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Yo La Tengo, “Today Is The Day” (The Factory, Columbus, Ohio, 4/10) 창고를 임시로 뜯어고쳐 만든 공연장의 열악한 음향 조건, 음악을 들으러 왔는지 맥주나 마시며 친구와 떠들러 왔는지 시끄럽기만 했던 일부 관객들 탓에 불행히도 기대에 크게 못 미친 공연. 하지만 그 와중에도 산전수전 다 겪은 이 인디 록 베테랑들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자기 할 일에 충실했고, 나는 마침내 요 라 텡고의 공연을 보았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프롬 모뉴먼트 투 매시즈 9. From Monument To Masses, “Sharpshooter” (Kimo’s, San Francisco, California, 4/5)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의 인디-포스트 록 버전이라고 부르면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샌프란시스코의 다인종 밴드는 분노에 찬 랩 대신 위대한 양심적 지성 노엄 촘스키(Noam Chomsky)의 차분한 목소리를 샘플링해서 날로 부패해 가는 21세기의 미 제국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8. Mirah, “Monument” (KSDT radio, San Diego, California, 2/20) 우리 말의 여자 이름으로도 어울리는 ‘미라’에는 욤 토브 자이틀린 (Yom Tov Zeitlyn)이라는 긴 유태계 성씨가 딸려 있다. 포스트 릴리쓰 페어 세대에 속하는 여성 싱어 송라이터 중에서 그녀가 두각을 나타낸 데는 물론 니나 나스타샤(Nina Nastacia)나 이디쓰 프로스트(Edith Frost)와 마찬가지로 뛰어난 프로듀서 — 미라의 경우는 마이크로폰즈(the Microphones)의 필 엘브럼(Phil Elvrum) — 의 공로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런 기술적 지원 없이 기타만 갖고 승부한 이 라디오 실황이 들려주듯, 별 꾸밈없이 수수하게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가슴 한 구석을 파고드는 힘이 있다. 7. Mayda Del Valle and Lemon, “Tito Puente” (Def Poetry Jam On Broadway, Longacre Theater, New York, 1/1) 소울의 시대 이면에 모타운 레코드의 사장 배리 고디 주니어(Barry Gordy Jr.)가 버티고 있었다면. 힙합의 시대인 오늘날 그에 상당하는 인물로 데프 잼의 창립자 러셀 시먼즈(Russell Simmons)가 운위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능수능란한 사업가인 동시에 문화적 선각자(visionary)로 인정받는 그는 랩을 포함하여 다양한 구비(口碑) 문화의 전통을 발굴 및 보급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데프 코미디 잼(Def Comedy Jam)을 통해 언더그라운드의 흑인 스탠드 업 코믹(stand-up comic: 우리 식 표현으로는 ‘개그맨’) 들에게 이목을 집중시킨 데 이어 시먼즈가 눈길을 돌린 곳은 시인들이 어슬렁거리는 대학가 주변이나 예술촌 카페였다. 글보다는 주로 말로 승부하는 이 시인들의 놀이판은 주로 ‘낭송회’나 슬램(slam)이라 불리는 경연대회 정도가 고작이었는데, 시먼즈는 이들을 후미진 곳에서 끌어내어 스포트라이트 휘황찬란한 브로드웨이 쇼 무대에 세우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이어진 데프 포이트리 잼은 ‘브로드웨이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토니 상까지 수상하면서 승승장구를 거두었다. 도시 밖에서 온 관광객들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여느 브로드웨이 쇼와는 달리 객석은 새해 초 휴일을 틈타 온 듯한 흑인 청소년들과 기타 다양한 얼굴색을 한 청중들로 채워져 있었고, 무대에 오른 아홉 명의 시인들 또한 복잡한 인종 구성과 출신 배경을 보여주면서 때론 단독으로, 또 때로는 한데 어울려 저마다 갈고 닦아온 말솜씨를 뽐냈다. 막간을 매끄럽게 이어주는 DJ의 판돌림이 연신 흥을 돋구는 가운데, 이들이 읊어내는 말 속에는 냉정하고 준열한 사회 비판의 메시지, 각자의 인종적,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생하게 약동하는 리듬과 에너지가 충만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마이다와 레먼, 두 남녀 라티노 시인이 살사 음악의 거목 티토 푸엔테에게 바친 노래는 말들이 어떻게 살아 춤출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6. Tujiko Noriko, “Fly” (La Ginguiette Pirate, Paris, France, 9/7) 도쿄의 디지털 디바 투지코 노리코에게 브욕(Bjork)과의 비교는 불가피한 통과의례가 되어 버렸고, 일본 음악계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녀로부터 아방가르드 팝 가수 하코(Haco)의 영향을 찾아내기도 한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메고(Mego) 레이블을 통해 국제 진출을 하고 주로 유럽 쪽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은 그녀의 복잡하고 파편적인 음악이 그쪽의 정서에 잘 맞아서일까. 