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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itoba – Up in Flames – Leaf/Domino, 2003

 

 

Psychedelic Remaster

록 씬에서 2003년은 흥미로운 해였다. 라디오헤드가 발표한 [Hail to the Thief]는 현 일렉트로닉 씬과 록 씬의 한 경향을 보여주는 음반이었고, 슈 슈(Xiu Xiu)는 라디오헤드(Radiohead)와 일맥상통하는 노선이면서도 철저히 인디적인 방식으로 [A Promise]를 만들어 냈다. 라디오헤드는 거러지를 ‘연상’시키는 거친 질감의 사운드에 일렉트로닉 비트의 급박한 리듬을 더했고, 슈 슈는 거칠다는 점에선 같지만 노이즈를 더 부각시키며, 디트로이트 테크노의 치달리는 박동으로 감정이란 무형물을 치열한 강박적 점묘로 묘사해냈다. 약술한 바와 같이 록과 전자음의 병치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상태였음에도 두 밴드는 그 방식이 약간 달랐는데, 메이저 록을 대표하는 라디오헤드가 거칠지만 그조차도 깔끔하게 포장된 음반을 만들어 냈다면, 슈 슈는 더 날 것의, 그리고 솔직한 음반을 만들었다는 느낌이다. 비유하자면, 라디오헤드의 [Hail to the Thief]가 사무엘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음반이라면, 슈 슈의 [A Promise]는 후루야 미노루의 [두더지] 같은 음반이었다.(어느 쪽이 더 낫다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두더지 쪽을 선호한다)

그들이 록에 새로운 요소를 도입한 까닭은 이전의 록이 화성과 볼륨에 치중한 나머지 리듬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원래 흑인음악적 성격이 강했던 록은 시대가 흐름에 따라 정박을 기본으로 하는 전형적인 백인음악으로 변해갔고, 간혹 몇몇 밴드가 록에 재즈의 즉흥적 요소와 흑인음악의 훵키한 부분을 도입하긴 했지만 일회성에 그칠 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일렉트로니카가 발흥하기 시작하면서 일렉트로니카의 경우 지지층의 확산과 록의 원초적인 힘을 수혈한다는 차원에서, 록의 경우 리듬을 보완한다는 차원에서 장르 교류가 시도되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현재 록과 일렉트로니카의 경계가 모호한 음악들이 양산되고 있는데, 그 예로 라디오헤드와 슈 슈, 노트위스트(Notwist)와 같은 뮤지션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 매니토바(Manitoba)도 이런 흐름에 속하는 밴드다. 매니토바는 캐나다 출신의 댄 스네이쓰(Dan Snaith)가 만든 일인 밴드이다. 2001년에 발매한 데뷔 음반 [Start Breaking My Heart]은 다운비트(down-beat) 성격이 강한 IDM을 밴드가 연주하는 듯한 앨범이었다. 반면 2003년 발표된 [Up in Flames]는 첫 번째 정규 음반이 일렉트로니카의 편에서 연주한 록이었다면, 록의 입장에서 록을 일렉트로닉 버전으로 비트화한 음반이라는 인상을 준다.

[Up in Flames]는 전작과 비교해 큰 변화를 보여준다. 우선 음반 전체를 아우르는 정서의 변화를 들 수 있는데, 전작이 앰비언트 비트를 기반으로 한 정적인 분위기의 음반이었던 반면 본작은 사뭇 흥겨운 열기를 띤 음반이다. 음반의 시작을 알리는 “I’ve Lived on a Dirt Road All My Life”부터 박력 있는 드러밍은 쉽게 포착 가능하며, 갖가지 효과음들 또한 적절히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게다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화음을 넣는 “Hendrix With Ko”와 비치보이스를 연상시키는 “Jacknuggeted”에 다다르면 ‘이건 해변송이 아닌가’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그리고 열거한 특성과 연계해 본 음반에서는 노이즈와 샘플링한 효과음이 악곡의 구성에서 그 역할이 일렉트로닉 곡의 일반적 형태와 비교해 축소되어 있다. “Bijoux”에 몇 초 동안 노이즈가 삽입되긴 하지만 찰나의 순간일 뿐이며, 몇몇 곡에 재즈적인 간주가 삽입되긴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한 마디로 일렉트로닉과 록이라는 기본 틀을 제외한다면, 노이즈, 재즈, 샘플링한 효과음들은 그저 조미료이다.

현재 일렉트로닉 씬에서 악곡 그 자체보다 샘플링한 효과음의 특수성이 중요시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점은 의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본 음반이 끌어오고 있는 록, 일렉트로닉, 효과음, 재즈 등이 팝이라는 용광로 안에 녹여지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사실 이러한 부분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매니토바는 나아가기보다는 돌아보고자 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Up in Flames]는 다분히 키치적인 팝의 양상을 띤다. 본 음반이 끌어오는 것은 싸이키델릭 록의 몽환적인 ‘무드’이며, 이것이 포장되는 양식은 낭만이라는 리본으로 묶은 드림 팝이다. 물론 이것은 그루브한 일렉트로닉 비트가 가미된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이렇게 과거의 사운드 텍스트를 ‘현재적’으로 사유한다는 점은 록과 일렉트로닉을 병치하는 일련의 흐름에서 기존의 밴드와 달리 매니토바가 가지는 차이점이 된다. 라디오헤드를 위시한 일군의 밴드들이 일렉트로닉을 기반으로 한 채 록은 이디엄만 빌려왔다면, 매니토바는 싸이키델릭에서 슈게이징으로 이어지는 기존 록의 성과들을 계승하여 이를 전자 음과 적절히 조화시키고 있다. 더불어 [Up in Flames]를 관통하는 회상적 낭만의 정서는 라디오헤드가 촉발시킨 리리시즘적 슬픔이 난무하는 밴드들 사이에서 변별력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 개인주의가 범람하고 나르시시즘 없이 버틸 수 없는 지금의 세대가 만든 음악에서 고통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면, 매니토바는 과거를 회상함으로써 모두가 하나였던 시대를 애써 추억해보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비록 키치적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겠지만, 언제나 울 수만은 없는 것 아니겠는가. 인생사 새옹지마라는데 말이다. 20031224 | 배찬재 focuface@hanmail.net

9/10

수록곡
1. I’ve Lived on a Dirt Road All My Life
2. Skunks
3. Hendrix With Ko
4. Jacknuggeted
5. Why the Long Face
6. Bijoux
7. Twins
8. Kid You’ll Move Mountains
9. Crayon
10. Every Time She Turns Round It’s Her Birth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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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iu Xiu [A Promise] 리뷰 – vol.5/no.6 [2003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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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Manitoba 공식 사이트
http://www.manitoba.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