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어부 프로젝트 – Tuna World(참치 월드) – T Entertainment, 2004 도매금 인생사를 중계하는 오디오북 [반칙왕]을 반영한 [21c new hair]이후, 장영규와 백현진의 행보는 (상징적인 의미에서의) 홍대보다 충무로에서 더 활발했다. 장영규는 방준석 등과 함께 있는 스코어 메이킹 프로젝트 ‘복숭아’로 활동해 왔고, 백현진은 독립 영화 [뽀삐]와 [꽃섬]에 배우로 참여하거나, [해안선]과 [바람난 가족]의 엔딩 테마를 불렀다(곧 그의 솔로 앨범이 발표된다). 백현진의 “과거는 흘러갔다”와 “즐거운 나의 집” 리메이크를 들으며, 충무로가 한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게으르게 남용하는 것 같아 다소 아쉬웠다. 반면, 장영규의 [4인용 식탁(OST, 2003)]은 [개, 럭키스타(1999)]의 실험주의를 미니멀 일렉트로니카로 재탐구하고 있다는 생각에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Tuna World]는 이 4년간의 외유에서 돌아온 그들이 고하는 신고식이다. “국산시민”은 일종의 서곡(overture)이다. 굿거리를 미묘하게 비튼 북 장단, 피리처럼 들리는 톱 연주와 톱 연주보다 더 톱 특유의 조야한 괴기를 표현해내는 백현진의 귀곡(鬼哭)으로 시작해 바로크적인 하프시코드, 스트링, 혼성 코러스, 풍금, 백현진의 애끓는 챈팅, 행진곡 풍의 드러밍, 구성진 브라스 세션으로 만개한다. 백현진의 표현주의적 과장은 ‘설움’의 정서를 한국의 역사적 보편성으로 체현하려 한다. “기사식당”은 고즈넉한 마림바와 비브라폰, 삽질 소리처럼 들리는 질퍽한 스톰핑 혹은 비트위에서 백현진, 한대수, 백현진과 한대수의 고저로 나뉜 코러스에서 브라스, 신서사이저가 합세해 절정을 이루고 다시 백현진의 솔로와 목금으로 환원된다. 괴기에 가까울 정도로 고된 노동에 지친 택시 기사가 기사식당 구석에서 적개심의 상징인 손톱을 세워 보지만 고작 때밖에 벗겨낼 수밖에 없고, 무언가 초월적인 대상을 하릴 없이 생각한다는 내용이 “아름다운 ‘세상에’ 어느 가족 줄거리[손익분기점(1997)]”를 계승하는 기층민중가다. “안성철씨”는 재봉틀 돌리는 소리를 고속 플레잉한 것 같은 아날로그 비트, 피자 배달부(고구마 권병준), 그의 전 애인, 늦게 온 피자에 투덜거리는 트랜스젠더 고객, 배달부를 해고하는 지점장의 역할 분담 드라마, 배달부의 처참한 하루를 ‘중계’하는 백현진, 상이한 비트가 켜켜이 쌓이는 구조로 [개, 럭키스타]의 “개”, “면도칼 계시록”, “수사반장”을 계승하는 어어부식 ‘대곡’이다. 충무로에서 그들이 남긴 족적을 뒤따라본 사람에게 [Tuna World]는 그간 접한 문화적, 음악적 활동 연혁을 절충적으로 반영한 결과물로 들린다. 도식화하면 음악적으로는 [개, 럭키스타]와 [4인용 식탁]을, 내러티브 구조상으로는 [손익분기점(1997)]과 [복수는 나의 것(OST, 2002)]을 절충한 인상이다. 사운드의 층위를 순차적으로 두텁게 만드는 것은 [Tuna World]의 일관된 조성 원칙이다. 장영규는 [4인용 식탁]의 황량한 미니멀리즘에서 보다 중첩된 사운드를 지향하는 듯, 소리와 비트를 파편적이고 비연속적으로 집적한다. 그 몰유기적인 텍스처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건 이물스러움이다. 그것은 백현진이 부르거나 읊조리며 기술하는 빈한한 삶들을 기괴한 공감각으로 통합해, 문학적인 의미망으로 트이게 한다. 즉, 물질우위의 시대에서 삶의 총체성을 상실한지 오래된 낙오자들의 일상을 냉혹한 촉감의 아이러니로 표상하는 것이다. 여기에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란 문학 용어를 빌어다 놔도 될까. [개, 럭키스타]가 그랬듯 [Tuna World]도 청자에게 온갖 해석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그 욕구는 분열증적이고 징후적이다. 아방가르드 음악 청취의 당연한 부대효과겠지만, 그래서 오정희, 백민석, 신경림 등의 학적 세계관을 운운해 보기도 했지만 어쩐지 석연치 않은 면이 있다. 장영규의 사운드는 캠프와 키치의 껍질을 벗겨낸 후 스스로를 참조한 것에 가깝다. ‘집적’이라고 했듯이, 과거 자신의 방법론을 물리적 절충, 변용 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백현진의 가사는 예의 자조의 아이덴티티를 유보하거나 상실하고 있다. [개, 럭키스타]에서 내향적 분열을 무기력하게 드러내던 그의 ‘독백’이 느긋하게 탈격화된 ‘중계’로 변하니 울림이 덜하다. “국산시민” 정도가 세계와 자기간의 비극적 인식을 드러내지만 “복수는 나의 것”의 농도 짙은 자기연민을 국민성이라는 거대서사의 틀로 부풀리고 있다는 의혹이 든다. “안성철씨”는 부박하고 지리멸렬한 삶의 유형들을 파편적으로 취사선택해 가능한한 불편한 형식으로 전달하지만 그 캐리커처같은 인물 유형들의 관습성 때문에 아주 효과적이지는 않다. 실연과 배달 사이에서 길을 잃은 청년, 규격화를 종용하는 지점장, 삶의 비의를 알지 못하는 여고생들, 피자 하나 때문에 종알대는 트렌스 젠더같은 고객의 드라마에서 발견되는 건 전형적인 비극의 내러티브다. 거기에서 그가 비극성을 구현하고 싶은 타자에 대해 성심은 있지만 충분히 농익지 않은 상상력을 드러내는데 그쳤다는 인상이다. 그래서, 반가우면서 아쉽다. 이는 물론 [Tuna World]가 싱글이라는 점에서, 과도기적이지만 어어부의 독자적 퀄리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 부분 유보되어야한다. 이 전제 하에 덧붙이자면 이것이 뒤이을 앨범의 ‘지배적인’ 지표가 되지 않기 바란다. 전위적이되 범속성을 잃지 않았던 이들이 자칫 자폐적 소재주의로 빠질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들어서다. 무엇보다 자조적 해학 안에서 실존의 네거티브한 에너지를 모색했던 그들의 노력이 고답적 컬트로 고착될까봐서다. 20040211 | 최세희 nutshelter@hotmail.com 6/10 수록곡 1. 국산시민 2. 기사식당 3. 안성철씨 관련 글 어어부 프로젝트 [21c New Hair] 리뷰 – vol.2/no.14 [20000716] 어어부 프로젝트 [개, 럭키 스타(Dog, Lucky Star)] 리뷰 – vol.3/no.1 [20010101] 어어부 프로젝트 [복수는 나의 것(OST)] 리뷰 – vol.4/no.9 [20020501] 관련 사이트 어어부 프로젝트 팬 사이트 http://uhuhboo.corea.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