벨 앤 세바스천 5. Belle & Sebastian, “Step Into My Office, Baby” (Mershon Auditorium, Columbus, 11/6) ‘트위 팝'(twee pop)이란 말이 누구에게보다도 잘 어울리는 이 한 무더기의 귀여운 친구들은 연신 발랄함을 잃지 않는 즐거운 무대를 제공했다. 밴드 외에 동원된 현악 4 중주단의 뒷받침으로 라이브 사운드는 음반 못지 않게 풍성했고, 직접 들으면 좀 덜 살갑지 않을까 싶기도 했던 스튜어트 머독(Stuart Murdoch)의 목소리도 헤드폰을 끼고 들을 때와 별 차이 없이 귓가에 속삭이듯 다가왔다. 객석으로 뛰어내려가서는 열렬한 반응을 보인 한 관객을 건져 올려 무대 위에서 같이 고고춤을 추기도 하고, 옛 노래에 목말라하는 이들을 위해 신곡들 틈에 “Photo Jenny”를 끼워 넣기도 하는 등, 팬 서비스에 정성을 쏟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다만 한 가지 거슬린 점이 있었다면, 사진에도 나와 있다시피 낮게 설치된 일부 조명이 객석으로 강한 불빛을 자주 쏟아 부어서 눈이 좀 아팠다는 것 정도. 4. Tortoise, “Magnet Pulls Through” (Metro, Chicago, 1/11) 토터즈 음악의 묘는 상당 부분 그 정밀한 집행력(execution)에 있는데, 이 점은 라이브 공연에서도 잘 드러난다. 다시 말해 좀처럼 흐트러짐 없이 아주 잘 짜여 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녹음된 음악을 듣는 것 이상의 덤을 얹어주는 데 다소 인색한 감이 있는데, 그들의 음악이 즉흥성을 본질로 하는 재즈에 크게 빚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좀 모순적으로 다가온다. 하기야 정말로 자유롭게 떠다니는 즉흥 연주를 들으려면 아트 앙상블 오브 시카고(Art Ensemble Of Chicago)의 후예를 찾아 시카고의 재즈 클럽들을 돌아다녀야 할 테지만. 3. Kid Koala, “Stompin’ At Le Savoi” (the Short Attention Span Tour, Wexner Center, Columbus, 10/10) 본명이 에릭 산(Eric San)인 DJ 키드 코알라에게 ‘신동’이라는 명칭이 종종 따라붙는 것은 일단 혀를 내두르게끔 하는 그의 놀라운 스크래칭 기예(技藝) 때문이겠지만, 만년 어린애같아 보이는 생김새나 부업으로 만화를 그리는 일 또한 한몫 했음이 분명하다. 그런 그가 ‘나이트클럽에서 공연하는 데 지쳐서’ 고안해낸 올해의 순회공연은 기발한 착상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선 입구에서 만화 캐릭터들이 그려진 카드 한 장과 크레용 한 도막씩을 나눠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공연장 안에 들어서면 학교 식당 같은 데서 쓰이는 긴 테이블과 접는 의자들을 몇 개의 열로 늘어놓고 입장하는 관객들을 줄줄이 앉게 하는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나중에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이지만, 이 모두는 공연 막간에 신보 CD와 만화책을 경품으로 걸고 열린 빙고(bingo) 게임에 쓰일 준비물들이었다. 공연 도중 갑자기 낡아빠진 환등기를 끄집어내어 자신이 캐나다의 맥길(McGill) 대학에서 아동 교육을 공부하던 시절 만들었다는 슬라이드 몇 장을 스크린에 비춰주기도 하고, 자신의 음악을 사운드트랙으로 사용한 애니메이션 작가 몽크무스(Monkmus)의 단편들을 상영하기도 하는 등, 키드 코알라의 공연은 한편의 ‘성인을 위한 아동극’을 보는 느낌이었다. 천진함과 잔혹함 사이에 걸쳐 있는 몽크무스의 영상은 어렴풋이나마 한국 만화가 이우일의 스타일을 떠올리게 했고, 다른 두 명의 필리핀계 DJ들과 함께 여덟 대의 턴테이블 사이를 뛰어다니며 벌이는 키드 코알라의 경쾌무비한 손놀림은 마치 무술영화에 나오는 초식 전개를 보는 것만 같았다. 이들 DJ 3인조는 ‘턴테이블-드럼’, ‘턴테이블-베이스’ 등 각각 특정한 악기 파트를 ‘연주’하는 일종의 턴테이블 밴드를 구성했고, “Basin Street Blues”에서는 루이 암스트롱의 트럼펫이 키드 코알라의 손끝을 통해 되살아나기도 했다. 이 모든 다양함과 ‘산만함’은 공연의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집중력이 떨어지는 이들을 배려한 것이었을까. 