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228010141-deerhoof

Deerhoof – Apple O’ – 5 Rue Christine/Kill Rock Stars, 2003

 

 

진지함에 대한 강박에서 탈피하다

익스페리멘탈(experimental)은 난해하다고 여겨지곤 한다. 이러한 견해에 반해 소닉 유쓰(Sonic Youth)의 멤버인 서스턴 무어(Thurston Moore)의 “우리는 (음악의) 정서적 가치를 좀더 의식하고 싶었다. 우린 항상 그런 식으로 순수하게 보이고 싶었다. 리뷰들, 특히 젊은 평자들이 쓴 리뷰를 보면 대개 그들은 우리가 냉소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날 놀라게 한다. 그것은 내가 느끼기에 음악 속에 어떤 진정한 자리도 차지하지 못한 예술적 기질이다”라는 발언은 비평자가 ‘해석’의 관점에서 창작자와 창작물을 사유할 때 나타나곤 하는 맹점을 지적한 부분일 것이다. 이와 같이 전위 음악이라는 분야에서 과다 해석이 난무하게 된 것은 이것이 관습적인 악곡형식을 거부하거나 혹은 무정형의 틀을 선호해 온 이들에게 붙이던 칭호였다는 ‘선례’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음악을 만들어온 존 케이지(John Cage),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 같은 인물들의 관점이 ‘혁신’에 중심을 두어 왔던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블랙 다이스(Black Dice)같은 밴드들이 소리의 실험과 축조에 주력하면서 기존의 실험주의 록 전선을 이어나가고 있다면, 반대로 서스턴 무어의 말처럼 아방가르드의 범주에 속하면서도 소리의 배치에서 복잡한 구성보다 단순함을 택하며 순수한 정서적 가치를 중시하는 밴드도 있다.

아마도 그 예로는 디어후프(Deerhoof)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생소한 이들을 위해 간략히 소개를 하자면 디어후프는 기타리스트 롭 피스크(Rob Fisk)와 드러머 겸 키보디스트인 그렉 사니어(Greg Saunier) 2인 체제로 1994년에 결성되었다. 이후 보컬과 베이스를 담당하는 사토미 마쓰자키(Satomi Matsuzaki)가 가입하여 1997년 첫 번째 정규 음반인 [The Man, The King, The Girl]을 발표하였다. 두 번째 정규 음반인 [Holdy Paws]를 발매한 직후 창단 멤버인 롭 피스크는 탈퇴하였고, 그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디어후프는 새 기타리스트인 존 디트리히(John Dieterich)를 영입하였다. 데뷔 음반은 노 웨이브(no wave)의 영향을 받아 마치 고철을 긁어대는 듯한 소음으로 가득 찬 사운드를 선보였고, 그 뒤로는 노이즈와 쟁글 팝 그리고 공격적인 디스토션과 드러밍을 혼합한 음반을 발표해 왔다. 이러한 성향을 집대성한 음반이 2002년에 내놓은 [Reveille]이다. 디어후프는 이 음반에서 비교적 기승전결이 뚜렷한 악곡 구성을 바탕으로 빠른 템포의 리프와 드러밍으로 날선 공격성을 드러낸 다음 재즈적인 즉흥성에 노이즈와 효과음을 덧칠하여 좋은 호응을 이끌어 냈다.

2003년에 발매한 [Apple O’]는 전작인 [Reveille]의 특성을 이어받은 작품이다. 여전히 간결하면서 뚜렷한 멜로디 라인을 선보이며, 이에 편승하는 사토미의 아이같이 청아한 목소리도 변함 없다. 노이즈와 디스토션이 주는 건조하면서 날카로운 이미지와 사토미의 목소리가 생성하는 유아적이면서 몽환적인 울림은 곡에 약동하는 생명력을 불어넣으며(“Dummy Discards a Heart”, “Heart Failure”, “Flower”, “Apple Bomb” “Panda Panda Panda”), 피아노를 사용하거나(“L’ Amour Stories”) 어쿠스틱한 트랙을 배치함으로써(“Adam+Eve Connection”, “Blue Cash”) 음반의 건조함도 중화시키고 있다. 물론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Apple O’]가 [Reveille]와 달라진 부분은 전작이 노이즈 록(noise rock)에 효과음, 신시사이저, 재즈적인 즉흥성을 첨가함으로써 팝적인 토대 하에 그들의 실험적 시도를 집대성했다면, 본작은 재즈적 요소가 거의 사라져버렸고 사운드 텍스처가 더 간결해졌으며, 그에 따라 사토미의 목소리와 가사가 주는 단순하면서 순수한 이미지가 강화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평가하자면 [Apple O’]는 일관적인 사운드의 색채를 유지하면서도 식상함을 탈피하고 있는 좋은 음반이다. 덧붙여 음반의 특성인 유아적인 순수함은 기존 전위 음악의 무게 잡는 모습에 비해 신선하게 느껴진다.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나 요시모토 나라(Yoshimoto Nara)의 작품에서 포착되는 팬시용품처럼 앙증맞은, 하지만 가볍다고 치부할 작품은 아닌, 그런 종류의 감각이 본 음반에서는 발현하고 있다. 진지함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팝과 친밀한 현대 예술의 한 경향을 [Apple O’]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본 음반에 지나친 해석을 가하는 것은 지독한 농담에 가깝다. 수전 손택이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지적한 것처럼 때로 어떤 창작물은 순수하게 ‘느껴야’ 하는 법이다. 자, 여러분도 직접 경험하시라. 당신에게 [Apple O’]를 권한다. 20031226 | 배찬재 focuface@hanmail.net

8/10

수록곡
1. Dummy Discards a Heart
2. Heart Failure
3. Sealed With a Kiss
4. Flower
5. My Diamond Star Car
6. Apple Bomb
7. The Forbidden Fruits
8. L’ Amour Stories
9. Dinner for Two
10. Panda Panda Panda
11. Hayley and Homer
12. Adam+Eve Connection
13. Blue Cash

관련 사이트
Kill Rock Stars 레이블의 Deerhoof 페이지
http://deerhoof.killrockstar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