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220111401-wedding presentWedding Present – Bizarro – RCA/BMG, 1989/2001

 

 

스미쓰와 소닉 유쓰가 만났을 때

1980년대의 인디 록을 양분한 것은 쟁글 팝과 노이즈 록이다. 미국에서 이 두 장르를 각각 대표한 것은 REM과 소닉 유쓰(Sonic Youth)고 영국에서는 스미쓰(The Smiths)와 지저스 & 매리 체인(Jesus & Mary Chain)이다. 이 그룹들은 이후 수많은 아류와 추종자들을 낳았고 그 영향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이 중 특히 영국 인디 음악에 미친 스미쓰의 영향은 가히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우스마틴스(The Housemartins), 제임스(James), 진(Gene), 스톤 로지스(Stone Roses), 선데이스(The Sundays) 등은 모두 스미쓰의 직간접적인 영향권 하에서 탄생한 그룹들이고 브릿 팝의 거대한 흐름도 결국은 스미쓰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리즈(Leeds) 출신의 웨딩 프레젠트(The Wedding Present) 역시 대표적인 스미쓰 추종자로 활동을 시작한 그룹이다. 이들의 1987년 데뷔 앨범 [George Best]는 그룹의 리더 데이빗 게지(David Gedge)가 냉소적으로 인정했듯이 ‘스미쓰 팬들이 뽑은 No.2 밴드의 앨범’이었다. 그러나 1989년의 두번째 앨범 [Bizarro]부터 이들은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소닉 유쓰적인 노이즈 록을 쟁글 팝에 접목시킨 것이다.

웨딩 프레젠트의 이러한 실험은 이미 이들의 초창기부터 그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었다. NME의 [C-86] 테이프에 수록되어 이들의 이름을 최초로 알린 “This Boy Can Wait (A Bit Longer)”는 스미쓰의 청명하고 깨끗한 사운드와 구별되는 지저분하고 격렬한 쟁글 팝이었다. 이들이 [Bizarro]에서 추구한 노이지 쟁글 팝은 이러한 음악적 지향의 논리적 귀결에 다름 아니다. 이들의 이러한 성향은 이윽고 스티브 알비니(Steve Albini)와 작업한 [Seamonsters]에서 쟁글 팝과 완전히 단절하고 본격 노이즈 밴드로 거듭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Bizarro]는 이들의 음악적 과도기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과도기적 앨범들이 대개 그렇듯이 이 앨범의 내용도 그렇게 고르지는 못한 편이다. 그런 탓에 이 앨범은 [George Best]나 [Seamonsters]에 비해 일반적으로 낮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과도기적 성격은 다른 측면에서 이 앨범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쟁글 팝의 가벼움과 노이즈 록의 무거움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은 이들의 여타 앨범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성질인 것이다.

웨딩 프레젠트의 사운드는 피터 솔로우카(Peter Solowka)의 기타와 데이빗 게지의 보컬을 중심으로 구축된다. 피터 솔로우카의 기타는 마치 화가 잔뜩 난 조니 마(Johnny Marr)가 기타를 붙잡고 사정없이 긁어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의 무자비하게 빠르고 맹렬한 기타는 이들의 음악이 일각에서 ‘쓰래쉬 쟁글 팝’이라고 불리는데 톡톡히 기여하였다. 데이빗 게지는 역사상 가장 노래 못하는 가수로 뽑혀도 별로 할 말이 없을 정도다. 그가 만일 내 친구였다면 그와 함께 노래방에 가기를 굉장히 꺼렸을 것 같다. 그러나 밴드의 부족한 테크닉과 보컬의 제한된 음역은 데이빗 게지의 송라이팅과 만나는 순간 대체될 수 없이 완벽한 표현의 수단으로 승화한다. [Bizarro]의 라이너 노트는 이들의 음악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상심은 듣기 좋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것은 성난 코끼리 떼 같은 기타가 끝임없이 창자를 짓밟는 것 같은 소리를 낸다. 그것은 추하고 귀를 찢는 듯하며 괴롭고 고통스러운 노이즈다’. 이들의 음악이 표현하는 것은 연인과 깨졌거나 일방적으로 차였을 때의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아득함 또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의 감정이다. 이런 음악에 기교적 세련미나 연주의 섬세함 같은 것들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Bizarro]의 A면은 비교적 짧은 길이의 쟁글 팝 곡들을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쟁글 팝이라고는 하지만 디스토션 걸린 기타가 주도하는 사운드는 통상적인 쟁글 팝의 감미로운 자아도취와는 전혀 맥락을 달리한다. 일반적인 용법에서 쟁글 팝이라고 불릴만한 작품은 앨범을 통틀어 “No”와 “Be Honest” 두 곡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곡들은 미친 듯이 내달리는 드럼과 리듬기타 위에 각종 기타 노이즈가 수놓아지는 이들 특유의 쓰래쉬 쟁글 팝으로 이루어져 있다. 데이빗 게지 자신은 이 앨범에 대해 ‘모든 곡들이 다 똑같다’고 자조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앨범이 단조롭거나 지루한 것은 아니다. 리드 기타의 금속성으로 시작하여 드럼, 베이스, 리듬 기타가 차례로 치고 들어오는 “Kennedy”는 동시대 최고의 곡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작품이다.(음향 다이내믹스를 활용해 극적 효과를 연출한 종결부를 들어보라). “Crushed”, “Thanks”, “Brassneck” 등 다른 곡들이 “Kennedy”와 유사한 사운드를 들려준다는 것은 이 점에서 아쉽기보다는 오히려 반가운 일이다.