공연 내내 나의 주의를 놓치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2. Gotan Project and Yann Tiersen, “Santa Maria (Del Buenos Ayre)” (Music Planet 2nite, Arte TV, 11/19/2002) 올들어 한국에도 다녀갔다고 하는 고탄 프로젝트는 프랑스의 첨단 전자음악가들과 아르헨티나의 전통 탱고 연주자들이 의기투합해서 만들어낸 21세기형 변종 음악 집단이다. 2001년 처음 발매되었지만 북미에는 2년이 지나서야 수입된 이들의 데뷔 앨범 [La Revancha Del Tango]는 마치 아스토르 피아졸라와 DJ 섀도우를 결합시킨 듯한 트립-탱고-합을 선보였다. 전성기를 구가중인 프랑스의 영화음악가 얀 티에르센에 대해서는 [weiv]에서도 이미 소개된 바 있다. 이들의 협연은 프랑스-독일 합작 문화예술 전문 TV 채널 Arte의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성사되었는데, 엄밀히 따지면 작년 말에 이뤄진 공연이지만 그렇다고 빼놓기엔 너무 아까운 기회인지라 이 자리에 슬그머니 끼워넣어 본다. 매니토바 1-a. Manitoba, “Twins” (Wexner Center, 5/24) 1-b. Four Tet, “She Moves She” (Wexner Center, 5/24) ‘떼공연’의 장점이라면 단연 표값에 비해 건지는 게 많다는 것이고, 단점이라면 종종 시간을 너무 잡아먹어서 뒤로 가면 갈수록 몸도 귀도 지친다는 데 있다. 그래도 일렉트로닉-록-힙합이 한데 엉킨 첨단 인디 음악의 세 유망주가 함께 한 이 공연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가격 대 성능비’로만 쳐도 올해 본 것 중 가장 남는 공연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첫 타자인 매니토바는 기본적으로 댄 스네이쓰(Dan Snaith)의 원 맨 밴드로 알려져 있지만, 무대에 오른 것은 유치찬란한 동물 가면을 쓴 세 명의 청년들이었다. 그런 기이한 분장과 무대 뒷면에 스크린을 걸어놓고 보여준 빈티나는 저예산 비디오는 ‘싸구려판 플레이밍 립스'(poor man’s Flaming Lips)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작년의 플레이밍 립스 공연을 본뜬 느낌이었다. 그러나 일견 허술해 보이는 외양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플레이밍 립스에 결코 못지 않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아주 로킹한 쇼를 선사해 주었다. 상당 부분 미리 녹음된 사운드를 재생하는 것으로 들렸지만 무대에 선 세 명은 돌아가면서 드럼, 기타, 건반을 열심히 연주했고, 곡에 따라서 두 대의 드럼 세트를 난타하거나 장난감 같은 멜로디카를 힘껏 불어대는 등 아주 신명나는 한판을 벌였다. 매니토바의 열광에 뒤이어 ‘two turntables and a microphone’ 대신 두 대의 랩탑 컴퓨터와 오디오 콘트롤러 하나를 테이블 위에 얹어놓고 등장한 것은 포 텟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키어랜 헵덴(Kieran Hebden). 차분하고 예리하게 정곡을 찌르면서 그루브를 놓치지 않는 그의 컴퓨터 음악은 음반에서 들었던 것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컴퓨터를 앞에 놓고 공연하는 다른 음악인들이 음료수를 홀짝홀짝 마시거나 청중 또는 공연 스탭과 잡담을 나누는 등 느슨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이거 공연하는 거야, 아니면 그냥 미리 프로그램 된 거 틀어주며 노닥거리는 거야’하는 의아심이 들곤 했던 데 비해, 열심히 스크린을 들여다보며 콘트롤러를 재빠르게 조작해나가는 헵덴의 모습은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조명 속에서 트랙볼을 건드릴 때마다 붉은 램프를 번쩍이는 콘트롤러의 시각적 효과도 볼만했지만, 음악만큼이나 흥미를 끌었던 것은 플로어에서 몰아지경의 춤을 보여준 두 명의 관객-댄서였다. 특히 그 중 한 명은 오체투지(五體投地)에 이어 마치 지네나 전갈처럼 날렵하게 바닥을 기어다니는 고난도의 춤사위로 주위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마지막 헤드라이닝을 맡은 스캇 헤런 (Scott Herren), 즉 프리퓨즈 73은 힙합 프로듀서로서의 경력에 걸맞게 턴테이블리스트 DJ를 대동하고 나왔다. 삐까번쩍한 야마하 건반과 콘솔, 턴테이블 사이를 오가면서 플래스틱 우유상자 한가득 가져온 비닐 음반들을 다 한번씩 틀어보고야 말겠다는 듯 쉼없이 이어지는 프리퓨즈 73의 DJ 세트는 빈틈없이 탄탄했지만, 어느 새 세 시간을 더 넘겨 계속된 공격적인 사운드에 지쳐버린 귀 덕분에 훌륭한 공연을 안티클라이맥스(anticlimax)로 마감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허나 어쩌랴, 보람과 희망을 안고 시작한 2003년 한 해도 실망스럽게 접혀들어가고 있는 마당에. 나쁜 일들은 묻어버리고 좋았던 순간들을 되새기면서, 오는 새해에는 좀더 나은 세상에서 좀더 좋은 음악들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20031211 | 김필호 antioedip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