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선 버터플라이 – Time Table – Numb/Pastel Music, 2004 복고와 복구 형제, 목포로 가다 패션쇼에 나오는 옷들은 입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옷들은 일종의 아이디어 전시다. 기성복을 제작하는 회사가 그 아이디어를 받은 뒤, 거리에서 입고 다녀도 경찰이 체포하지 않을 수준으로 가공하는 것이다. 이상은 동대문 옷가게에서 창고 아르바이트를 했던 친구가 해준 말이다. 그래서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3호선 버터플라이의 신보에 대한 의견에 써먹기에는 적당해 보인다. “사랑은 어디에”의 34초와 4분 17초 지점에서 음을 어그러뜨려 오래된 LP를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효과를 자아내는 것은 음반에 담긴 수많은 아이디어 중 하나에 불과하다. 목포는 항구다? 아니, 목표는 복구다. 복고라 하지 않는 것은 이 음반이 어떤 특정한 시기의 스타일을 소환하는 것으로 자족하지 않는 까닭이다. 복구라 하면 무엇을 복구하겠다는 것일까. 복잡한 얘기는 미루고 “사랑은 어디에”를 들어보자. 콩가 소리를 닮은 비트와 파직거리는 LP 스크래칭 효과음으로 시작하는 이 곡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은 신중현 풍의 기타 프레이즈와 뒤를 받쳐주는 은은한 해먼드 오르간의 연주다. 곡의 무드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오정선의 [당신을 사랑해/님을 위한 노래/마음](1978)에 처음 실린) “마음”과 같은 ‘싸이키델릭 풍의 가요’까지 거슬러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스네어 드럼의 분명한 톤은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 영미권 포크 록 드럼의 또박또박한 걸음과 닮았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플루트 소리는 캄보 밴드의 정서를 전해준다. 적재적소에 간결하게 배치된 전자음은 이 소리가 디지털 시대에 녹음되고 있다는 모스 부호에 다름아니다. 즉 꼼꼼히 듣게 될 경우 이 곡은 ‘들린다’기보다는 ‘읽힌다’. 처음 곡을 들었을 때 기타 타브 악보집에 적혀 있는 지시기호인 ‘Slow Go Go’가 떠오른 것은 그런 면에서 이 글의 필자에게는 상징적이다. 꼼꼼히 듣지 않을 경우는? ‘옛것’의 어떤 정취를 현대적으로 재현하는 기분 좋은 ‘무드 음악’이다. 이 음반이 재현하는 시공간은 위에서 보듯 일관되지 않다. 문학평론 흉내를 내자면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의 실천에 가깝다. 산울림 풍의 유쾌한 싸이키델릭인 “삐뚤빼뚤 원래 그래”에서 성기완은 ‘울레 불레’라는 코러스를 넣는다. 1960년대 중반 키 보이스와 화이브 휭거스를 비롯한 수많은 뮤지션들이 리메이크했던 그 곡이다. 장필순 풍의 모던 포크 “스물 아홉, 문득”의 간주를 장식하는 건 무그 신서사이저의 인공적인 단선율이다. (‘해방 이후 최초의 팝 스타’라는) 김해송의 “청춘계급”을 덥(dub)의 방식으로 해체하고 트로트 가창을 위악적으로 덮어씌운 “김포 쌍나팔”은 동춘 서커스단을 어어부처럼 추억한다. 김창완 같은 가사를 엽전들 스타일의 ‘민요’ 기타 프레이즈와 ‘와 뚜 와리와리’라는 코러스로 덧칠한 “할머니가 피었어요” 또한 이 곡의 영토가 ‘한국적 공간’에 속한다는 대전제 외엔 소리들 사이의 특별한 연관을 찾기 어렵다. 김지연의 “찬바람이 불면”과 닿아 있는 “그림으로 가는 사람들”은 1980년대를 회상하자고 꼬드긴다. 한국통신 노동자 파업을 다룬 다큐멘터리 [이중의 적]에서 샘플을 따온 “죽여, 밟아, 묻어”는 교묘한 사운드 몽타주로 정치성과 탈정치성을 격렬하게 넘나든다. 트립합과 앰비언트의 기운을 담은 후반부의 곡들은 종횡무진하던 음반의 시간을 다시 동시대로 옮겨놓는다. 여기까지 읽고 ‘듣기 불편하겠다’거나 ‘이것저것 따왔지 독창적인 건 없다’는 느낌이 든다면 이 글을 쓰는 사람의 재간이 부족한 탓이다. 이 음반은 3호선의 음반 중 가장 밝고 세련된 음반이다. ‘실험적’인 “김포 쌍나팔”, “할머니가 피었어요”, “죽여, 밟아, 묻어”는 청자를 몰입시키는 그루브로 중심을 잡는다(베이스의 훵키한 연주는 주목할만하다). 해금을 맡은 휘루가 작곡에 참여한 “안녕, 나의 눈부신 비행기”와 “그녀에게”는 ‘모던하고 발랄’하다. 