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joint Ritual – A Lethal Dose of American Hatred – Sanctuary, 2003 잘 달리고, 잘 지르고, 그런데… 판테라(Pantera)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95년 다운(Down)을 시작으로 수많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벌이며 본업보다 곁가지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던 필립 안젤모(Philip Angelmo)는 마침내 판테라를 이탈하였고 밴드는 해체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판테라 멤버로서 필립 안젤모의 마지막 프로젝트이자 현재로선 그의 풀타임 밴드가 되는 것이 가장 확실시되는 밴드 슈퍼조인트 리추얼(Superjoint Ritual, 이하 SJR)의 두 번째 음반 [A Lethal Dose of American Hatred]는 지난 2003년 7월에 발매되었다. 판테라 해체라는 – 특히나 그 이유가 안젤모와 다른 멤버 사이의 음악적, 인간적 갈등 때문이라는 – 독특한 시기적 상황과 맞물려진 이 음반은 향후 안젤모의 음악적 방향을 점쳐볼 수 있는 본보기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이 바닥에서는 알아주는 선수들이 뭉친 SJR은 두 번째 음반에서도 큰 멤버 변동이 없는 상태다. 음반의 크레딧 상에 기타로 자리를 옮긴 크로우바(Crowbar) 출신의 기타리스트 케빈 본드(Kevin Bond)와 새로이 베이스를 잡게 된 행크 윌리엄스 3세(Hank Williams III), 두 사람 모두 이미 1집 발매 후에 가졌던 투어부터 SJR에 세션으로 참여한, 새로운 멤버라 말하기 힘든 인물들이다. 음악적으로도 전작과 큰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단적으로 말해 판테라의 면도칼로 자른 듯한 날카롭고 정교한 리프와 단단한 그루브와 달리 SJR은 적당히 뭉개지고 덩어리진 톤과 정신없이 달리는 연주로 점철되어 있다. 음반의 성격은 안젤모가 한 인터뷰에서 밝혔듯 올드 스쿨 하드코어(old school hardcore)와 쓰래쉬(thrash)의 절충점에 놓여있다. 전작 [Use Once and Destroy](2002)는 안젤모의 이야기대로 비슷한 시기에 발매되었던 다운의 두 번째 음반[Down II](2002)와 확연히 비교되는 짧고 순간적인 임팩트에 치중한 곡으로 채워져 있었다. 두 번째 음반도 기본적인 틀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지만 엄청나게 밀어붙이는 사이로 흐릿하게나마 다운에서 들을 수 있던 사운드가 드러나는 곡이 눈에 띈다는 점이 이목을 끈다. ‘1, 2, 1, 2, 3, 4!’를 외치며 시작되는 초강력 펑크 트랙, “Death Threat”, “The Horror”, “Waiting for the Turning Point” 등은 전작의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온 곡들이다. 크로-막스(Cro-Mags)나 블랙 플랙(Black Flag)의 초기작을 듣는 듯한 이들 트랙은 판테라와 SJR을 확실히 분리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미 십수 년 이상의 음악생활을 한 멤버들이 작정하고 만들어낸 거칠고 지저분한 기타 톤은 입자가 거칠면서도 청자의 귀를 잡아끄는 적당한 힘과 탄력을 가지고 있다. 리프 또한 참신한 맛은 없지만 (몸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머리 흔들기 적당한 소위 달리는(!) 리듬을 만들고 있다. 후기로 갈수록 극으로 달리는 보컬과 달리 정통 헤비 메탈의 면모를 강조하는 기타 연주를 들려주던 판테라와 정반대의 모습이다. 시종일관 달리는 연주 위에 얹혀지는 안젤모 특제 보컬은 기타 사운드와 함께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블랙 새버드(Balck Sabbath)의 영향력이 느껴지는, 혹은 다운의 사운드가 떠오르게 하는 곡들이 하드코어 펑크 성향의 곡들 사이사이에 배치되어 있다. 특히 귀 기울일 곡들은 후반부에 배치되어 있는데 “Stealing a Page or Two from Armed & Radical Pagans”, “Symbol of Nevermore”, “The Knife Rise”, 그리고 음반의 마무리이자 화끈한 “Absorbed”가 모두 놓치기 아까운 트랙이다. [The Great Southern Trendkill](1996)에서 들려주던 목을 갈아대는 듯한 샤우팅을 한 단계 더 죄어버린 “The Knife Rise”에서의 안젤모의 보컬은 압권이다. 또한 그의 섬뜩한 내레이션을 들을 수 있는 “Absorbed”에서는 읊조림과 그로울링(growling), 그리고 샤우팅을 아우르는 안젤모의 목소리만큼이나 수시로 들려지는 변박이 탄력 넘치게 펼쳐진다. 한편, “Symbol of Nevermore”의 초반부는 음반에서 가장 이질적이다. 다임벡의 기타 솔로가 빠진 판테라식 그루브라고 할까? 음반 전체를 통해 리듬 파트가 가장 빛나는 장면이다. 이러한 강약조절을 보여주는 트랙이 너무 뒤쪽으로만 배치된 것이 아닐까하는 아쉬움마저 남는다. 필립 안젤모, 그리고 판테라는 1990년대 익스트림 음악계의 트렌드를 만들고 이끌어 왔다. 또한 2000대 들어서는 최신 경향에 적대적인 자세를 유지해 왔다. 안젤모가 SJR의 신보에서 보여준 음악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계통의 신인들이 추구하는 음악과 맞닿아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킬스위치 인게이지(Killswitch Engage), 램 오브 갓(Lamb Of God), 섀도우스 폴(Shadows Fall) 등 M-TV가 다시 Headbanger’s Ball을 부활시키는 데 일조한 밴드들의 음악 또한 하드코어 펑크와 쓰래쉬에 골고루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안젤모는 SJR을 통해 판테라가 하지 못했던 음악을 계속 들려줄 것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SJR의 두 번째 음반은 양질의 내용물을 담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내용물은 트렌드를 선도하던 판테라와는 달리 젊은 밴드들이 시도하고 있는 메탈 코어를 뒤쫓는 모습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한 아쉬움이 남는다. 20040113 | 조일동 heavyjoe@hanmail.net 7/10 수록곡 1. Sickness 2. Waiting for the Turning Point 3. Dress Like a Target 4. The Destruction of a Person 5. Personal Insult 6. Never to Sit or Stand Again 7. Death Threat 8. Permanently 9. Stealing a Page or Two from Armed & Radical Pagans 10. Symbol of Nevermore 11. The Knife Rises 12. The Horror 13. Absorbed 관련 사이트 Superjoint Ritual 공식 사이트 http://www.superjointritual.com Philip Angelmo 공식 사이트 http://www.philangelm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