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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n – Take A Look In The Mirror – Epic/Sony, 2003

 

 

인형의 계곡

콘의 경력은 1998년의 [Follow The Leader]에서 절정에 오른 뒤 천천히 하강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판매 성적으로 보았을 때는 타당하지만 음반의 퀄리티라는 면에서까지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빌보드 차트 19위로 ‘충격적인’ 데뷔를 기록한 이 신보까지 포함해서, [Issues](1999) 이후에 나온 콘의 음반은 차트 성적과 관계없이 일정 수준 이상의 소리를 들려주었으며, 물론 그 이상의 무엇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동시대를 누비던 다른 뉴 메틀 밴드들의 몰락(특히 림프 비즈킷)과 비교한다면 유달리 돋보였고, [Issues] 이후 콘의 사운드에 스며든 ‘몽글몽글한’ 느낌은 그들이 메인스트림 시(市) 공룡 밴드 구(區)의 거주권을 얻기 위해 차린, 왠지 상한 고기를 쓰고 있을 것 같은 듯한 햄버거 가게와 같은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이제 이들은 햄버거 가게를 때려치우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 게토의 음습한 뒷골목 지하실로 돌아가려 한다’ 정도로 다음 문장을 써야겠지만, 실상 콘은 벽에 진흙을 조금 칠하고 커튼을 내린 뒤 나스(Nas)를 불러 조촐한 파티를 여는 것으로 신보를 기념하고 있을 뿐이다(당신이라면 떠나겠는가). 하지만 그 정도로도 콘 특유의 유아적인 음습함과 (조나단 데이비스(Jonathan Davis)가 주도하는) 정신분열적이고 만화적인 분위기, 거만하고 자신만만한 그루브를 느끼는데는 큰 무리가 없다. [Untouchables](2001)가 메인스트림 메가 히트 록 밴드의 어둡고 뒤틀린 자기 표현에 대해 다소 유보적인 관점을 갖도록 하는 데 머물렀다면, 올해의 이 신보는 거기서 반걸음 더 나아간다.

그 반걸음을 책임지는 것은 베이스이다. [Life Is Preachy](1996)부터 필디(Reginald ‘Fieldy’ Arvizu)의 5현 베이스는 점차 볼륨이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첫 싱글 “Right Now”의 그루브를 장악하는 것은 드럼보다 더 드럼 같은 베이스의 리듬과 울림이다. 다운튜닝의 극을 달리는 트윈 기타와 이빨로 물어뜯는 듯한 베이스, 무지막지하게 울부짖지만 ‘노래’를 잊지 않는 보컬로 이루어진 이 짧고 테크니컬한 펑크-메틀은 토성에서도 방송금지를 먹을 듯한 잔혹한 뮤직비디오와 더불어 새 음반의 인상을 단숨에 규정한다. 메탈리카처럼 드럼을 두드려대는 “Break Some Off”나 “Falling Away From Me”의 속편같은 “Counting On Me”, 질주하는 베이스의 ‘연타’가 돋보이는 “Alive”에서도 필디의 손놀림은 전에 없이 돋보인다. 이는 콘의 음악이 가진 매력이 상당부분 베이스에 기인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조나단 데이비스의 보컬이 갖고 있는 ‘표현주의적’ 성향도 다채롭다. 수많은 록 키드들을 매혹시켰던 데이비스의 그르렁거림(growling)은 데쓰 메틀 뮤지션에 버금가는 파괴력을 발휘하다가도 금새 흐느끼는 소리로 돌변하며, 그 가운데서 거물급 록 보컬리스트다운 태도로 심각하게 노래한다(“Counting On Me”, “Play Me”, “Alive”). 이것이 ‘균형’인지 ‘적응’인지는 듣는 각자가 판단할 문제이다. 3박과 4박을 오가다 3박이 곡을 삼켜버리는 “Deep Inside”와 음반 발매 전 공개된 “Did My Time”을 지나 도달하는 음반의 두 번째 하이라이트인 “Play Me”는 [Follow The Leader]에서 보여주었던 힙합과의 결합을 우려먹는 것처럼 보이지만(실상 그 음반의 제목도 에릭 B. 라킴(Eric B. Rakim)의 힙합 클래식에서 따온 것이 아니던가) 정작 밴드는 힙합의 정서보다는 나스의 유연한 래핑을 자신들의 소리에 악기처럼 활용하는데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가사 자체는 ‘trust nobody/fuck everybody’를 계속 반복하고 있는 데 불과하지만 콘의 음악을 들을 때 (더군다나 한국인이) 가사를 감상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리프 뿐 아니라 발음마저 “Blind”를 연상시키는 “Alive”는 최근 나온 콘의 곡 중 가장 콘다운 곡일 것이다. 상승과 하강을 오가는 트윈 기타 시스템의 활용과 베이스의 영민한 손놀림, 드럼의 완급 조절, 데이비스의 보컬까지 흠잡을 구석이 별로 없는 파괴적인 록 넘버이다.

그러나 이 음반 또한 최근의 록 음반들이 종종 빠지는 함정인 뒷심부족을 “Let’s Do This Now”부터 드러내기 시작하며, B-사이드용으로 더 어울릴 것 같은 “Y’All Want a Single”과 함께 음반의 후반부를 종잡을 수 없게 만든다. 더하여 전작이 드러냈던 약점, 즉 곡들 사이의 완급 조절에 다시 한 번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마지막으로 음반의 장점으로 들리는 부분들조차 잘 다듬어진 소리 속에서 표현된다는 것 또한 불만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음반이 자신들의 경력 뿐 아니라 올해가 저무는 이 시점에서 유달리 빛나는 어떤 순간들을 담고 있다고 말하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메인스트림의 정상급 록 밴드라는 사실을 제하고 들을 때 이 음반은 무척 드문 파괴력을 가진 음반이다. 메인스트림의 정상급 록 밴드라는 사실을 감안해도 마찬가지다. 홈페이지를 장식하는 인형들 속에서 그들은 “Now I’m alive”(“Alive”)라고 외치며, 나는 그 말을 믿어볼 생각이다. 20031210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7/10

수록곡
1. Right Now
2. Break Some Off
3. Counting On Me
4. Here It Comes Again
5. Deep Inside
6. Did My Time
7. Everything I’ve Known
8. Play Me (feat. Nas)
9. Alive
10. Let’s Do This Now
11. I’m Done
12. Y’All Want a Single
13. When Will This End
14. One (Live)

관련 사이트
Korn 공식 사이트
http://www.korn.com/