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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missionary Six – Spooked – Film Guerrero, 2003

 

 

달콤한 권태를 전해주는 언더그라운드 모던 포크

대중음악계는 미지의 소우주와도 같다. 특히 지명도가 떨어지고 정보가 한정되어 있는 인디 록 밴드들의 군집은 웬만한 관심과 열정이 아니면 들여다볼 엄두도 나지 않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그렇다.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음편들 속에서 저주받은 명작을 골라내는 일은 굽이치는 황톳물 속에서 한줌의 사금가루를 찾는 황망한 노력과도 같다. 나 역시 마찬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늘 헤매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엄청나게 방대하고 복잡한 인디 록 씬의 지형과 트렌드를 파악하고 나름대로 체계적인 감상을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레이블 단위로 접근해보는 것이다. 물론 배타적인 음악적 정체성이나 스타일을 고수하지 않는 레이블들이 더 많기 때문에 뚜렷한 색깔과 출중한 음악으로 똘똘 뭉친 밴드들을 거느린 독립 레이블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Portland)에 위치해 있는 아티스트 직영 레이블인 필름 게레로(Film Guerrero)를 알게 된 것은 운이 좋은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이 레이블에는 트랙커(Tracker), 그레이브스(The Graves), 노포크 앤 웨스턴(Norfolk & Western), 트랜스미셔너리 식스(Transmissionary Six) 등 언더그라운드 얼트 컨트리/포크 계열의 밴드들이 소속되어 있는데, 이들은 월코(Wilco)나 제이혹스(The Jayhawks), 카우보이 정키스(Cowboy Junkies) 등 씬을 대표하는 빅 밴드들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실험성이 가미된 개성적인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는 주목할 만한 세력이다.

이들 중에 특히 눈에 띄는 밴드는 시애틀 출신의 인디 포크 듀오 트랜스미셔너리 식스인데, 밴드의 멤버는 연인사이로 알려진 테리 모울러(Terri Moeller)와 폴 오스틴(Paul Austin)이다. 먼저 테리 모울러는 1980년대 중반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시애틀 출신의 관록의 컨트리 록 밴드 워크어바우츠(The Walkabouts)에서 노래와 드럼을 맡았던 여성 뮤지션이며, 폴은 보스턴의 루츠 록 밴드인 윌러드 그랜트 컨스피러시(Willard Grant Conspiracy)의 기타리스트였다. 이들의 경력만큼이나 밴드의 지역적 배경도 관심거리이다. 보스턴 출신인 폴이 밝히고 있듯이(물론 그가 시애틀로 이주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테리가 이 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겠고), 시애틀은 동부 대도시들보다는 작고 정치경제적으로 변방이지만 그 때문인지 뮤지션들간의 접촉과 교류가 활발하고 지나친 경쟁의식보다는 동료의식이 강한 좋은 풍토의 로컬 씬이 형성되어 있다. 또한 시애틀 그런지로 대표되는 얼터너티브 록뿐만이 아니라 포크, 컨트리, 재즈 등 다양한 스타일이 만개한 풍성한 음악 도시이다. 폴이 가지고 온 좀더 루치(rootsy)한 스타일의 동부 컨트리 록과 실험적 인디 록의 자유분방한 정신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이 녹아들어 있는 트랜스미셔너리 식스의 독특한 사운드는 이런 배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2002년에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 [Transmissionary Six]를 발표하였고 같은 해에 1집의 주요 곡들과 신곡을 묶은 합본 형태의 앨범 [Go Fast For Cheap]을 내놓으며 평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한정 발매로 천장을 찍어낸 데뷔 앨범은 어쿠스틱의 질감과 멜랑꼴리한 무드가 강한 소박한 모던 포크 사운드를 담고 있는데, 대략 요 라 텡고(Yo La Tengo)와 흡사하게 들리는 곡들도 포함되어 있다(“Mothball”의 건반 연주와 “Hollis & Applegate”의 슬라이드 기타 연주를 들어보라).