B면에 수록된 곡들도 기본적으로는 A면의 노이지 쟁글 팝 성향을 그대로 유지한다. 그러나 A면에 비해 확실히 노이즈에 좀더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문제는 노이즈의 강화가 그것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러닝 타임을 늘이는 방향으로만 나아간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이들의 장기인 멜로디를 왜소하게 만들고 사운드의 긴박함을 느슨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9분이 넘는 대작 “Take Me”는 4분 여가 지나면서 길을 잃기 시작하며 모과이(Mogwai)적 음량 콘트라스트가 실험된 “Bewitched”는 송라이팅에 다소 소홀했다는 혐의를 지우기가 어렵다. 연주시간이 비교적 짧은 “Granadaland”가 그나마 이들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구현해내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B면의 음악은 의욕이 지나쳤다는 평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상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두 음악 형태 사이의 접점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결합한 이들의 공로는 몇몇 오류에도 불구하고 가히 독보적인 것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이들이 이 앨범을 끝으로 더 이상 이러한 노선을 추구하지 않은 것은 이 점에서 매우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Bizarro]의 2001년 버전에는 스티브 알비니가 프로듀스한 “Brassneck” 싱글의 전곡이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되어 있다(나머지 세 곡은 “Kennedy” 싱글에 수록된 곡들이다). 이 곡들은 스티브 알비니와 웨딩 프레젠트의 첫번째 합작품이며 향후 [Seamonsters]를 통해 도달하게 되는 이들의 새로운 사운드에 대한 예고편이기도 하다. 스티브 알비니의 명성에서 익히 짐작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이들이 들려주는 사운드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화려하다. 특히 스티브 알비니의 손을 거친 “Brassneck”의 싱글 버전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서 앨범 버전을 능가하는 이 곡의 결정판으로 칭송되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앨범 버전의 지저분하고 소박한 사운드가 오히려 곡의 분위기에 더 잘 부합한다는 생각이다. 사실 스티브 알비니의 ‘때 빼고 광낸’ 사운드는 그것의 음향적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웨딩 프레젠트의 개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느낌이다. 일례로 페이브먼트(Pavement)의 곡을 커버한 “Box Elder”는 얼핏 듣기에도 웨딩 프레젠트 본연의 사운드라기 보다는 폴(The Fall)이나 소닉 유쓰에 더 가깝다.

웨딩 프레젠트의 해산 이후 데이빗 게지는 챔버 팝 그룹 시네라마(Cinerama)를 이끌며 현재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계속 벌이고 있다. 그에게 웨딩 프레젠트는 이미 과거지사가 된 지 오래지만 팬들은 아직도 그의 공연에서 “Brassneck”이나 “Kennedy” 등의 곡들을 즐겨 요청하곤 한다. 그럴 때면 데이빗 게지 역시 이 곡들을 다시 부르며 기꺼이 팬들의 요구에 부응한다. 웨딩 프레젠트는 데이빗 게지 자신에게나 당시 젊은 날을 보낸 팬들에게나 여전히 각별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웨딩 프레젠트 시절 그가 공연에서 “Kennedy”를 부를 때면 ‘too much apple pie’라는 가사에 맞춰 청중들이 실제로 애플 파이를 무대에 던졌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도 그곳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곤 한다. 어떤 음악과 한 시대를 공유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한 때 들국화의 공연을 부지런히 쫓아다니던 사람이나 홍대 앞 클럽가를 열심히 드나들던 사람이라면 단순한 음악 감상을 뛰어 넘는 이런 애틋한 감정을 아마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20031213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8/10

수록곡
1. Brassneck
2. Crushed
3. No
4. Thanks
5. Kennedy
6. What Have I Said Now?
7. Granadaland
8. Bewitched
9. Take Me!
10. Be Honest
11. Unfaithful (Bonus Track)
12. One Day This Will All Be Yours (Bonus Track)
13. It’s Not Unusual (Bonus Track)
14. Brassneck [Single Version] (Bonus Track)
15. Don’t Talk, Just Kiss (Bonus Track)
16. Gone (Bonus Track)
17. Box Elder (Bonus Track)

관련 사이트
The Wedding Present 비공식 사이트
http://web.inter.nl.net/hcc/C.A.Severien/mainmenu.htm
The Wedding Present 팬 사이트
http://www.westnet.com/wedd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