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228031208-lowlights

Lowlights – Lowlights – Darla, 2003

 

 

시궁창 같은 지상에 낮게 드리운 또 하나의 미광

“우리 모두는 시궁창에서 살고 있고 그중 몇몇은 별을 쳐다보고 있다”라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한 작가는 말했다. 한 때 좋아했던 작가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망각증을 한탄하며 무언가에 이끌리듯 나는 올해 마지막으로 리뷰할 앨범을 꺼내들었다. 로우라이츠(Lowlights). 직역하면 ‘낮은 빛’ 정도가 되겠지만 이런 영어 표현은 없다. 인디 뮤지션의 하이라이트 없는 삶을 암시하는 듯한 풋풋하면서도 재기 넘치는 이 이름의 주인공은 캘리포니아주 험볼트 카운티(Humbolt County) 태생의 대미언 리(Dameon Lee)이다. 끔찍할 정도로 무명 뮤지션인 대미언은 최근 각광받고 있는 신즈(The Shins)를 배출한 뉴멕시코(New Mexico)주에서 스케어드 오브 샤카(Scared of Chaka) 등의 펑크/파워 팝 밴드를 돌며 음악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솔로 독립 이후 로우라이츠의 이름으로는 도노반(Donovan) 헌정 음반인 [A Gift From a Garden to a Flower: A Tribute to Donovan(2002)]에 “Catch the Wind” 커버 곡으로 참여한 게 전부이다.

“나는 레코드점도 없는 시골에서 아버지가 모아놓은 레너드 코언(Leonard Cohen)이나 폴 사이먼(Paul Simon) 등의 음반을 들었고 펑크 밴드에 몸담고 있을 때도 몰래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을 들었다”는 고백에서 드러나듯 그가 밴드 활동을 청산한 동기는 자신의 음악적 취향을 억누르고 엉뚱한 연주를 해야하는 것에 대한 환멸이었던 듯 하다. 한편, 특이한 것은 그가 컨트리로 스피리추얼라이즈드(Spiritualized)의 심오한 사운드 스케이프를 구현하겠다는 야심찬 출사표를 던졌다는 점이다. 컨트리 웨스턴 스피리추얼라이즈드? 한 마디로 이 앨범은 그 같은 천상의 기운 가득한 실험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음악적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고 볼 것까지는 없다. 오히려 로우라이츠가 토해놓은 소박한 음률들 앞에서 그러한 수사는 가벼운 농담처럼 쉬 잊혀질 수 있으니 말이다.

[Lowlights]는 시종일관 절제된 연주와 가라앉은 무드를 유지하고 있지만 타이드(The Tyde)와 같이 싸이키델릭의 영향이 남아 있는 변형된 얼트 컨트리 사운드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여기에 로우(Low)를 연상시키는 느리고 신비스러운 슬로코어의 느낌과 요 라 텡고(Yo La Tengo)식의 혼성 보컬 하모니, 가끔씩 등장하는 노이즈의 혼용도 이 앨범의 색채를 규정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런 다채로운 구성미는 더스틴 레스크(Dustin Reske)라는 인물의 손길 덕인데, 그는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Sacramento) 출신의 노이즈 록 밴드 로켓십(Rocketship)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역시 이 지역의 대표적인 트위 팝(twee pop) 밴드 소프티스(Softies)와도 작업하는 등 로컬 인디 씬의 리더격인 인물로서 이 앨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첫 곡인 “In the Distance”는 영롱한 기타 아르페지오로 시작하여 느리고 음울한 슬로코어 풍 연주를 이어가는 곡인데, 에코가 강하게 걸린 사운드 톤은 공명감으로 충만하고, 특히 가볍게 파열하는 기타 디스토션과 아련한 피드 백 노이즈 사이에서 블루스의 질감으로 길게 흐느끼는(whining) 기타 솔로가 부각되고 있다. “In the Distance”의 구슬픈 무드에 변화를 가하며 가볍게 찰랑거리는 “Wave Goodbye”에는 이 앨범에서 빈번히 등장하며 사운드의 골격을 형성하는 두 요소인 페달 스틸 기타 연주와 백 보컬리스트 안젤라 브라운(Angela Brown)과의 보컬 하모니가 등장하고 있다. 한편, “Brown Eyes” 역시 정처 없이 부유하는 듯한 페달 스틸 기타 음과 함께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트럼펫 연주가 극한의 미감을 발하고 있으며, 기차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Gare du Nord”의 경우에는 어쿠스틱 슬라이드 기타와 올갠 음이 처연한 단조의 무드를 조성하고 있다.

더욱 소박한 어쿠스틱의 질감이 강조되고 있는 앨범의 후반부는 안젤라 브라운의 고즈넉한 솔로 “Wheelbarrow”로 시작해 앨범의 백미인 “How Does It Feel?”로 끝을 맺고 있다. 특히 “How Does It Feel?”과 같은 곡은 평범한 포크 발라드로 끝나는 듯 하지만, 길게 폐곡선을 그리는 듯한 페달 스틸 기타 음과 코러스 부분을 장식하는 보컬 하모니가 완벽하게 조응하고 있으며 곡의 말미에 드럼 비트의 필인(fill-in)과 함께 등장하는 디스토션을 먹은 기타 파열음이 절묘한 극치감을 선사하고 있다.

대미언은 “어떻게 느껴지는지 말해 달라(tell me how does it feel)”고 한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침묵이며 그저 방구석 한켠에 음반을 밀어두고 잠을 청할 것이다. 그리고는 꿈속에서 혼잣말로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시궁창 같은 지상에 낮에 드리워져 점멸하는 아름다운 음의 하이라이트를 보았노라고. 20031226 | 장육 jyook@hitel.net

7/10

수록곡
1. In the Distance
2. Wave Goodbye
3. Dim Stars
4. Brown Eyes
5. Restless and Young
6. Gare du Nord
7. Last and Alone
8. Travelogue
9. Wheelbarrow
10. Too Late
11. Flowers (In Her Hair)
12. How Does It Feel?

관련 사이트
Lowlights 공식 사이트
http://www.thelowligh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