유감은 사운드의 광택이 다소 지나치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음반들에 비해 소리의 양감이 좀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할 만하지만 음악의 본성에 비춰볼 때 이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초창기 디지털 녹음의 차갑고 번쩍이는 사운드는 음악의 온기를 앗아가고 음악을 값싸게 들리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당시에는 다들 이런 사운드가 좋은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현악과 키보드가 과도하게 부각되지 않음으로써 그나마 1980년대의 나쁜 취향을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폴 하디만(Paul Hardiman)의 프로듀싱은 기타와 보컬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다른 악기들을 적재 적소에 끌어들여 곡의 청각적 초점으로 작용하게 만든다. 그 결과 이 앨범은 기타 팝 앨범치고는 상당히 들을 것이 많은 작품이 되었다. 예를 들어 “Forest Fire”의 드럼과 “Rattlesnakes”의 현 등은 중요한 순간에만 전면에 나서면서 곡에 필요한 악센트를 제공하는 구실을 한다.

내가 처음 음악에 입문할 때만 해도 비틀즈(The Beatles)는 불과 10여년 전의 그룹이었다. 그럼에도 그 때는 그것이 아주 까마득한 옛일로만 생각되었다. 당연히 20년 전 가수였던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는 그저 선사시대의 인물로만 여겨졌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 로이드 콜 & 더 코모션스의 [Rattlesnakes]가 20년 전 앨범이란다. 동시대에 등장한 스미쓰(The Smiths), 허스커 두(Hüsker Dü), 소닉 유쓰(Sonic Youth), 메탈리카(Metallica) 등도 모두 20년 전의 그룹들이 되었다. 그런데 같은 20년이라도 이들에 대한 나의 느낌은 과거 엘비스에 대해 가졌던 것과는 크게 다르다. 선사시대는 커녕 불과 엊그제의 일만 같은 것이다. 도대체 이것은 무엇일까? 나이 탓일까? 아니면 팝 음악의 전개 양상이 과거와 달라진 것일까? 요즘 막 음악에 심취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20년 전 음악에 대해 과연 어떻게 느끼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20040229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10/10

수록곡
1. Perfect Skin
2. Speedboat
3. Rattlesnakes
4. Down On Mission Street
5. Forest Fire (Extended Version)
6. Charlotte Street
7. 2cv
8. Four Flights Up
9. Patience
10. Are You Ready To Be Heartbroken?
11. Sweetness (Bonus Track)
12. Andy’s Babies (Bonus Track)
13. The Sea And The Sand (Bonus Track)
14. You Will Never Be No Good (Bonus Track)

관련 사이트
Lloyd Cole 공식 사이트
http://www.lloydco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