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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r Tet – Rounds – Domino, 2003

 

 

‘Analog’ Electronica

무라카미 류의 소설 [코인로커 베이비즈]를 보면 하시와 기쿠라는 두 소년이 나온다. 이 두 소년은 코인로커에 버려진 충격 때문에 정신질환을 겪는데, 이 증세를 극복하기 위해 이들에게 치료수단으로 ‘심장이 뛰는 소리’가 제시된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려진 두 소년에게 최고의 치료제는 부모의 체온을 청각화시킨 ‘심장 소리’였다. 어떤 영상이나 언어에도 안주할 수 없었던 하시와 기쿠를 안정시킨 것은 ‘소리’였고, 그들을 평안하게 해주었던 것은 심장 소리라는 형태를 빈 ‘음악’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들에겐 음악이었을까. 언어, 영상과 음악은 왜 달랐을까. 아마도 그 이유는 언어와 영상이 가시화된 영역, 즉 보이는 것, 규정할 수 있는 것만을 표현할 수 있는 반면, 음악은 그 태생부터가 비가시적인 영역, 규정할 수 없는 생의 뒷면을 표현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점은 하시와 기쿠가 ‘소리’를 택했듯, 우리가 음악을 듣는 이유를 잘 표현해준다. 나, 아니 당신도 그렇기 때문에 음악을 듣는 것은 아닐까. 짧은 음률, 소리 하나에 집중하는 나, 오늘도 헤드폰을 낀 채 방구석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 당신. 세상 아무 것도 믿지 않지만, 음악만은 신뢰하고 있지 않은가.

포 텟(Four Tet)은 ‘일렉트로닉’ 밴드 프리지(Fridge)의 구성원으로 알려진 키어랜 헵덴(Kieran Hebden)의 솔로 프로젝트다. 1999년에 발표한 데뷔작 [Dialogue]는 전자 음을 기반으로 악기의 실제 연주를 혼합해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준 일렉트로니카 음반이었다. 두 번째 정규 음반인 [Pause]도 그러한데, 이 음반에서는 타자치는 소리(“Glue of the World”), 해변가의 파도 소리(“Twenty Three”),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Parks”), 모기가 날아다니는 소리(“No More Mosquitoes”) 등을 채취하여 곡에 배치함으로써, 인공적인 색채가 강한 전자 음악을 일상적이면서 따뜻한 느낌이 나는 음악으로 전환했다.

포 텟의 세 번째 정규 음반인 [Rounds]도 전작들이 보여준 ‘아날로그’ 일렉트로니카를 충실히 구현한다. 심장이 뛰는 소리로 시작하는 “Hands”부터 그루비(groovy)한 리듬에 실려 작렬하는 비트가 돋보이는 “She Moves She”, 기타, 피아노, 탬버린, 소방울(cowbell)과 같은 ‘아날로그 악기’들의 실제 연주를 배경으로 미니멀리즘(minimalism)적인 일렉트로니카의 백미를 선보이는 “Unspoken”까지, 모든 곡들은 리듬의 탄력과 화성을 중시한 악곡 구성을 취하고 있다. 특히 화성의 비중은 본작에서 더욱 눈에 띈다. 기존의 전자 음악이 채취하거나 랩탑 컴퓨터로 창조한 소리를 비트에 실어 조합 또는 분열을 통해 탈주를 꿈꾸었다면, 포 텟은 점차 안온한 대지 위로 내려앉고 있다.

그래서, [Rounds]는 다분히 ‘뻔하게’ 들린다. 그러나 본작이 복고적인 클리셰 덩어리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현 일렉트로니카 씬을 조망해보면, [Rounds]는 씬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단초가 된다. 기존의 전자 음악이 사운드의 ‘질감’, ‘텍스처’, 채취한 소리의 ‘개성’에 비중을 뒀던 반면, 당대의 흐름을 형성한 포 텟, 매니토바(Manitoba), 포스탈 서비스(Postal Service), 아웃 허드(Out Hud), 랄리 푸나(Lali Puna), 노트위스트(Notwist) 등은 일렉트로니카가 가지고 있는 단점인 인공성, 건조함, 훅의 부재를 화성을 중시한 악곡구성, 디스코나 록과 같은 다른 음악형식의 차용을 통해 돌파하고 있는 중이고, 본작은 이러한 과정에서 이해해야 하는 작품이다.

물론 키어랜 헵덴의 작업을 마치 피그말리온의 기도가 석상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처럼 전자 음악에 생동하는 심장을 이식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일 것이다. 하지만 석상에 ‘직접’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 피그말리온의 능력이 아니라, 그의 기도였음을 생각해보면 이 음반 또한 작은 기원 정도는 되지 않을까. 음악일 수밖에 없는 ‘음악’에 대한 염원, 그 바램의 크기만큼 좋은 음악이 나오는 건 아니겠지만. 20040104 | 배찬재 focuface@hanmail.net

8/10

수록곡
1. Hands
2. She Moves She
3. First Thing
4. My Angel Rocks Back and Forth
5. Spirit Fingers
6. Unspoken
7. Chia
8. As Serious as Your Life
9. And They All Look Broken Hearted
10. Slow J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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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Four Tet 공식 사이트
http://www.fourte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