박진감 넘치는 베이스 라인이 곡을 장악하는 김상우 작곡의 “Shush”는 PJ 하비(PJ Harvey)를 연상시키는 남상아의 보컬과 더불어 인상적인 여운을 남긴다. 99 시절부터 성기완은 날것(raw)의 소리를 세련되게 배치하는 솜씨를 보였다. 신보는 성기완의 솜씨에 다른 멤버들의 고른 참여가 더해졌다는 인상이다(잠 출신의 김남윤은 성기완과 더불어 효율적으로 사운드를 통제한다). 정신없을 정도로 다양한 스타일들은 아슬아슬하게 일관성을 유지한다. “그녀에게”가 튀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지만. 그럼 독창성은 무슨 이유로 들먹이는가. 이제 ‘복구’라는 문제로 돌아가야겠다. 이 음반은 한국 대중음악의 유산들을 샘플로 삼아 그것을 지적으로 조합한다. ‘지적’이란 형용사는 이 자의식 강한 인디 록 밴드에게 어울리는 단어다. 키치와 복고의 비틀기는 지적이라기보다는 ‘감각적’이다. 이때 과거는 정지된 표상으로만 존재하고, 키치와 복고가 불러일으키는 헛웃음은 정지된 표상과 움직이는 현재의 괴리에서 나온다. 따라서 과거를 있는 그대로 추억하는 듯한 복고의 바람은 결국 과거에 대한 왜곡이 된다. 3호선의 신보는 이를 정면으로 돌파한다. 과거는 현재의 숨결 속에서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래서 과거는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로서의 과거라는 의미로 복구된다. ‘전통’에 대한 교과서적일 정도의 이런 긍정적 자세는 막상 누구도 취해보지 않았던 자세이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지난 음반에 대해 [weiv]의 평자는 “이들의 음악에서는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바로 이거다’라는 긍정적 제시를 발견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 음반을 그 지적에 대한 ‘변증법적인’ 대답으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아전인수라 불러도 할 말 없다). 다만 끝까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 음반이 밴드가 걸어온 ‘여정’의 끝인지 시작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작을 평한 리뷰어의 말을 재차 끌어쓰자면 ‘종합형’인지 ‘돌파형’인지 애매하다는 것이고, 좀 더 직접적으로 바꿔 말하면 이 음반이 3호선의 경력에서 절정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건 결국 즐길 줄 모르는 인간의 트집잡기다. 다른 이들은 행복한 새해인사같은 이 뛰어난 음반을 한 번 더 돌려듣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20040107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9/10 P.S. 오정선의 “마음”은 보 브루멜스(Beau Brummels)의 1965년도 히트곡 “Just A Little”을 번안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 음반에서 조합하는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 대한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의 표현을 빌면) 형이상학적 현기증을 불러일으킨다. 소환의 소환. 수록곡 1. 삐뚤빼뚤 원래 그래 2. 스물 아홉, 문득 3. 안녕, 나의 눈부신 비행기 4. 사랑은 어디에 5. Shush 6. 그림으로 가는 사람들 7. 할머니가 피었어요 8. 김포 쌍나팔 9. 그녀에게 10. 끝 11. 죽여 밟아 묻어 12. 인어 13. Weeping Yellow Moon 14. 말해요, 우리 15. 11:44 PM 16. (Hidden Track) 관련 글 3호선 버터플라이 [Self-titled Obssession] 리뷰 – vol.2/no.24 [20001216] 3호선 버터플라이 [Oh! Silence] 리뷰 – vol.4/no.4 [20020216] ‘식민지 록 음악인’의 정처없음의 자의식: 3호선 버터플라이의 성기완과의 인터뷰 – vol.4/no.4 [20020216] 관련 사이트 삼호선 버터플라이 공식 사이트 http://3b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