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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ills – So Much For The City – EMI, 2003

 

 

100년이 지나도 계속될 노래들

쓰릴스(The Thrills)의 [So Much For The City](2003)는 햇살 찬란한 봄날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도 같은 음반이다. 첫 곡 “Santa Cruz (You’re Not That Far)”부터 몰려오는 나른한 행복감은 음반 전체의 성격을 요약해서 보여준다. 커너 데시(Connor Deasey)의 보컬은 한없이 여리면서도 경쾌함을 잃지 않으며, 다니엘 라이언(Daniel Ryan)의 기타 사운드 또한 찰랑이는 결을 유지하며 느슨한 발랄함을 만들어간다. 또한 키보디스트 케빈 호랜(Kevin Horan)의 공명감 넘치는 건반 연주는 쓰릴스의 복고 지향적인 음악적 성향을 형성해내며 따뜻한 질감의 외피를 두른다.

이 더블린 출신의 주목받는 5인조 신인 밴드가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매우 관습적이다. 영미 저널에서는 ‘웨스트 코스트(west coast) 사운드의 재현’이라며 스릴스를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나 버즈(The Byrds) 등과 연관짓지만(조금만 더 들어가면 마마스 앤 파파스(The Mamas & The Papas)를 끌어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특별히 동시대와 동떨어진 정서를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비치 보이스나 버즈의 음악을 당대에 접하지 못했던 필자로서는 쓰릴스의 음악은 오히려 자폐증에서 벗어난 벨 앤 세바스찬(Belle & Sebastian)처럼 들린다. 그리고 벨 앤 세바스찬이 그러하듯 쓰릴스는 뭐라고 딱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애틋한 사랑노래들을 들려주고 있다(빈곤한 감상을 때우려면 ‘리리시즘(ㅣyricism)’이라는 말로 슬쩍 커버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미 싱글로 발매돼 상당한 반응을 이끌어 낸 “Santa Cruz (You’re Not That Far)”나 “Big Sur”, “One Horse Town” 외에도 [So Much For The City]는 이른바 라디오 에어플레이 용 싱글들로 넘쳐나고 있다. “Don’t Steal Our Sun”이나 “Deckchairs And Cigarettes”에서 드러나는 여린 감성은 이미 이런 음악이라면 질리게 들었다고 생각할 사람에게도 충분히 위력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단번에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을 떠올리게 하는 서프 뮤직 “Old Friends, New Lovers”나 컨템퍼러리 컨트리 송 “Say It Ain’t So”와 오래된 LP 판을 돌리는 듯한 “Hollywood Kids”, 싸구려 디스코 음악의 도입부에나 등장할 듯한 인트로의 “Your Love Is Like Las Vegas” 등 앨범의 일관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나름의 시도를 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은 단편적인 접근일 뿐이며, [So Much For The City]가 신인 밴드의 데뷔 음반치고는 지나치게 무사태평하다는 생각을 버리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So Much For The City]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장점은 바로 음반 전편을 통해 흘러 넘치는 간결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멜로디 라인에 있다. 이 정도의 멜로디라면 다른 요소들의 부재는 어느 정도 용납이 가능하지 않나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음반을 떠받들고 싶은 생각 또한 없다. [So Much For The City]는 언제 어디서나 있어왔던 썩 괜찮은 팝 음반일 뿐이다. 쓰릴스와 비슷한 종류의 정서적 감흥을 제공했던 밴드는 지금껏 너무 많았다. 어쩌면 쓰릴스의 음악은 이미 충분히 예측 가능한 감동을 제공하는 팝 음악의 전형적인 한 스타일의 재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유행과는 상관없이) 누군가는 여전히 이런 노래들을 부르고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이런 노래들에 (유행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감동 받을 것이다. 그 노래를 부르는 이가 누구이건 간에 말이다.

그리고 이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섣부른 기대의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논리적인 근거 없이 경험에만 비추어 하는 말이지만, 이런 종류의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정서를 노래하는(했던) 밴드 중 데뷔 음반 만한 후속작을 내놓은 경우가 별로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면 너무 무책임한 얘기일까? 20031209 | 김태서 uralalah@paran.com

6/10

수록곡
1. Santa Cruz (You’re Not That Far)
2. Big Sur
3. Don’t Steal Our Sun
4. Deckchairs and Cigarettes
5. One Horse Town
6. Old Friends, New Lovers
7. Say It Ain’t So
8. Hollywood Kids
9. Just Traveling Through
10. Your Love Is Like Las Vegas
11. ‘Til The Tide Creeps In

관련 사이트
The Thrills 공식 사이트
http://www.thethrill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