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222013951-NUNKO 눈뜨고코베인 – 파는 물건 (EP) – 쑥고개, 2003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 어딘가에서

눈뜨고코베인은 2002년 결성되어 현재 클럽 재머스(Jammers)에서 활동 중인 밴드이다. 총 다섯 곡이 수록된 이들의 데뷔 EP [파는 물건](2003)은 (정식 데뷔음반이 아닌) ‘소개’의 역할에 충실한, 밴드의 여러 성향을 보여주는 ‘모음집’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음반은 레게(reggae)의 느낌을 살린 팝송 “그 자식 사랑했네”를 시작으로, 하드록 성향의 “영국으로 가는 샘이”와, 펑크 넘버 “그대는 냉장고”, 싸이키델릭(psychedelic) “누나야”와 ‘구전가요’를 목표로 만들었다는 “외로운 것이 외로운 거지”로 이루어져 있다. 음반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직 아마추어 티를 채 벗어나지 못한 ‘대학생 밴드’의 느낌이 강한데, 특히 이들의 우상인 산울림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영국으로 가는 샘이”, “누나야”).

[파는 물건]의 특징은 두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캠퍼스 그룹 사운드’의 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고, 두 번째는 음악에 대한 ‘키치’적인 접근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지함’과 ‘무의미화’의 충돌은 이들의 음악을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이러한 성격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예는 ‘새마을 운동가’인 “잘 살아보세”를 브라스 사운드로 희화화 시켜 삽입한 “그대는 냉장고”이다. 이러한 난데없는(개연성에 별 신경 쓰지 않은) 메시지의 삽입은 이들이 세상을 냉소함과 동시에 또한 (세상을 냉소하는) 스스로를 조롱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사운드 및 메시지에 대한 접근 방식과 비슷한 예를 영국의 펄프(Pulp) 같은 밴드에게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자식 사랑했네”와 “그대는 냉장고”에서 보여지듯 의도적으로 ‘여성격 인칭 대명사’를 사용하지 않는 모습에서, 눈뜨고코베인이 대상에 대해 공정, 혹은 냉정한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결국 키치적인 사운드 운용 역시 ‘생소함’ 혹은 ‘낯설음’을 유도하고 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냉정함은 다소 작위적인 ‘위악’으로 보일 수 있으며, 아직 이러한 전략이 자신들의 음악을 통해 구체화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 눈뜨고코베인의 사운드와 메시지는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아직 자리를 정하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다(이들의 사운드는 마치 ‘황신혜 밴드가 연주하는 산울림’ 같다).

하지만 ‘조금 색다른 팝송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에 걸맞게 이들의 사운드는 선율이 강하고, 아직 덜 다듬어진 대로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하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구어체 한글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내는 이들의 가사는 익살 속에서도 예리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눈뜨고코베인이 자신들만의 ‘전략’을 가진 밴드라는 점은 분명한 듯하고, 따라서 약간은 조급한 이 데뷔 EP보다는 언젠가 발매될 정규 데뷔음반을 기대하고 싶다. 20031212 | 김태서 uralalah@paran.com

6/10

수록곡
1. 그 자식 사랑했네
2. 영국으로 가는 샘이
3. 그대는 냉장고
4. 누나야
5. 외로운 것이 외로운 거지 (hidden track: 말이 통해야 같이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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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눈뜨고코베인 공식 홈페이지
http://www.nunc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