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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folk & Western – Dusk In Cold Parlours – Hush, 2003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짠한 노스탤지어

노포크 앤 웨스턴은 버지니아와 오레곤을 연결하는 철도 노선의 이름이었다. ‘이었다’라고 표현한 것은 이 노선이 지금은 더 이상 운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밴드의 명칭으로 삼은 이들의 음악이 우울한 노스탤지어를 자아내리라는 예측은 쉽게 할 수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예측은 틀리지 않다. 어쿠스틱 포크의 느낌이 강한 아홉번째 트랙인 “No Else Where He Can Go”에 등장하는 화물열차가 움직이는 소리가 사라진 대상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소실의 감정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곡은 여덟 번째 트랙인 “Disappear”다. 오르간 전주에 이어 피아노의 느리고 부드러운 반주에 맞추어 입을 반쯤만 벌린 남자의 노래가 나온다. 어쿠스틱 기타의 영롱한 음과 여성 백킹 코러스와 더해지면서 겨울이 춥고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다가 분위기가 반전된다. 둥둥거리는 베이스 음 위로 일렉트릭 기타의 광포한 사운드(혹은 노이즈)의 향연이 등장한다. 이런 반전이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그리움 어쩌구…’라고 해석하는 것은 견강부회겠지만, 오랜만에 ‘짠한’ 느낌이 전달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종반부에서 페달 스틸 기타가 울어대는 “The Tired Words”는 사라진 대상에 대한 짠한 느낌을 넘어 사라짐의 원인에 대한 노기로 다가온다.

어쩌다가 음반의 뒷 부분부터 설명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오래 전 존재했던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음반의 앞에서도 발견된다. “A Marriage Proposal”과 “Terrified”는 포크-컨트리 스타일의 단순한 팝송이지만, 정통 컨트리는 물론 웬만한 얼트 컨트리에서 느낄 수 없는 진한 감정이 묻어 있다. 이런 진한 감정의 원천들 가운데 하나는 불현듯 끼어드는 밴조 소리일 것이다. 능숙한 직업적 악사가 연주하는 소리가 아니라 집안 한 구석에 먼지가 뽀얗게 방치되어 있던 악기를 꺼내어 연주하는 소리같다. 밴조는 “Oslo”에서 다시 등장하여 종소리, 탬버린 소리와 함께 싸이키델릭한 무드를 자아낸다.

슬로코어 넘버인 “Jealousy, It’s True”나 두 개의 인스트루멘털 곡은 몽환을 넘어 수면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이런 곡들 외에도 나른한 순간은 여러번 찾아온다. 그렇지만 수면은 숙면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데, 이는 밴조 뿐만 아니라 톱(saw), 주노(juno), 옵티건(optigan), 클라베스(claves), 셰이커(shaker), 핑거 심벌즈(finger cymbals), 제이마(jaymar) 등 평소에 듣도 보도 못한 요상스런 악기음들이 마치 숨은그림찾기에 있는 그림처럼 삽입되어 있다는 점과 무관치 않을 것 같다. 즉, 고풍스럽지만 지루하지 않고 어떤 부분에서는 세련된 느낌까지 받는 작법이다.

노포크 앤 웨스턴의 음악이 혁신적이거나 기념비적인 것은 아니다. 요 라 텡고(Yo La Tengo), 머큐리 레브(Mercury Rev), 팰리스(Palace)같은 1990년대 인디 록의 거물들의 영향을 거론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정규 밴드라기보다는 아담 셀처(Adam Selzer)의 프로젝트성 그룹이라는 점을 트집잡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트집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여러 스타일과 사운드의 결합이 시너제틱(synergetic)하다기보다는 에클렉틱(eclectic)하다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미국 북서부를 여행하다가, 예를 들어 자동차라도 고장나서 우연히 들른 외딴 동네의 허름한 클럽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를 상상할 수 있다면 이 음반과의 만남은 소중하게 기억될 것이다. 저런 곳들로 여행하기가 힘든 만큼이나(한국인 대부분의 미국 기행은 뻔한 글로벌리즘을 맛보고 끝날 뿐이다) 이런 음악과의 만남도 그리 쉽지는 않으니까… 경험적으로 낯섬 속에서의 친숙보다는 친숙 속에서의 낯섬이 긴 파장을 낳는 법이다. 경험적으로 낯섬 속에서의 친숙보다는 친숙 속에서의 낯섬이 긴 파장을 낳는 법이다. 특히나 팝 음악의 제국에서 생산된 문화생산물의 경우에는… 20040208 | 신현준 homey81@empal.com

7/10

P.S. 이 음반과 관련된 ‘인맥’을 알고 싶다면, 칼렉시코(Calexico)의 조이 번스(Joey Burns)와 동향 포틀랜드 출신의 매트 워드(M. Ward)가 참여했다는 점을 알려 둔다. “No Else Where He Can Go”에 나오는 목소리가 워드의 목소리이며 기악곡인 “Kelly Bauman”의 기타 연주도 그의 솜씨다.

수록곡
1. A Marriage Proposal
2. Letters Opened In The Bar
3. Terrified
4. Kelly Bauman
5. Jealousy, It’s True
6. Impossible
7. Oslo
8. Disappear
9. No Else Where He Can Go
10. A Hymnal
11. The Tired Words
12. At Dawn After Dusk

관련 사이트
Norfork & Western 홈페이지
http://www.norfolkandwester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