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201013755-bihaengsun

비행선 – Bihaengsun – 비행선, 2003

 

 

길이 끝나자 여행이 시작되다

헝가리 미학자 게오르그 루카치(Georg Lukacs)에 따르면 아이러니란 “규범적이고 창조적인 주체가 두 개의 주관성으로 분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이 명제를 윤색해보겠다. 이제 리뷰할 음반은 어떤 아이러니에 지배되고 있는데, 여기서 아이러니란 자의적이고 관습적인 비트가 두 개의 스타일로 분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의적이고 관습적인 비트란 대중 음악의 비트이다. 두 개의 스타일이란 록과 일렉트로니카이다. 비행선의 뒤늦은 데뷔 음반은(이 음반의 곡들은 대부분 1997년경에 작업한 것들이다) 비트라는 주체가 분열되면서 탄생한 두 개의 스타일에 대한 느슨한 탐구이다.

이 아이러니의 중심에는 예언이 있다. 즉 (첫대바기로 마주치는 곡인 “Ohm”의 보이스 샘플이기도 한) 변조된 음성으로 내뱉는 “You! Are going to Rock n’ Roll.” 음반의 형식은 이 예언의 주변으로 모여든다. 이 예언을 배반하거나 준수하는 것, 그것이 음반의 내용이다. “Ohm”에서 ‘당신은 로큰롤을 할 것이다’라는 예언과 클럽풍 하우스는 무람없이 뒤섞이고, 뒤섞인 소리의 결을 따라 훵키한 기타가 쉴새없이 깨작거린다. “너의 별자리는 뭐니?”에서는 힙합 브레이크비트가 하우스를 대체한다. 이 밴드의 ‘일렉트로니카’에 대한 전략은 비슷하다. 트립합, 힙합 브레이크비트, 하우스 등에서 따온 비트의 틈새에 와와 페달을 애용하는 훵키한 기타를 끼워넣는 것이다. 그렇다면 록은? 이 음반에서 록은 ‘노래’다. 백비트의 드럼 시퀀싱을 기본으로 기타와 베이스, 그리고 보컬을 얹은, 그러니까 “바다”나 “세상은 소나무” 같은 달콤한 노래.

음반의 목표는 이 두 스타일을 절충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예언은 실현되거나 혹은 실현되지 않겠지만, 어떤 결과건 예언의 지위는 유지된다(그것이 발설되었기 때문에). “미인”이나 “은하수” 같은 곡들은 그 절충이 잘 이루어진 곡이 될 것이다. 신중현의 기타 리프를 그대로 반복하면서(즉, 이건 루프다) 둔탁한 드럼 비트가 내리꽂히고 오묘한 효과음이 떠도는 가운데 ‘촌스러운’ 랩을 반복하는 “미인”은 일렉트로니카의 감성으로 록을 해석한 쪽이고, 유일하게 실제 드럼이 쓰인 “은하수”는 록 밴드의 편성으로 일렉트로니카의 형식미를 재현하려 하는 쪽이다. 다시 루카치를 따오면, 이러한 곡에서 “서로 어울리지 않는 여러 관계는, 상호 오해와 상호 엇갈림이 환상적으로 잘 정리되고 배열된 일종의 윤무(輪舞)와 같은 원환으로” 바뀌게 된다. 좀 더 중요한 점은 두 시도 모두 비트를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며, 따라서 다시 한 번, 비트는 이 음반의 주체이다. 아이러니가 긴장감을 유지할 때 음반도 생기를 얻는다.

그러나 동시에, 아이러니라는 음반의 대전제가 음반의 파열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예언을 무시하는 지점에서, 즉 전자음으로 ‘당신은 로큰롤을 할 것이다’라고 한 예언이 무력해지는 지점에서 발생한다(그것이 발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밴드는 록을 노래한다. 그런데 이들이 취한 일렉트로니카의 질료는 노래하지 않는다. 밴드는 여기서 종종 어긋난다. 전자음이 주가 될 때는 비트의 무한 루핑에 취해 노래를 떠내려보내고(“Ohm”), 노래에 몰입할 때는 전자음이 겉돈다(“바다”). 그렇지 않으면 전자음 속에서 노래하는데(“피부”), 이 때는 밴드의 음악이 아니다. “너의 별자리는 뭐니” 같은 곡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끌어온 형식은 트랜스지만 트랜스 특유의 ‘벗겨도 벗겨도 벗겨지지 않는’ 층진(layered) 음들의 변주는 결여되어 있다. 이 곡만이 아니라 음반의 전자음 대부분이 그리 층진 것처럼 들리지는 않는데, 그럼으로써 밴드는 일렉트로니카와 밴드 음악의 존재감 모두를 살리려 했던 것 같지만 아이러니의 긴장감이 사라지는 부분에서는 이러한 전략이 마치 다도를 즐기는 것 마냥 평온할 뿐이다. 그리고 평온한 아이러니란 한낮에 켜진 가로등, 혹은 눈밭을 뛰어 다니는 하얀 토끼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마지막 아이러니에 대해 언급하면서 마치자. 이 음반의 제목은 ‘비행선’도 ‘Aeroplane’도 아닌 ‘Bihaengsun’이다. 이는 ‘영미권에서 들여온 스타일들을 다루고 있는 한국의 대중음악’이라는 고전적인 갈등에 대한 표현일 수 있다. 김현주의 ‘부끄러워하는 듯한’ 랩이 그 표현의 일부일 수도 있다. “미인”과 같은 곡, 그리고 사운드의 ‘로파이한’ 질감과 ‘뜬금없는’ 가사 또한 (“Sunday Morning”은 삐삐밴드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그 표현의 일부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표현들은 자체의 응집력을 지니고자 하는 대신 사방으로 퍼지는 쪽을 택한다. 어떤 강박을 갖지 않겠다는 태도에서 기인할텐데, 아직은 강박을 갖지 않겠다는 태도에 대한 강박까지는 풀리지 않은 것이 비행선뿐만 아니라 여타의 ‘진지한’ 뮤지션들에게 던져진 숙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길(음반)은 끝났되 여행은 막 시작되었다. 아침은 아직 오지 않았다. 누가 아침까지 기다리게 될 것인가? 20040123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7/10

수록곡
1. Ohm (옴)
2. Sunday Morning
3. 바다
4. 비행선
5. 너의 별자리는 뭐니?
6. 미인
7. 피부
8. 세상은 소나무
9. 나른한 고양이
10. 은하수
11. 피부 (Another Version)
12. 상수도

관련 사이트
비행선 공식 홈페이지
http://www.bihaeng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