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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ens – The Meadowlands – Absolutely Kosher/Pastel Music(수입), 2003

 

 

황량한 초원의 창고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집념의 기록물

뉴저지(New Jersey) 출신의 인디 록 밴드 렌스(The Wrens)는 운도 없고 처세에도 약한 밴드이다. 결성 당시 밴드명을 ‘Low’라고 지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슬로코어 밴드 로우(Low)를 알게 된 후 이름을 바꿔야 했고, 자신들의 존재를 서서히 알려가던 Grass Records(후에 이 레이블은 Wind-Up Records로 간판을 바꾼다) 시절 대중적인 곡을 쓰라는 레코드사 사장의 요구를 거절하여 프로모션이 끊기는 난관도 겪었으니 말이다. 하긴 점잖은 중장년 관객 앞에서 픽시스(The Pixies)의 “Debaser” 같은 곡이나 연주했던 고집불통의 청년들을 버리고 크리드(Creed)를 선택해 대박을 터뜨린 사장의 안목은 정확했는지도 모른다.

이들의 초기작들은 실제로 대중성이 떨어지는 앨범이었다. 데뷔 앨범 [Silver](1994)는 그런지 록의 퇴조기에 발표된 앨범답게 픽시스의 영향이 농후한 날카로운 로큰롤과 이단적인 드림 팝 스타일의 트랙들이 교차하는 다소 중구난방인 사운드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앨범 [Secaucus](1996)는 “Won’t Get Too Far”와 같은 쓸쓸한 어쿠스틱 발라드와 다수의 실험적 시도도 발견되지만 “Rest Your Head” 등 묵직한 드러밍과 일그러진 파워 코드, 그리고 펑크 록의 영향을 받은 위악적인 보컬이 결합된 거칠고 공격적인 앨범이다. 즉 두 앨범 모두 20곡 안팎의 수록곡을 담은 야심작이었지만 크리드 표 포스트 그런지(post-grunge)라는 새로운 유행에 뒤쳐진 구시대의 유물이었던 것이다.

“너무 오래 되었어/네가 내 목소리를 들은 지/…/내가 되고자 꿈꾸었던 것들/나는 믿을 수 없네/삶이 내게 해준 것들을”. 풀벌레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The House That Guilt Built”의 가사가 암시하듯 렌스(The Wrens)의 신보 [The Meadowlands]는 밴드의 신산(辛酸)한 사연이 녹아 있는 앨범이다. 먼저 이 앨범이 1999년 초부터 녹음되어 2003년 가을에 발매된, 무려 4년을 훌쩍 넘겨 탄생한 과작이라는 사실이 눈에 띈다(정규 앨범을 기준으로는 7년만임).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사유가 무슨 대단한 명작을 만들기 위한 결벽증적 기질 때문이 아니라 단지 레이블의 뒷받침과 자금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며 소규모 레이블을 수소문하는 어려운 시기를 겪은 뒤 [The Meadowlands]는 결국 구멍가게나 다름없는 친구의 독립 레이블을 통해 뒤늦게 빛을 보게 된다. 또 홈레코딩이라는 열악한 방식으로 작업하긴 했지만, 결성 당시부터 동고동락한 멤버들인 찰스 멕시코(Charles Mexico, vocal), 그렉 웰런(Greg Whelan, guitar), 제리 맥도넬(Jerry MacDonnell, drum), 세트(Sett. bass), 이렇게 4명의 라인업에 그들의 전작들을 프로듀스한 페달 보이(Pedal Boy) 등 오랜 친구들이 참여하여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앨범에서 가장 두드러진 싱글 넘버인 “Happy”는 이들의 데뷔 앨범에 실린 파괴적인 그런지 넘버 “What’s A Girl”의 점증구조를 계승하고 있으면서 훨씬 밝고 세련되어 졌다. 특히, 베이스와 드럼이 불길하게 둥둥거린 뒤 에코와 텐션을 함유한 채 시종일관 반복되다 점차 일그러지는 3음의 기타 아르페지오는 단순하면서도 묘하게 아름답다. 이어지는 “She Sends Kisses”는 아련한 아코디언 소리와 어쿠스틱 기타, 미려한 건반 연주에 실리는 애잔한 보컬이 앨범에서 가장 연약한 단면을 드러낸다. 또 “Hopeless”는 영롱한 기타 아르페지오와 자유롭게 유영하는 키보드 연주, 세밀한 보컬 하모니, 속도감 있는 기타 피킹까지 다소 현란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이밖에 업 템포의 기타 리프가 로킹하게 지속되는 “This Boy Is Exhausted”, 편안한 컨트리 발라드 “Thirteen Grand”, 친근한 보컬 하모니와 쟁글거리는 기타 스트로킹이 중심이 되는 기타 팝 “Ex-Girl Collection”, 빠르고 거친 컨트리 록 넘버 “Per Second Second”, 거친 퍼즈 톤의 인트로에 이어 긴장감 넘치는 코러스와 숨죽이는 브릿지로 진행되는 “Everyone Chooses Sides”까지 한 곡도 버릴 곡 없는 놀라운 완성도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13 Months in 6 Minutes”는 디스토션을 먹지 않은 투박한 기타 백킹 위로 그 동안의 회한을 토해놓는 듯한 애절한 슬라이드 기타 음과 아름답게 공명하는 보컬 하모니가 완벽하게 결합되어 깊은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한편, 이 앨범은 명작이 되기에는 스타일상의 일관성과 참신함이 다소 떨어지는 면도 없지 않다. 지나간 세월을 보상하려는 의욕이 앞서서일까. 다소 장황했던 이전 작들에 비해 수록곡 수를 줄이고 보다 압축적인 구성을 띄고는 있지만 얼트 컨트리, 드림 팝, 쟁글 팝, 이모코어 등 다양한 색채들이 혼입되어 전체적으로 어지럽고, 오랜 시간 동안 묵히고 손 봐서인지 순간적인 영감이 발휘된 파격미보다는 안정감이 부각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측면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긴 하지만 그다지 결정적인 결함은 아니다.

렌스가 크리드처럼 되기를 거부한 것은 다행이었다. 황량한 초원의 창고에서 세월을 견뎌낸 듯한 섬섬옥수의 음률들은 인생의 깊이까지 첨가된 당당한 미감으로 빛나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30대 후반에 접어든 이 나이든 굴뚝새들(wrens)의 고집과 오랜 세월 농익은 각고의 노력이 가득 들어찬 [The Meadowlands]는 근래에 보기 드문 수작이다. 그리고 이들의 빈한한 디스코그래피는 록 음악이란 때로 고단한 삶과 열정을 기록한 집념의 일기장과도 같다는 생각을 품게 해준다. 이런 맛에 우리는 저 먼 나라의 이름 없는 록 밴드들을 미친 듯 찾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20031219 | 장육 jyook@hitel.net

8/10

수록곡
1. The House That Guilt Built
2. Happy
3. She Sends Kisses
4. This Boy Is Exhausted
5. Hopeless
6. Faster Gun
7. Thirteen Grand
8. Boys, You Won’t
9. Ex-Girl Collection
10. Per Second Second
11. Everyone Chooses Sides
12. 13 Months in 6 Minutes
13. This Is Not What You Had Planned

관련 사이트
The Wrens 공식 사이트
http://www.wrens.com
Absolutely Kosher Records의 The Wrens 페이지
http://www.absolutelykosher.com/wren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