한편, 정규 2집 [Spooked] 역시 큰 변화는 없다. 먼저 무언가를 두드리는 듯 반복되는 둔탁한 타격음 위로 와우와우 이펙트를 머금은 끈적거리는 기타 음이 혼령처럼 스쳐 가는 “Wrong”은 다소 기괴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는 첫 인상이다. 이러한 느낌 때문에 일부에서는 [Twin Peaks : Fire Walk with Me](1992)와 같은 영화를 언급하며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류의 음악’이라는 엉뚱한 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앨범은 전반적으로 기괴한 선율이나 실험적 음향을 통한 긴장감보다는 소박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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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모울러의 연주 모습

풍성한 질감의 어쿠스틱 기타와 처연한 바이올린 연주가 중심이 되는 포크 발라드 “Piece of Cake”, 그리고 저음의 허스키 보이스로 노래하는 테리 모울러의 목소리와 역시 그녀의 아련한 하모니카 연주를 만끽할 수 있는 “Big Game Hunter”까지 들으면 자연스레 몸에서 힘이 빠져나감을 느낄 것이다. 그녀의 보컬은 글래머러스한 음량이나 현란한 기교, 공격적인 샤우팅 등과 모두 거리가 멀고, 보통 여성 싱어들에 비해 한 옥타브 정도 낮을 듯한 중성적인 저음을 구사한다. 즉 모던 포크라 하여 수전 베가(Suzanne Vega)와 같은 청아함을 기대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고, 그녀의 목소리는 애초에 노래에 관심이 없었던 과묵한 드러머답게 나태하면서도 다소 퇴폐적이다. 지하 클럽보다는 3류 살롱 무대에 더 어울릴 법한 그녀의 노래에서는 카우보이 정키스의 마고 티민스(Margo Timmins) 정도가 떠오르긴 하지만 아무튼 대단히 독특한 보이스 칼라인 것만은 확실하다.

이후의 곡들도 고집스럽도록 이완된 무드를 이어가고 있는데 이런 분위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지루할 만큼 축축 처지는 음악으로만 들릴지도 모르겠다. 물론 인내하고 듣다 보면, 케빈 석스(Kevin Suggs)의 페달 스틸 기타 세션이 부각되는 “Karaoke Star Suffocate”나 요 라 텡고의 “Green Arrow”에 보컬을 더한 것 같이 신비로운 권태로 가득한 “Almost Every Dog”, 약간은 경쾌한 분위기로 반전을 꾀하는 “Sermon on the Hatchback”, 민요풍의 구슬픈 바이올린 연주가 묘한 아름다움을 발하는 마지막 곡 “Dream a Little” 등 이색적인 트랙들도 만나게 된다. 특히 “Almost Every Dog”에서 에코와 딜레이가 걸린 기타 음은 영화 [바그다드 카페(Bagdad Cafe)](1988)에 등장했던 황량한 사막 풍경 같이 신비로우면서도 여름의 낮잠과도 같은 나른한 느낌을 전해준다.

[Spooked]는 수작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이완된 무드와 엇비슷한 사운드 톤을 고집하고 있고 “Clown Homicide”나 “Applegate Pt. 2″와 같은 짧은 음향실험도 신선한 자극이 되기보다는 어색한 곁가지 같다. 따라서 이 앨범은 딱 잘라 말할 음악적 성과나 독보적인 스타일의 정립으로 평가하기는 곤란하다. 물론 베이스 대신 바리톤(baritone) 기타로 중저음을 커버하거나 일렉트릭 기타를 거의 쓰지 않고 스틸 기타나 만돌린 등을 활용해 어쿠스틱한 질감을 극대화하는 참신한 연주를 선보이고 있으며, 정통 포크의 진부함과 아메리칸 루츠 음악의 완고한 복고 취향에서 벗어나 모던한 포크로의 윤색을 시도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이들만의 독보적인 선취물도 아닐 것이고 ‘얼터너티브’ 포크라는 간판에 너무 연연할 필요도 없다. 트랜스미셔너리 식스의 음악은 오랜만에 접하게 되는 포근하고 세련된 포크 음악이라는 것만으로도, 아니 테리 모울러라는 매력적인 싱어를 발견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을 테니 말이다. 20040125 | 장육 jyook@hitel.net

7/10

수록곡
1. Wrong
2. Piece of Cake
3. Big Game Hunter
4. Karaoke Star Suffocate
5. Jacques Cousteau
6. Almost Every Dog
7. Gawker’s Backup
8. The Tree Who Loved the Axe
9. Sermon on the Hatchback
10. Clown Homicide
11. Flight School
12. Applegate Pt. 2
13. Dream a Li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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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ious Artists [Sunset : False] 리뷰 – vol.6/no.3 [20040201]

관련 사이트
Transmissionary Six 공식 사이트
: 앨범 수록곡, 라이브 부틀렉 등을 내려받을 수 있다.
http://www.rodeosatellite.com
Film Guerrero 레이블의 Transmissionary Six 페이지
http://filmg.com/t6.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