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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losions In The Sky – Earth Is Not A Cold Dead Place – Temporary Residence, 2003

 

 

유유히 흐르는 멜로드라마

파괴와 어둠은 아수라 백작만의 장기가 아니다. 갓스피드 유! 블랙 엠퍼러(Godspeed You! Black Emperor, 이하 GYBE)와 모과이(Mogwai) 이후 기타 인스트루먼틀 록 밴드에게도 파괴와 어둠은 창조의 영감이 되었다. 톨스토이가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대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그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고 했다지만 이 바닥에서 어두운 음악의 모습은 대개 비슷하다. 정형화된 양식미 속에서 감탄은 할지언정 신선함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이태리의 전설적인 프로그레시브 아트 록 밴드의 숨겨진 명반’ 앞에서 갖는 감정이 그렇듯이.

텍사스 주 오스틴 출신의 4인조 밴드, 익스플로젼스 인 더 스카이(Explosions In The Sky, 이하 EITS)는 2001년 [Those Who Tell The Truth Shall Die, Those Who Tell The Truth Shall Live Forever]로 데뷔했다. 밴드명부터 음반 제목에 커버까지, 누가 봐도 뭐하는 팀인지 알 수 있었던 이들의 데뷔작은 발매 당시 GYBE와 모과이의 적자로 평가받았는데, 헤비 메틀 스타일의 서사적(epic) 점층 구조와 광포한 기타의 울부짖음 같은 기타 인스트루먼틀 록의 전형적인 요소를 솜씨 좋게 구현했고, 여러 매체에서 그 해의 음반 중 하나로 뽑히기도 했다. 더군다나 이 음반에는 청자를 기쁘게 할 우수어린 멜로디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멜로드라마적’이라는 평가는 여기서 나왔을 것이다.

심전도기의 삑삑거리는 소리를 흉내내는 기타와 심장박동소리를 따라하는 킥 드럼으로 시작하는 “First Breath After Coma”는 복잡하지만 이해하기 쉬운, 음반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곡이다. 뒤에 더 얘기하겠지만 이 킥 드럼 박동은 곡 전체, 나아가 음반 전체의 ‘컨셉’과도 같다. 기타는 맑고 따스한 선율을 연주하고, 안개처럼 퍼지는 심벌은 분위기를 조금씩 고조시킨다. 중반부에 들어서면 딜레이를 건 트윈 기타의 인터플레이가 반짝이는 선율을 뿌려대는 가운데 행진곡풍의 드럼 연주와 묵직한 베이스의 울림, 눈썰매 종(sleigh bell)소리 등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무드의 변화는 자주 일어나지만 단절적이지 않으며, 눈앞에 걸린 천을 하나씩 걷어올리듯 부드럽게 변한다. 조금만 더 걷어올리면 푸른 하늘이라도 보일 것 같은데, 곡의 화성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기대감은 유예된다.

나머지 곡들도 비슷하다고 말하는 것은 설명하기 귀찮아서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곡들은 GYBE 류의 장엄한 서사 구조나 토오터스(Tortoise) 류의 확장 분산되는 복잡한 양식미를 차용하는 대신 귀를 사로잡는 기타 멜로디를 미니멀하게 변주시키면서 진행된다. 미니멀리즘이라고는 하지만 반복이라기보다는 흐름(flux)에 가깝다. “Six Days At The Bottom Of The Ocean”같은 곡에서 들리는 조바꿈은 긴장감을 유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부드럽게 건너가기 위한 워밍업 같은 것이다. “Memorial”의 끝 부분에 나오는 모과이풍의 기타 노이즈도 ‘억눌린 감정의 분출’보다는 터진 송유관에서 솟는 불기둥에 더 가깝다. 음반의 본질적인 부분은 아니라는 소리다. 그럼 본질은?

그것은 아마, 삶에 대한 어떤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음반 전체에 걸쳐 울려 퍼지는 심장박동 킥 드럼은 그 표현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음반의 제목과 곡들의 제목도 모두 그것을 가리키고 있다. 여기에 소위 ‘포스트 어쩌구’의 스타일들이 추구하는 뻔한 모호함은 없다. 곡 제목으로 장난을 쳐보면, 음반의 내용은 ‘코마에서 깨어난 주인공이 핵전쟁 후 남은 사람들과 함께 바다 속에서 6일을 보내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데 그 기억은 그의 손을 쥐던 그녀 손의 온기’쯤 될 터이다. 그럼 결국 슬프도록 기쁜(happy-sad) 멜로드라마적 의지? 그럴지도. [안나 카레니나] 정도는 아니겠지만, 이러한 통속적 감정을 이 정도의 속깊은 울림으로 승화시키는 모습 앞에서는 훌륭하다고 말하며 눈물 한 움큼 떨구어 내는 것이 좋은 음악에 대한 답례일 것이다. 20031226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8/10

수록곡
1. First Breath After Coma
2. The Only Moment We Were Alone
3. Six Days at the Bottom of the Ocean
4. Memorial
5. Your Hand in Mine

관련 사이트
Explosions In The Sky 공식 사이트
http://www.explosionsinthesk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