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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 7th Issue – 괴수인디진/예당, 2004

 

 

강박적 여유

솔로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서태지는 고가 프라모델같은 음악을 들려주었다. 수백 번을 다듬은 듯한 소리는 잘 짜인 결을 과시했고 곡마다 박힌 재기는 빛났다. 그러나 이 정교하고 화려한 소리에는 건전지가 필요한 것 같았다. 솔로 2집을 발표했을 때 제기되었던 콘(Korn)과의 비교는, 따라서 불필요하다. 그 음반에는 콘에게 있는 야성적인 공격성이 부족했다. 리레코딩 음반은 그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음반은 서태지의 사운드에 대한 집착이 어디까지 갔는지를 잘 보여주었지만 여전히 지나치게 통제된 소리를 들려주었다.

서태지의 신보는 그 강박을 벗고자 한다는 인상을 준다. 간단히 말해 이 음반은 아이들 시절과 솔로 시절의 작업을 절충한다. 아이들 시절의 모습이란 밀크 쉐이크처럼 단순하고 달콤한 멜로디와 다양한 스타일의 배치이다. 솔로 시절의 모습이란 록 사운드이다. 신보에서 서태지는 자신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었던 예전의 방식과 현재 그를 사로잡고 있는 얼터너티브 메틀 사운드를 뒤섞는다. ‘감성 코어’라는 신조어는 때되면 찾아오는 ‘서태지 클리셰’라 생각하고 싶다.
“제킬박사와 하이드”의 업그레이드 버전 같은 “Heffy End”나 “로보트”, 펌킨스(Smashing Pumpkins) 스타일의 프로그레시브인 “0 (Zero)” 등은 시끄럽지만 잘 다듬어진 기타 사운드에 실은 멜로디로 매끄럽게 뇌세포를 공격한다. 간만의 서태지표 발라드인 “10월 4일”을 들으며 향수에 젖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드릴 앤 베이스(Drill N’ Bass)와 헤비 록 사운드를 깔끔하게 얽어내는 “Live Wire” 같은 곡은 소리의 배치에 대한 그의 기민한 감각이 살아있음을 들려준다.

그러나 음반에 그가 강조한 여유와 자연스러움은 없다. 산만한 구성과는 별개로 각 곡의 흐름은 철저히 제어되어 있다. 악기들과 효과음이 치고 빠지면서 청자의 정서를 파고드는 지점들은 과시적이다. 그래서 이 음반에서 찾게 되는 여유는 숲을 헤매다 우연히 발견한 공터에서 얻는 것이라기보다는 시립 공원에서 제공하는 여유에 더 가깝다. 즐거움(“Live Wire”)은 계산적이고 여유(“Heffy End”, “10월 4일”)는 강박적이며 분노와 낭만(“F.M Business”, “로보트”, “0 (Zero)”)은 인공적이다. 이런 점들은 어떤 종류의 음악(이를테면 테크노)에서는 미덕이 될 수도 있겠지만 ‘여유와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감성 코어’에는 걸맞아 뵈지 않는다.

결국 신보는 절충적인 것이 종종 빠지는 함정인 ‘노련한 답습’을 탐닉하는 데 그친다. 간주곡인 “DB”나 “Down”은 “Live Wire”와 “F.M Business”의 음악적 재료로 쓰이지만 그 자체로 들을 때 더 효과적인 무드를 빚어낸다(“하여가” 정도를 제외하면 곡의 구성력은 서태지의 장기가 아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언제나 그에 대해 일말의 ‘기대’가 생기는지는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면 기대를 품었던 지도 제법 되었다. 이 음반은 지금 현재 가장 잘 팔리는 음반이고, 더구나 헤비한 기타 록 음반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서태지의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그러나 음반이 그 영향력에 합당한 모습을 보여줬는지는 의심스럽다. “F.M Business”의 위풍당당한 일갈보다는 초라해 보인다. 20040201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4/10

* 이 리뷰는 [한겨레 21]에 실린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수록곡
1. Intro
2. Heffy End
3. Nothing
4. Victim
5. DB
6. Live Wire
7. 로보트
8. Down
9. 10월 4일
10. F.M Business
11. 0 (Zero)
12. Outro

관련 글
서태지 [서태지 2집] 리뷰 – vol.2/no.18 [20000916]

관련 영상

“Heffy End”

관련 사이트
서태지 공식 사이트
http://www.seotaij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