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Joosuc) – Superior vol.1: This Iz My Life – Masterplan, 2003 1세대의 종말 ‘배수의 진’을 처음 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한국말로 부르는 힙합이라는 것이 막 나오기 시작할 때, 주석은 단연코 돋보이는 아티스트였다. ‘앞엔 적이 있고/뒤엔 강이 있다’는 가사가 약간 황당하긴 했지만 깨끗한 발음과 강한 목소리 톤은 다른 MC들과 그를 차별화 시켜주었다. 비트 역시 확실히 달랐다. 깔끔하게 미국 힙합의 최신 사운드를 제대로 국산화한(혹은 ‘흉내낸’) 비트가 그의 작품이란 것이 알려졌을 때 사람들은 이 다재다능한 MC, 프로듀서의 정규 앨범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Beatz 4 da Streetz](2001)와 [Welcome To The Infected Area](2002)는 좋은 앨범이었다. 첫 앨범을 통해서 주석은 한국 힙합 씬이란 것이 독자적인 영역을 가지게 되었음을 선언했고, 앨범 한 장을 지탱할만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Welcome To The Infected Area]는 절정에 이른 주석의 프로듀싱과 안정적인 피처링으로 멋지게 균형을 잡은 앨범이었고, 각종 연말 베스트에서 한국 힙합을 대표하는 앨범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주석은 본격적으로 팬과 혐오자들(Hataz)을 이끌면서 논쟁거리가 되기 시작했다. 논쟁구도는 간단했다. 주석이 ‘싫거나 혹은 좋거나’. 좋은 사람들은 그의 비트와 스타일을 내세웠고, 싫은 쪽에서는 비트는 인정하지만 랩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확실히 팀벌랜드(Timbaland) 등이 많이 구사하는 짓누르는 다운 비트에 효과음을 잔뜩 첨가한 사운드를 제대로 흉내낼 수 있는 사람은 국내에서는 주석이 거의 유일했다. [Welcome To The Infected Area]는 주석의 이러한 음악이 ‘흉내내기’가 아닌 ‘창조적 모방’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점치게 하였다. 그리고 이제 그는 Jay-Z처럼 야심차게 시간차를 두고 두 개의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Superior vol.1: This Iz My Life]와 내년에 발매될 보다 사회성이 짙은 속편인 [Superior Vol.2]가 그것이다. 반쪽인 전편이 공개된 지금, 결과는 조금 복잡하다. 확실히 [Superior Vol.1: This Iz My Life]는 나쁜 앨범은 아니지만, 한국 힙합씬에서 주석의 위치는 많이 변했다. 그 위치의 변화가 앨범에 대한 판단 역시 영향을 준다. 그는 언제나 트렌드의 최첨단을 달리는 비트 메이커였지만, 이번 3집 앨범에서 그는 ‘평범한’ 음악을 들려준다. [Superior vol.1: This Iz My Life]는 과거의 스타일을 변함 없이 유지하고 있으며, 이현도(D.O)나 이소은, 김범수 등의 참여로 대중적인 색채를 더했다. 비트는 다채롭고 화려하지만, 랩은 여전히 “앞엔 적/뒤엔 강” 시절과 달라진 바가 별로 없다. 완성도가 뛰어난 곡들도 몇 개 보이지만(“Ballin’ 2k3”, “Sunshine”, ”人生 ~ This Iz My Life”), 나머지는 고만고만하다. 주석은 언제나 최신의 트렌드를 수입해오는 뮤지션이었지만, 이제는 최신의 트렌드 자체가 애매해져 버렸다. 넵튠스(Neptunes)를 비롯한 잘 나가는 프로듀서들의 비트는 힙합뿐만 아니라 가요에서도 흔히 들려오고, [절충 Vol.2]나 [People&Places]에서 나타났듯이 한쪽에서는 새롭게 ‘한국적인’ 스타일을 만들기 위한 실험이 진행중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석이 [Superior Vol.1: This Iz My Life]에서 들려주는 음악은 그가 항상 얘기하는 ‘정상’의 음악이 아니라 ‘중턱 어딘가 쯤’의 음악이다. 그것은 ‘그럭저럭 괜찮은 멜로디와 비트 위에 플로우가 약한, 어색한 가사의 랩’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나마 앨범에서 가장 괜찮은 곡들인 “정상을 향한 독주 2″와 “Ballin’ 2k3″은 이현도(D.O.)에게서 받은 것들이다. 이런 위태로운 자리에서 주석은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풀어보려 하지만, 응원구호 같은 가사들에 묻혀서 그 진정성은 약화된다. “내 자신이 내게 바라는 끊임없는 재개발화/철 같은 의지는 마치 체 게바라/투지를 불태워 더욱 세게 발화(發火)”(“정상을 향한 독주 2”)라는 랩은 그의 가사가 “정상을 향한 독주” 시절에서 별로 진보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Superior vol.2] 역시 무난한 정도의 완성도를 가진 앨범일 것이며, 무난한 성과를 거둘 것이다. 그러나 주석이 이 두 앨범을 통해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한국 힙합 씬에 중요한 결과물들을 가져다주지는 않을 것 같다. 한국 힙합 씬은 이제 미국 힙합의 비트가 잘 들리지 않는 영역들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중요한 혁신은 그 영역에서 나올 것이다. 그의 음악이 아주 ‘끝났다’는 판단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주석은 “꼬리와 꼬리를 연결하는/시대를 개척하는/씬의 1세대”(“開戰2002”)라는 이름을 이제는 다른 뮤지션들에게 넘겨주어야 할 것 같다. 20031216 | 선민 sun1830@hotmail.com 4/10 수록곡 1. Itz Ur Boi 2. Back Again (feat. QJ) 3. Okay (feat. Young GM, Fractal, 빈우) 4. 정상을 향한 독주 2 (feat. 김범수) 5. 交叉路 Freestyle 6. 볼륨을 높여라 (feat. Young GM) 7. Ballin’ 2k3 (feat. D.O.) 8. 세남자 이야기 (feat. Infinite Flow) 9. Let’s Get It On 10. 의좋은 형제 (feat. Young GM) 11. Sunshine (feat. 이소은) 12. 독백 13. 人生 ∼ This Iz My Life 14. Love Is… 15. Ballin’ 2k3(VIP Remix) (feat. 237, Epik High, Young GM, D.O.) [Bonus Track] 살인의 추억(Kill You) (feat. Vasco) 관련 글 주석 [Beatz 4 da streez] 리뷰 – vol.3/no.19 [20011001] 관련 사이트 주석 공식 사이트 http://joosuc.com 마스터플랜 공식 사이트 http://mphipho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